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근대철학을 종합한 임마누엘 칸트는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그 사람의 인성을 말해준다”고 했다. 마하트마 간디는 그 판단의 지평을 국가로 확장시킨다. 한 나라의 도덕적 성숙도는 그 사회가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려인구 1000만 시대. 이제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낯설지 않은 일이 돼버린 대한민국은 어떨까? 대한민국에서 사는 반려견과 반려묘들은 과연 행복할까? 지금 당신 곁에 반려견이 있다면 물어보자. “당신은 행복합니까?”
요즘 종종 주변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난다.
“내가 누군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 사람이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지야.”
너무 편협한 것 아닐까? 동물을 대하는 태도로 그 사람을 판단한다고? 다시 물었다.
“그럼 동물에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은 덜 된 사람이라는 거야?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건가? 동물이 뭐라고... 사람에게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답이 돌아왔다.
“동물 보다는 사람이 먼저라는 얘긴데, 우리가 성차별을 얘기할 때 성인지감수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동물권을 얘기할 때도 사고의 전제 조건이 중요한 거 아닐까요. 동물의 권리를 인권과 같은 선상에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동물은 사람 다음이 아닙니다. 동물의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겁니다. 저는 요즘 누군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자꾸만 보게 됩니다. 그것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할 순 없죠. 동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동물에 대한 좋고 싫음과 존중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곰곰이 새겨보아야 할 대화다. 많은 사람들이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시대다. 결혼해 가정을 꾸린 경우 자식을 낳진 않지만 반려견을 자식처럼 키우는 경우도 늘고 있다. 1인 가족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동물과 공존 하고, 나이 들어가면서 동물과 서로 의지하는 세대도 많아졌다.
하지만 그러기엔 아직 우리 사회가 더 진보해야 한다. 더 열려야 하고 더 많은 것을 포용해야 한다. 더 성숙해져야 한다. 사람과 동물을 차별하지 않는 사회. 동물이 그 자체로 존중받는 사회를 상상해본다.
* 동물을 버젓이 사고 파는 우리를 부끄러워 하자. 기본적으로 동물은 매매의 대상이 아니다.
* 목줄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우리 댕댕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 왜 우리는 사람을 공격한 개에 대해서만 공분하는가? 개는 이유 없이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개에 폭력을 가한 사람은 별로 뉴스가 되지 않는다.
* 성인지감수성이 화두가 된 사회다. 똑같은 이유로 동물인지감수성도 있다.
* 당신 자식만 소중한 건 아니다. 당연히 당신 반려견만 소중하면 안되는 거 아닌가?
* 왜 우리는 사람간의 편견과 차별만 얘기하는가? 이제 사람만이 먼저란 말은 하지 말자.
정말, 이제 사람만이 먼저란 말은 하지 말자.
[상기 이미지 및 원고 출처 : 신한 미래설계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