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까맣게 잊힌 누군가의 이름이라든가, 혹은 어느 장소가 떠오를 때가 있다. 한정된 공간과 흐르는 시간은 절대로 반복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억들은 흩어졌다가도 다시 모여들기도 한다.

90년대에는 잃어버린 자아 찾기를 주제로 한 문학 작품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선명하게 드러나던 80년대의 격동기가 90년대의 일상적인 삶으로 이어지면서 개인의 자아 정체성 탐색을 다룬 소설이 주를 이루었다.

 

≪코카콜라 애인≫ (사진출처 : 예스24)

 

윤대녕의 소설≪코카콜라 애인≫은 현대인의 인스턴트식 인간관계와 새털보다도 가벼운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진실한 사랑과 자아의 발견을 그리고 있다. 그의 글은 스토리보다 이미지에 더 가깝다. 은유와 상징이 소설의 밀도감을 높여준다. 그래서 한 줄 한 줄 곱씹어 읽어야 제 맛이 난다.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를 다친 나는 오랫동안 거의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살고 있다. 어느 날, 함께 일했던 방송국 김 PD에게서 마포의 한 카페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는다.

 

그를 기다리는 10분 동안 나는 커다란 통유리창 밖으로 의료보험회관 앞에 서 있는 플라타너스의 잎사귀가 바람에 쓸리고 있는 것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구겨진 와이셔츠에 면바지 차람으로 기우뚱거리며 찻집 안으로 들어섰다.

P.14

 

강변 오피스텔

 

갑작스런 만남에 의아해하며 나간 자리에서, 대낮부터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한 여인과 화성군 고포리 바닷가에서의 정사(情事), 뺑소니 사건을 저지른 일을 두서없이 말한다. 느닷없이 자신의 오피스텔 열쇠를 내게 억지로 맡기고는 밖으로 나가 달려오는 택시에 뛰어든다. 그 순간부터 나는 의문의 사건에 휘말려 들어간다.

 

고포리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 나는 취해 있었습니다. 여자는 깊이 잠들어 있었죠. 날은 어두웠고 나는 마치 밀림에서 차를 몰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별들이 회전하는 방향. 곧 시계 반대 방향이다.

“어떻게 서울까지 왔는지 모릅니다. 여자가 돌연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저는 화닥 정신이 돌아왔죠. 하지만 때가 늦어 있었습니다. 이미 앞차를 들이받은 다음이었으니까요.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죠. 둔중한 굉음이 몸을 뒤흔든 찰나 앞에 서 있던 차가 용수철처럼 튕겨나갔죠.”

P.22

 

“오피스텔에 들어와 작업을 하십시오. 우선 간단한 일부터 말입니다. 이쪽 바닥의 생리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공백이 길어지면 복귀하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P.24

 

김 PD의 사고와 함께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혀왔던 두통이 깨끗이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나는 운명처럼 그의 오피스텔로 숨어들게 된다. 거기서 나는 그가 남긴 컴퓨터 파일을 읽고 코카콜라 클럽이란 카페가 음모의 중심에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홀리데이인서울 호텔 앞에서 내려 김현필에게 전해들은 기억을 더듬어 불교 방송국 쪽으로 내려갔다. 마포대교를 앞에 두고 왼편으로 돌자 강을 향해 비스듬히 서 있는 회색의 고층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외벽엔 <강변 오피스텔>이란 글자가 큼지막하게 세로로 붙어 있었다.

p.73

 

홀리데이 인 서울

 

김현필 PD와 카페 여주인 오미향이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눈치를 챈 나는 그들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집을 나오던 날, 아버지가 한 말을 떠올린다. ‘집이란 한 번 떠나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이다. 돌아온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타인이 돼 있게 마련이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되어 버린 김 PD의 오피스텔에서 아침을 맞고 한강을 내려다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도대체 김현필은 어디 갔을까.

 

오랫동안 나는 오직 나만의 공간을 원했었다. 서른 해 동안 나는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 있거나 혼자가 되지 못하는 부자연스러운 여럿 중의 하나였다. 그렇듯 불연속적인 상태의 지루한 지연. 마디마디 끊어져 나가는 허망한 생의 순간들. 그때마다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시간은 한 움큼씩 내 손아귀를 빠져나가곤 했다. 김현필이 실종된 것이 마음에 걸리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오미향의 신변을 확보하고 있으면 최후의 경우 빠져나갈 방법은 생기겠지. 화병에 꽃을 꽂고 나서 나는 침대에 누워 포도주를 한잔씩 따라 마셨다.

p.87

 

우연히 나와 만나 교제해오던 대학원생 장진화는 우유부단한 나의 성격과 매사에 자신 없어하는 나를 못견뎌한다. 부디 잃어버린 자신 안의 무언가를 찾게 되기를 바란다며 나를 떠나버린다. 어쩌면 삶이란 것이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풍경보다 더 위험천만할 지도 모른다. 나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서, 그녀가 떠날 때 내게 지적한 잃어버린 순결한 자아를 찾아서 코카콜라 클럽이라는 낯선 세계로 들어선다.

 

마포 전경

 

마포대로

 

마포대교의 양쪽 인도로 사람들이 드문드문 지나가고 있다. 여의도에서 마포 쪽으로 건너오기 위해서는 강변도로로 이어지는 교차지점을 가로질러야 하는데 참으로 위험천만한 곳이다. 다리 위에서 신호등이 있을 리 만무하고 여의도에서 질주해오는 차들은 사람 따위는 염두에 두지도 않고 곧장 우회전해서 강변도로로 진입해 들어간다. 운전자는 교차지점에 다다라서야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돼 있다.

p.91

 

서사의 뼈대는 추리소설과 닮아있지만, 구체적인 실마리를 차근히 제공하는 추리소설과 달리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소설 속의 현실을 점점 더 안개 속으로 몰아넣는다. 모호한 사건들을 둘러싼 일상의 상징들은 너무 선명하다. 낯익은 카페라든가, 그곳에 가면 금방이라도 흘러나오고 있을 음악을 시시콜콜 이야기한다. 소설의 무대 역시 마포의 오피스텔이나 카페 따위 공간을 실명 그대로 옮겨온다.

 

삼창 오피스텔

 

오미향을 만나 것은 일산 스티브 김의 집에 가기 위해 오피스텔을 나서던 날이었다. 혹시나 싶어 삼창 오피스텔에 먼저 들르려고 홀리데이인서울 호텔 앞 횡단 보도에 서 있을 때 그녀의 모습이 눈에 튀어 들어왔다.

p.247

 

마치 사막 속의 신기루 같은 카페 ‘말리부’는 마포 의료보험회관 건너편에 있을 것 같고, 분명 불교방송국 건너편에 ‘재즈’라는 카페가 있을 것이라고. 그곳 어딘가에 윤대녕 작가가 앉아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왜 작가는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배경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을 소설의 주인공들과 동일시한 것은 아니었을까.

신비감이 감도는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의 존재에서 뭔가 빠져나가 있다는 결핍감에 시달린다. 오미향은 각기 다른 생의 공간이 존재한다며 두 삶을 일치시키려 애쓴다. 나는 사고를 당한 후 벌거숭이 아이가 명치 안으로 들어오는 환상을 갖는다. 장진화는 아이가 바로 나의 분신이라고 말한다. 어디쯤엔가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서 안간힘을 쓰지만, 시간의 철로 위로 되돌아오기에는 그들은 너무 나약하다.

 

불교방송국

 

나는 겨울이 오면 배를 타고 북극으로 갈 생각이다. 바다에 내리는 눈을 보며. (중략)

장진화를 본 것은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서울엔 그날 눈이 내리고 있었고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나무와 벽돌>이란 레스토랑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리는 부산스러웠고 눈까지 내려 마치 가두행렬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검은 롱코트에 분홍색 목도리를 하고 광화문에서 서대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혼자였다. 처음엔 눈을 의심했지만 틀림없는 장진화였다. 언제 북극에서 돌아온 것일까. 그녀는 정류장 앞을 지나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눈이 내리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앉아 있는 <나무와 벽돌> 앞 거리에서, 그때 나와 얼핏 눈이 마주쳤던가? 아니었던가.

나는 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가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구세군회관으로 갈라지는 길모퉁이에서 그녀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p.264

 

나는 우여곡절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고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버지의 입원을 이유로 몇 달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결국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고 나는 다시 방송 일을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말뚝에 매여 있는 염소들처럼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하나의 선명한 이름, 낯익은 장소다. 광화문에 있던 나무와 벽돌 그리고 구세군회관! 마치 소설 속 회색의 공간이미지가 지금 우리들 곁을 스쳐 지나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