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종 씨와 그의 아내는 매일 아침 토토(래브라도 리트리버, 3년 9개월, 남자, 윤기 도는 베이지색 털이 뽀송뽀송한 녀석)의 혓바닥 세례에 잠에서 깬다. 이들은 한 이불 식구다. 토토는 정확히 오전 6시 40분이 되면 기종 부부 사이를 파고들며 성인 만한 몸을 쭉 늘리면서 기지개를 켠다.
‘끙~~’, 두 부부가 이 사람이 내는 것 같은 소리에 잠에서 깨면, 곁에서 토토가 웃고 있다. “아이고 우리 토토~” 이들이 반기는 아침 인사 소리에 토토는 마치 메트로놈이 움직이듯 꼬리를 좌우로 연신 흔들어댄다. 그 경쾌한 모닝 꼬리 체조를 볼 때마다, 기종 부부는 소박하지만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
박기종 씨 부부는 맞벌이다. 몇 년 전, 진심 50%, 충동 50%의 동기로 토토를 입양한 후, 두 부부의 일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처음엔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집을 비워야 하는 게 가장 마음에 걸렸다. 대형견이 아파트에서, 그것도 하루의 반을 혼자서 지낼 수 있을까? 자신들의 욕망을 챙기느라 토토의 견생(犬生)에 그늘을 드리우는 건 아닐까 죄책감도 들었다.
그럴수록 토토에 대한 마음이 더 깊어졌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춥든 덥든 토토와의 산책을 거르지 않았다. 매주 주말이면 늘 토토를 데리고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 수반되는 모든 판단의 기준은 ‘토토’였다. 토토가 입장할 수 있는, 토토가 즐거워할 만한, 토토의 조건에 맞춘 곳으로만 여행을 다녔다. 그러자 토토는 두 부부가 일할 시간, 하루 9시간 이상의 외로움을 잘 견뎌주었다. 종종 집안의 웬만한 살림이 남아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박기종 씨 부부는 토토와 함께 할 미래를 꿈꾼다. 다음 살게 될 집을 상상할 때면 그 가운데엔 토토가 뛰어다닐 넓은 마당이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 뛰어놀 녀석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삭막한 도시 보단 자연을, 사람들과 부대낄 시간 보단 녀석과 즐길 여유를 더 희망한다. 토토와 북유럽의 대자연 어느 곳에선가 함께 야영할 수 있는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함께 눈맞추고 살 부비며 달릴 수 있는 일상을 소망한다. 이들 부부는 토토 없는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 이들 식구가 제 수명을 다하고 죽는다면, 토토가 가장 먼저 세상을 뜨겠지만...
박기종 씨 부부와 토토의 시간들은 서서히 소멸해 갈 것이다. 천방지축 뛰어다니던 토토도 어느 순간 느려지고, 게을러질 것이다. 기종 씨는 병든 노견을 데리고 산책하던 한 견주가 토토를 보고 했던 말을 떠올려본다. “아이고 아직 강아지네요. 너무 좋네요, 저 젊음이. 얜(노견) 이제 주인이 들고나도 거들떠 보지도 않아요. 나중엔 이 때(토토가 강아지이던 시절)가 사무치게 그리울 거예요.” 그때가 되면 토토의 털엔 윤기가 없어지고, 영영하고 형형한 자태엔 생기가 희미해 질 것이다. 싱싱했던 몸과 입에선 군내가 나고, 불끈거리던 근육도 탄력을 잃어갈 것이다. 결국 토토는 박기종 씨 부부와 함께 병들어 갈 것이다.
2017년 3월 5일, 토토가 태어난 그 신비로운 날짜. 그리고 4월 30일, 박기종 씨 부부가 그 총총한 토토의 눈빛을 처음 마주한 날. 두 부부는 그 날을 햇빛 찬란했던 날로 기억할 것이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는 사람간의 도리도 다하지 못하면서 동물과의 관계 운운하는 건 허영과 사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날 불쑥 찾아온 녀석과의 삶은 이 세상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었다. 박기종 씨 부부와 토토는 같은 눈높이로 반려한다.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돌보는 관계로 늙어가지 않을 것이다. 눈 맞춰 교감하고 서로 다른 주파수를 가진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려 애쓰며 살아갈 것이다.
박기종 씨는 어느 날 꿈을 꿨다. 토토가 저 멀리로 걸어간다. 어디 가니? 답이 없다. 계속 불러보지만 여전히 답이 없다. 순간, 쓱 돌아본 녀석의 얼굴은 설명할 수 없는 행복감으로 충만하다. 그리고 사라져간다. 아주 멀리. 큰 나무들이 빽빽한 아주 먼 곳으로.
“... 우리는 늑대의 그림자 속에 서 있다. … 늑대의 그림자란 늑대가 드리우는 그림자가 아니라 늑대가 발하는 빛 때문에 인간이 드리우는 그림자를 말한다. 그리고 이 그림자 속에 서서 우리를 뒤돌아보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인정하기 싫어하는 인간의 본질이다. / 가끔 수다쟁이 영장류 대신 내 안의 과묵한 늑대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_<철학자와 늑대> 마크 롤랜즈
[상기 이미지 및 원고 출처 : 신한 미래설계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