나의 구로 올레길 답사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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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지도에서 구로구를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구로구 가운데를 관통하는 안양천이다. 안양천은 구로의 남에서 북으로 흘러, 마포 염창동에서 한강과 합류한다. 구로구의 안양천은 서쪽으로는 목감천과 동쪽으로는 도림천을 마치 동생처럼 거느리고 있다. 안양천은 국가하천이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주요 하천이란 뜻이다.
구로 올레길은 그 하천형인 안양천을 중심으로 좌측으로 매봉산, 와룡산, 개웅산, 천왕산이 산림형이며, 오른쪽은 대부분 도심형이다. 목감천과 도림천이 산림형과 도심형을 연결한다. 이런 구도를 보았을 때 구로구는 좌로는 산기슭을 따라 마을과 학교가 형성됐으며 우측으로는 관공서와 비즈니스 센터 그리고 공장지대가 형성되는 지형인 듯하다. 이번에는 지난번과 출발점은 같지만, 방향을 달리하여, 도림천역에서 발길을 오른쪽을 돌려 하천형, 도심형을 중심으로 답사해보자. 나의 구로 올레길 답사기 2편인 셈이다.
구로 올레길 지도
도림천을 따라가보면, 도림천역, 신도림역, 대림역 그리고 구로디지털단지역을 만나는데, 서울시 메트로 2호선 길이다. 안양천 본류에 도림천이 만나는 곳, 도림천역 신정교 다리 밑은 자전거 라이딩족 동호인들에게는 최적의 ‘만남의 장소’이다. 쉼터가 있고, 이동 자전거 수리소가 있고, 음료와 간식을 먹을 수 있는 ‘할머니 점방’(아주 작은 가게)이 있다. 천변은 매우 넓어서 야구장, 롤러스케이트장, 축구장이 있다. 스포츠를 즐기는 족속들은 이곳이 천혜의 복합 경기장이다. 겨울에는 인공 눈썰매장을 만들어 멀리 못 가는 어린이들의 동심을 달래주기도 한다.
신도림역은 전철 1호선과 2호선 환승역으로 서울에서 번잡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상가 주인들에게는 최고의 상권이다. 현대백화점, 이마트, 테크노마트, 홈플러스가 있고, 주변으로 음식점, 병원,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섰다. 쉐라톤호텔과 대형 문화예술 공연장을 품은 디큐브시티가 있어 밤에는 화려한 야경을 연출한다. 신도림역을 출발한 2호선 전철은 대림역을 지나면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다.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와서 고가도로 전철이 된다. 그래서 도림천을 따라 올레길을 걸으면 머리 위로 계속해서 오고 가는 전철을 만난다.
도림천에서 본 신도림역
도림천의 구로 올레길
도림천은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금세 불어나기 때문에 천변으로 진입하는 입구는 자물쇠로 굳게 잠긴다. 도림천 길은 자전거와 사람이 다니는 길이 서로 붙어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걷다 보면, 종종 3류 색소폰 연주자의 무료 공연을 들을 수 있다. 안양천은 폭이 제법 넓어서 건너려면 다리를 이용해야 하지만, 도림천은 동생급 하천이니까 징검다리 정도로 건너갈 수 있다. “폴짝폴짝” 뛰는 재미가 있다. 가끔 오리가 물살을 내고, 갈대가 햇빛에 반짝이면, 빌딩 숲의 오솔길이 된다. 운 좋게 노을이 더해지면 당신은 단박에 낭만 여행객 도시 순례자가 된다.
대림역을 지나고 구로디지털단지역에 이른다. 구로 올레길은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하천형에서 도심형으로 바뀐다. G밸리라고 부르는 곳이다. 그러나 도림천은 구로 올레길의 형태 구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대방역으로, 신림역으로 관악산 기슭까지 이어진다. 하천은 자연인지라 사람이 경계를 나눈 행정구역을 가리지 않고 흐르고 이어지고 뻗어갈 뿐이다. 도림천이 어디로 가건, 도심형으로 전환하여 ‘G밸리’ 안으로 들어가 본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처럼 첨단 기술로 한국 경제를 선도하고 성공을 꿈꿔보자는 뜻에서 이름 붙이지 않았나 싶다. G의 의미는 이 지역이 가산동, 가리봉동, 구로동인데, 똑같은 알파벳 첫 문자에서 따왔다고 한다. G밸리 이전의 이름은 ‘구로공단’이었다.
G밸리 몰 앞의 거리공연, 안내판, 상징조형물
구로공단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의거 1965년부터 건설된 국가 수출산업단지이다. 그중 1단지는 1967년 구로동에 완성되어, 섬유 전자 등 51개 업체 입주하였으며, 2단지, 3단지는 1995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로구에서 분리된 금천구에 속하게 되었다 (구로구청 홈페이지 ‘구로의 역사’에서 퍼옴). 50대 이상 중장년에게 ‘구로공단’이라면 먼저 ‘벌집’과 ‘여공’들을 떠올리게 됨은 어쩔 수 없다.
1970년대 당시 수출 첨병의 자리에 있던 가발과 봉제 산업은 노동집약적이고 섬세한 작업이어서 여성의 손이 필요했고, 돈을 벌려 상경한 어린 소녀들은 이곳에서 벌집촌을 형성하며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강요받았던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1, 2층의 네모난 가옥에 십수 개의 쪽방이 일렬로 세대를 형성한다. 두세 평 크기의 방에 손바닥만 한 부엌이 딸려있다. 화장실은 공동으로 맨 끝에 하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밤늦게까지 야학에 다니면서, 내일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희망의 벌집’이기도 했다.
70~80년대 국가경제발전 기여한 여공의 노력을 표현한 조형물(G밸리 단지에 있음)
오랜 기억 속의 구로공단과 달리 지금은 높은 빌딩들이 즐비하고 벤처기업이나 디지털 관련 IT 기업,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1만여 개의 업체가 입주했으며, 12만 5천 명이 생산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구로구청 홈페이지 ‘구로의 명소/구로디지털밸리’에서 퍼옴). 도심형은 산림형이나 하천형과 달리 안내판이 없다. 사거리마다 이정표가 있고 도로에는 차들이 바삐 다니고, 곳곳에 상점과 사람들이 빈번하게 왕래하니, 길을 잃을 일도 없고, 다리 아프면 가까운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가면 된다.
도심형 올레길은 전철 7호선 남구로역을 지난다. 이 동네가 ‘나의 살던 고향’이다. 남구로역은 우리가 떠나고 나서 생긴 전철역이라, 우리는 역세권의 혜택을 보지 못했다. 근처에 <114번 버스> 종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많은 중국동포들이 거주하고 있다. 한자 간판이 한글 간판보다 많은 듯하다. 대림역 인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들은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있다. 구로구를 비롯하여 금천구, 영등포구에 서울의 다문화가정 50%가 살고 있다. 서울시50플러스 남부캠퍼스는 올 상반기에 ‘다문화가정 학습지원단’ 사업을 진행하여 다문화 자녀의 학교생활을 도와주었다.
G밸리 안에 있는 상징조형물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을 지나 구로구청에 이르면 <도심형 1코스>의 길은 종착역이다. 도심형을 걸으면, 이 길이 올레길인지 알 수가 없고, 특별한 랜드마크도 없다. 그런데도 올레길에 포함한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구로디지털단지역과 남구로역 그리고 가산디지털단지역을 꼭짓점으로 한 지역이 국가디지털산업단지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도심형은, 건강과 힐링을 위한 산림형이나 하천형과 달리 구로구 역사의 변천을 함께 느껴보자는 취지인 것 같다. 구로구의 어제와 오늘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이다. 어릴 적 추억이기도 한 이 길을 걸어보았는데, 길은 남아 있으되, 사람은 간데없다. 사춘기 시절, 내 마음을 뛰게 했던 ‘여공 누나’들도 노년이 되었을 터인데,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