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운동하는 선배의 얘기다. 장남인 그는 신혼 때부터 홀로 된 노모를 모시고 살아왔다.

부인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집에서 모시기로 마음먹었다. 아들도 혼자뿐이어서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그가 큰 곤경에 처했다. 80살이 넘은 노모의 치매가 점점 심해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30년 가까이 같이 지낸 맏며느리 얼굴조차 몰라보게 됐다. 오로지 아들 얼굴만 기억할 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낮에는 구청에서 운영하는 데이케어 센터로 가시도록 했다.

문제는 노모가 ‘퇴근’하는 저녁 시간이었다.

“왠 낯선 여자가 우리 집 살림을 만지느냐”며 며느리에게 시비를 거는 것은 물론이고 머리채를 휘어잡기도 했다.

착한 심성을 가진 부인도 몇 달 간 이 같은 난리통을 겪게 되자 면역체계가 깨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말았다.

선배는 결국 돌아가실 때까지 집에서 모시겠다던 자신의 결심을 꺾고 요양병원으로 노모를 모셨다.

요즘도 휴일마다 병원을 들르지만 마음이 아프다고 선배는 말했다.

 

치매환자인 부인 얘기를 다룬 프랑스 영화 ‘아무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노인 10명 당 1명꼴인 치매 환자

‘치매(Dementia)’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 ‘정신이 없어진 것’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이 든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이 바로 치매다.

실제로 우리나라 성인 3명 가운데 1명은 ‘각종 질환 가운데 치매를 가장 두려워한다’고 응답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치매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치료가 어렵기 때문이다.

방사선 치료나 수술이 가능한 암과 달리 치매는 증상을 일부 완화하는 약물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근본적인 치료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치매에 대해서는 누구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로 누구보다 똑똑했던 이태영 여사도 말년에 치매를 앓은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교육 수준과 치매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셈이다. ‘가방끈(?)이 길면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은 어디까지나 속설일 뿐이다.

세계적으로 고령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치매 환자는 급증하는 추세다.

최근 중앙치매센터가 공식적으로 밝힌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치매 환자 66만 명에 이른다. 노인 10명 당 1명 꼴이라고 한다.

통계를 좀 더 들여다보자. 치매환자 1인당 관리비용은 2000만원이 넘는다. 국가가 치매를 관리하는 비용은 13조 6000억 원이 든다.

우리나라 GDP의 0.8%를 차지하는 규모다. 국가적으로도 큰 문제인 셈이다.

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치매를 앓는 사람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후에는 이 숫자가 최소한 2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치매는 ‘쓰레기통이 넘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쓰레기통이 찰 때는 외관상으로 전혀 표시가 나지 않다가 넘칠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치매를 걱정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운동이다.

미국 듀크대 엘러스 교수는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면 뇌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뇌 운동을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신문을 매일 읽는다거나 하는 노력도 뇌가 녹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고스톱을 치면 치매에 안 걸린다’는 항간의 속설도 머리를 녹슬지 않게 하라는 얘기일 게다.

 

하체 튼튼하면 치매 걸릴 위험 낮아져

뇌 기능을 좋아지게 하는 방법 하나가 바로 운동이다. 운동을 하면 근육이 단단해지듯 뇌 기능도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미국 일리노이 주에 있는 네이퍼빌 고등학교에서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아침 7시 10분, 이른바 0교시에 체육 수업을 실시한 것이다.

준비운동을 끝내고 1마일을 달리는데, 달리는 동안 평균 심장박동을 185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했다. 결과는 어찌됐을까.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2배 높아지고 스트레스는 크게 줄어들었다.

노인들에게도 운동은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을 하지 않는 60~79세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그중 절반에게만 유산소운동을 시켰다.

6개월 후에 그들의 전두엽과 측두엽이 커진 사실을 알아냈다. 전두엽과 측두엽은 치매, 우울증, ADHD 등 다양한 병과 연관이 있는 부위다.

6개월간의 운동이 뇌의 중요 부위를 바꾸어버린 것이다.

 

 

이 연구를 주도한 하버드대 존 레이티 교수는 “뇌가 젊어지려면 운동을 하라”며 “사흘 동안 달리기를 하면 뇌신경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생체단백질이 2배 이상 늘어난다”고 말한다.

레이티 교수는 연구 결과를 정리해 <운동화 신은 뇌>라는 단행본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 책은 운동과 뇌와의 관계에 관해 체계적으로 정리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한편으로 운동은 항우울제의 대표주자인 졸로프트보다 더 효과가 좋은 우울증 치료제라고 말한다.

나이든 사람에게 운동은 치매에 걸릴 확률을 낮춰주는 것은 물론 우울증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발표한 치매 관련 내용도 큰 화제를 모았다.

연구 결과를 짧게 요약하면 “하체가 부실하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경북대병원 연구진이 65세 이상 3만 명을 대상으로 하체근력 검사를 통해 내놓은 결과다.

운동기능이 저하되면 뇌를 자극하는 물질들이 줄어들면서 뇌의 퇴화가 빨라지기 때문이란다.

나이 들어서 어떤 운동을 하면 좋을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 바로 걷기다.

하체근력을 강화하려면 걷기나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 게 가장 좋다.

전문가들은 빨리 걷는 정도의 중등도 운동만 지속해도 하체 근육이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지난 회에서도 강조한 것처럼 달리기나 걷기의 핵심은 “꾸준히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달리기를 꾸준하게 하는 나는 치매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하게 되는 근거도 된다.

세계적인 초고령화가 진행 중인 일본에서는 ‘근육저축’이라는 단어가 유행이라고 한다.

늙어서 행복하려면 통장저축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근육저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