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깨고, 성장을 멈추고

 

‘철’ 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인간은 태어나고, 삶을 산다. 겪는 많은 일들. 생로병사, 희로애락, 백팔번뇌???. ‘철’ 들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까? 왜 ‘철’ 들지 않음을 나쁨으로, 못남으로 간주할까? “언제 철 들래”, “제발 철 좀 들어라”, “철 딱 서니 없는 철부지들”. ‘철’,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힘.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하나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ㅡ 데미안, 헤르만 헤세 ㅡ

 

 

 

 

하늘로 날아 오르려 알을 깬다.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通過儀禮), 고통의 끝. 그러나 ‘알’을 깨고 나온 희열 뒤에 감춰진 진실을 아는가? 하늘이라는 세계로 날기 위해 알이라는 세계를 깨트리는 과정은 단지 성장통(成長痛)일 뿐. 날기 위한 날갯짓, 하늘이라는 미지의 세계, 날아 오른 뒤엔? 어디로 날아 가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과 방황.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옴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일 뿐. ‘데미안’은 어디로 갔는가?

‘철듦’,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세상과 현실의 부정(不正), 어떻게 대할 것인가? 순종의 삶을 살까, 체념의 삶을 살까? 투쟁으로 극복하고 진실에 다가 설까? 암묵적인 눈에 보이지 않는 저항을 할까? 현실의 부정을 극복하려는 깨어 있는 의식, ‘카뮈’류의 부조리한 인간이 되기도 어려운 현실. “그 건 제 탓이 아닙니다”를 되뇌는, ‘뫼르소’ 의 삶. ‘철’ 든다는 것, 부조리의 부정(否定), 그 끝은 이방인의 ‘죽음’인가?

‘철듦’, 부조리의 인식.

 

 

 

성장이라는 혹독한 시기를 거쳐 나아가면서까지 인간은 ‘철’이 들어야 하는가? “외면적인 성장없이도 인간다움을 지켜 나아가는 것, 그 것이 우리의 과제이며 사명입니다”. 태어날 때 이미 어머니의 불륜과 세상의 모순을 알고 성장을 멈춘 ‘오스카’. 양철북을 두드리고, 노래를 불러 유리창을 깨트림은 현실의 부정인가? 귄터 그라스는 스스로 성장을 멈춘 오스카를 다시 자라게 함으로써 저항이 아닌 순응을 택했다.

‘철듦’, 순응.

 

 

 

 

마음 속에 악마가 사는 다섯 살

 

노래 부르는 것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특히 마음 속으로 노래를 부르면 할수록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다섯 살 말썽꾸러기. 가족에게 매맞는 것은 일상의 일. 마음에 악마가 살고 있어 혼자서 글을 깨우친 아이. 도시 빈민가에서 실직자 아빠와 생계를 위해 공장에서 야근하는 엄마. 말(馬)만한 누나들, 형과 남동생. 누나 하나와 남동생만이 자기 편인 아이. 

 

그 아인 마음으로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이야기 특히 어려운 이야기라면 사족 못쓰고 반쯤 미친다. 나비넥타이를 맨 시인이 멋있어 시인이 되려는, 사물들과도 얘기할 수 있는 아이. 마치 슬리퍼가 노래하듯 매 맞고 사는, 자신을 나쁜 얘 세상에서 가장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 비밀이 하나쯤은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드는 아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를 선택할 수 없다고 괴로워하는 아이. 악마를 대부라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말썽 피우는, 가족과 마을 공공의 적. 다섯 살 금발머리 꼬마, ‘제제’. 

 

실업자 아빠와 공장에서 일하는 엄마, 갈보 잔디라 누나와 유일하게 자기를 챙기는 글로리아 누나. 어떤 땐 친구 어떤 땐 적이 되는, ‘아기예수가 그냥 보이기 위해서만 가난한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부자들이 더 소용있음을 깨달았다’라고 생각하는 형 또또까. ‘어린이들에게 환상을 빼앗어서는 안 된다’며 유일하게 마음을 주고 자신 이상으로 아끼는 어린 동생 루이스.

  

제제는 이들과 가족이란 틀 속에서 팍팍한 관계를 이어간다. 궁핍한 현실의 삶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의지하며 우정의 ‘꽃’을 피우는 친구는 라임오렌지 나무 ‘밍키뉴’. 밍키뉴와 대화하고 상상하며 제제는 현실의 고달픔을 달랜다. 가족과의 갈등을 겪고, 동네사람들에게 말썽 피우고 핍박 받는 아이. 자동차 뒤에 매달리기 실패를 계기로, 죽이고 싶은 인간 나이 든 뽀루뚜가와의 운명적 만남을 갖고. 그 원수는 제제의 성장 매개체가 될 친구가 되어 우정을 ‘싹’ 틔운다. 나누고 배우고 성장하며 사랑의 ‘꽃’을 피우는 과정. 성장은 ‘철’에로의 다가섬.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 하나요?

 

양철북의 오스카는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 하나요”라며 스스로 성장을 멈추었다. ‘철’이란 무엇일까? 그래 제제는 ‘철든다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라고 생각한다. 고속도로 뛰어 건너기, 생각(속으로 말하고 보는 것들)이란 것이 생기는 게 ‘철’드는 것. 어른들을 이해하는 것이 때때로 힘들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나누는 밍기뉴를 꽃 한 송이 피울 줄 모르는 어리고 보잘 것 없는 나무로 생각하는 게 ‘철’들기. 그러나 그런 ‘철’들기 위한 행동은 단지 시작일 뿐. 아무리 조숙해도 다섯 살 꼬마는 스스로 ‘철’들 수 없다.

 

뽀루뚜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 충격으로 하늘나라로 가고 싶어 앓아 누운 제제. 밍기뉴의 ‘꽃’ 피움을 계기로 계속 살아가야 할 운명임을 깨닫고 비로서 ‘철’들 준비를 시작한다. ‘꽃핌’은 작별 인사이며 현실과 고통의 세계로 들어서는 ‘철 없음’과의 단절. 슬픔과 이별이라는 아픔을 겪으며, 라임오렌지나무가 머지않아 베어질 것이라는 현실 앞에서 마음에선 이미 밍기뉴를 베어 냈을 때 ‘철’은 찾아와 있었다.

 

 

 

 

저를 놓아 주세요, 샘물님

꽃이 울며 말했습니다

나는 산마을에서 태어났어요

나를 바다로 데려가지 마세요

그곳에선 하늘하늘

가지를 흔들었지요

그곳에선 푸른 하늘에서

청초한 이슬 방울이 떨어졌지요

차갑고 명랑한 샘물은

소곤소곤 속삭이듯

모래밭을 달리며

꽃들을 실어 갑니다

 

 

 

라임오렌지나무의 ‘자람’’과 ‘꽃핌’, ‘베임’은 곧 새로운 탄생을 뜻한다, 제제의 ‘철듦’. 피어난 꽃들은 샘물에 실려 흐르고 흘러 모래밭이라는 성장통을 거치며 바다로 향한다. 흐름을 거친 바다로의 여정, ‘철듦’은 완성에 다가 선다.

  

 

 

 

 

 

하늘에 예쁜 구름이 지나갈 때

  

제제의 마음엔 작은 새가 살고 있다. 작은 새는 어린아이들이 여러가지 일들을 배우는 걸 도와주려고 하느님이 만드셨다. 제제는 ‘생각이 자라고 커서 우리 머리와 마음을 모두 돌보게 된다는 것을, 생각이 우리 눈과 인생의 모든 것에 깃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늘에 예쁜 구름이 지나갈 때 마음 속의 작은 새를 떠나 보내 하느님 손끝에 앉게 함으로써, 라임오렌지나무의 ‘꽃핌’으로 시작된 ‘철듦’은 이제 바다에 다다른다. 제제의 ‘철듦’은 작은 새를 떠나 보냄으로써 찾아 왔다.

  

제제에게 ‘철’든다는 것은 서랍 속에 악마를 가둬 두는 것도 아니고 카우보이 영화를 그만 보고 애정 영화를 보기 시작하는 것도 아니다. 지나가는 기차에 손 흔드는 것을 그만 두는 것도 아니고 사랑을 준 것만큼 언제나 사랑을 되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아니다. 사랑을 알고, 슬픔과 이별을 겪으며 서서히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철듦’은, ‘노래하지 않고도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바다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지은이: 주제 마우루 지 바스콘셀로스(브라질, 1920~1984)
옮긴이: 박동원, 펴낸이: 동녘(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