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여행 가기 싫다는 아내의 마음을 돌리는 방법 …‘트레블 그레이’ 저자 한경표가 전하는 자유여행의 ABC
평생 군인으로 살다 뒤늦게 여행작가로 변신
“여행은 00다.”
빈칸 안에는 여러 빛깔의 단어가 들어갈 수 있겠지만 가장 많이 동원되는 것 중 하나가 ‘자유’다.
그렇다. 여행은 모름지기 자유가 선사하는 삶의 기쁨 아래 한데 포개지는 무언가다.
여행은 자유다, 라는 문장의 명사형인 자유여행은 젊은이의 특권처럼 통용되지만 꿈이 연령을 가리지 않듯 시니어들도 자유여행을 희망한다. 단지, 해보지 않았고 쉽사리 모색하지 않을 뿐.
‘트레블 그레이’의 저자 한경표 작가는 자유여행을 꿈꾸는 시니어들에겐 총사령관이다. 실제 전직 군인 출신인 그는 자유여행 희망자들을 모아(병사소집) 팀을 꾸리고(부대편성), 여행설계를 돕는다.(작전수립) 남은 긴 실행(공격개시). 그리하여 자유여행 실행에 앞서 문제는 연령이 아니라 저지를 용기라고 작가는 일갈한다.
그를 만나 5060, 나아가 70이 꿈꾸는 자유여행의 모든 것을 들어봤다.
- 자기 소개 부탁 드린다.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평생 군인생활을 끝마치고 다시청춘 연구소장 겸 여행작가인 한경표이다. 만나서 반갑다. 은퇴한 시니어들이 어떻게 하면 자유롭고 편안한 자기만의 여행을 즐길 수 있을지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이 주된 일이다.”
- 책 이야기부터 하자. <트레블 그레이>는 어떤 책인가.
“군 전역 후 국방관련 연구소에서 8년 간 일자리를 연장했다. 일찍부터 여행을 좋아했는데 이제 내 시간을 들여 여행에 더욱 깊이 뛰어들고 싶었다. 여행작가 겸 기획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자유여행 안내서를 꼭 쓰고 싶었고 그 대상은 시니어로 잡았다. 평생 여행을 다니면서 쌓아놨던 여행정보와 노하우를 모아서 7개월 동안 집필한 책이 <트레블 그레이>다. 자유여행 입문자들에게 동기부여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 전역 이후 안정적인 직업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도 적극적인 사표를 냈던 건데, 아내의 반대는 없었나.
“33년 간 군인으로 살아서 연금도 나오고 이후 안정적인 직장을 다녔으니 사실 경제적으로는 어렵지 않았다. 내 나이 64세에 사표를 내고 아내와 함께 남미 여행을 떠났다. 다행스럽게도 아내가 그 여행을 나보다 더 좋아했다. 나도 좋고 아내도 좋아하니 뭐 일단 용기는 생긴 거지.
스스로는 ‘자유로워지자’는 욕심이 강했는데 아내도 큰 반대 없이 내 결단을 받아줬다. 이후 아내와 함께 40일간 유럽여행을 떠났다. 그 경험을 녹여 책도 쓰고 강연도 하고 그렇게 지냈다.“
아내와 함께 간 마테호른 고르너그라크 전망대
페루 마추픽추
- 요즘 유행하는 취미가 직업이 된 ‘덕업일치’ 사례인데, 덕업일치의 일상은 어떤가.
“책 쓰고 강연하고 유튜브도 고. 쉽게 말하면 ‘군바리’가 작가로 변신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더 놀란다.(하하) 최근엔 유튜브에 재미를 느껴서 열심히 하고 있다. 광고도 붙었다. 여행상점이라는 회사에서 일자리 제안을 받았는데 그때 5일 출근은 안 한다, 라는 조건을 달았다. 그게 싫어서 회사 나왔으니. (하하) 내 업무는 콘텐츠 기획이다. 시니어 여행클럽을 만들어서 2회차째 운영하고 있다.“
- 액티브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자유여행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 이야기를 좀 해보자.
“여행이란 것이 사실 개인마다 기호가 다르다. 여행을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렇지 않은 다른 이들도 있는 거지. 클럽에 나오는 어떤 중년 여성분은 ”남편이랑은 절대 여행 못 가겠다“고 하더라. 여행 같이 갔더니 이건 ‘짐덩어리’에 다름 아니라나. 우스개 소리이지만 여행이란 관점에서 서로 취향이 맞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 클럽에는 여행 파트너를 찾고 싶은 분들이 찾아온다. 친구들이랑 여행을 갔더니 하루 종일 화투 치고 술 먹고, 이런 경험을 해봤더니 여행 취향이 맞는 친구가 더 절실해지는 거다.”
- 참가자들의 연령대는 5060?
“최근 초청을 받아 강연을 진행한 적 있었는데 프로필을 봤더니 대선배님 한 분이 오셨더라. 그래서 그랬지. ‘여러분 여기 중학생이 한 분 오셨네요. 손 들어보세요.’ (하하) 대다수는 말씀대로 5학년(50대), 6학년(60대)가 주를 이루는데 간혹 중학생(70대)도 오신다.
10명 내외가 딱 적당한 규모인데 이들을 두 팀으로 나눠서 테마를 각자 정해 여행을 기획한다. 액티브한 사람들은 트레킹이나 액티비티를 중심으로, 정적인 분들은 미술관, 유적지 등을 위주로 자기만의 여행을 설계하는 거다.“
- 시니어의 여행이라고 하면 패키지 여행상품처럼 수동적인 이미지가 연상되는데, 작가가 운영하는 커뮤니티는 다른 지향점이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테마가 있는 자유여행을 기획한다. 나 같은 플레이어를 트레블 메이트라고 부르는데 기존 가이드하고 다른 점이라면 각자 전문성을 지닌 분야에서 여행계획을 수립한다. 가령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전문가와 함께 손흥민 선수 직접관람 여행을 짜는 거다. 12일 정도 일정에 2차례 주말경기를 관람하는 코스인 거다. 여행쇼핑은 토트넘 굿즈, 저녁 프리타임은 토트넘 팬들이 주로 찾는 펍을 찾아가는 식이다.”
- 자유여행과 패키지여행은 무엇이 다를까. 본질적인 관점에서 말이다.
“나는 ‘여행이란 총 3번을 경험하는 것이다’란 지론을 갖고 있다. 계획할 때, 준비할 때, 실제 여행을 떠날 때. 여행지를 선정하면 책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즐겁다. 준비과정에서 마음은 이미 여행지로 떠나 있는 거지. 이게 자유여행의 매력이다.
살면서 패키지 여행을 딱 한 번 가봤다. 누님들과 함께 중국으로 가족여행을 갔다. 그때 깨달았다. 패키지 여행은 내가 원하는 것들이 빠져 있다고. 이를테면 장가개에 가면 꼭 보고 싶은 광경이 있는데 그 패키지 여행상품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 뿐인가. 음식도, 쇼핑도,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짜여 있는 틀 안에서만 가능하다. 스스로 조금만 더 디자인하고 계획하면 충분히 가능한 것들인데 패키지 상품으로는 그런 것들이 충족이 안 되는 거지. 오해는 말라. 패키지 여행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진지하게)“
- 시니어들이 해외 자유여행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언어장벽을 부담스러워 한다.
“그렇다. 언어장벽은 자유여행을 꿈꾸는 시니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해외여행 가서 영어가 안돼 돌아오는 사람은 없다. 어떻게든 해쳐 나간다. 언어라는 것이 반드시 입으로 내뱉어야 하는 게 아니다. 몸짓, 손짓, 발짓은 여행가들이 즐겨 쓰는 언어다.
여행가들이 쓰는 영어를 두고 ‘글로비쉬’라고 한다. 글로벌과 잉글리쉬의 합성어인데 말 그대로 소통영어다. 글로비쉬에 쓰이는 영단어는 대략 1,500개 수준이다. 기본적인 단어와 문법만 알면 충분하다.
예를 들어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치자. 외국인한테 ‘토일렛 플리즈’, 단 두 마디면 문제가 해결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우리는 외국인이고 여행객이라는 사실이 이미 수용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자유여행을 꿈꾼다면 언어에 대해 미리 겁 먹지 말라. 앞서서 두려워하는 것일 뿐 언어는 자유여행의 장벽이 아니다.“
- 작가님은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겠다.
“세계 일주 여행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하하) 대략 35개국을 방문했다. 여행지를 선정할 때 내가 정한 방법은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하나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이다. 우선순위는 가장 멀리 있는 곳이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멀리 있는 곳을 다녀오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일본여행은 딱 한 번 가봤다. 중국은 가능하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먼 곳 위주로 갔고 대도시는 잘 가지 않았다. 올해는 아프리카를 꼭 가보려고 했는데 코로나19로 중단됐고.“
- 국내여행도 많이 다녔을 것 같다.
“우리 가족들끼리 하는 말이 있다. 우리 모두는 직업이 여행가라고. (하하) 우리 가족은 평생 23번 이사를 해봤다. 군인이 그렇다. 부임지가 매번 바뀌니깐. 큰 아이가 하는 말이 초등학교 1~6학년까지 학교이름 순서를 온전히 말하지 못하겠다더라. 하도 전학을 많이 해서 헷갈린 거지. 요즘에는 코로나19로 해외를 못 나가니깐 국내여행을 주로 다닌다. 특히 섬여행에 빠져 있는데 최근에는 클럽멤버들과 함께 서해, 남해의 섬을 찾아다니고 있다.“
- 본질적인 질문, 당신에게 여행이란 무엇인가.
“나의 여행 타이틀은 ‘여행복’이다. 무슨 말이냐면 여행을 통해 행복을 추구한다는 거지.
행복을 뜻하는 영어단어가 2개다. 해피니스(Happiness)와 블리스(Bliss). 해피니스는 우리가 잘 인지하고 있는 일상에서 느끼는 만족 같은 것이고 후자인 블리스는 전율이 느껴지는 충만함, 뭐 이런 뜻이다. 두 가지 구분은 위키피디아에 나오는 건데 나에게 여행이란 전율을 느낄 만큼의 행복을 뜻한다. 나는 여러 테마여행 중에서도 특히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을 좋아한다. 파타고니아, 미국 본토의 국립공원, 이런 곳에 갈 때마다 자연이 선사하는 경이로움, 그 경이로움이 안겨주는 무한한 행복을 느꼈다. 여행은 나에게 그런 전율을 가져다주는 행위인 셈이다.“
- 작가님 책을 보면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저지를 용기라고 강조했던데, 비슷한 맥락 같다.
“모바일, 유튜브 같은 신 문물을 잘 다루다 보니깐 친구 중에서 나에게 대신 페이지 개설이나 아이디 등록 같은 것을 부탁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네가 직접해’라고 핀잔을 준다.
흔히 100세 시대라고 말하잖아. 그런데 나는 어쩌면 우리는 죽지 않을 수 있는 시대에 살지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그만큼 수명이 늘어나면 우리의 태도도 달라져야 하잖아. 무슨 말이냐면 의무교육을 통해 학습을 하고 그걸 바탕으로 직업을 얻고 일을 했다. 그런데 은퇴 이후 마주치는 세상은 그 이전과 다른 거다. 어렸을 때 받았던 교육이 생존교육이라면 은퇴 이후는 생활교육을 받아야 한다. 스마트 기기 같은 것은 자신이 직접 해야 하는 시대라는 뜻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인생 후반부를 행복하게 사는 법 중 하나는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그 여행은 어렵지도 않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시도할 수 있는지 여부는 온전히 스스로 결심에 달려 있다. 그래서 저지를 용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당신을 따르면 자유여행이 어렵지 않은 건가. 자기 PR 시간이다. (하하)
“여행클럽을 운영하는 이유는 팀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사람마다 잘 하는 게 다르다. 누구는 정보습득을 잘하고 누구는 음식을 잘하고 누구는 통솔을 잘한다. 나의 역할은 취향이 맞고 비슷한 여행컨셉을 지닌 사람들을 모아서 각자에게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자유여행의 성공요소는 이러한 팀워크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이다. 나만 따라오면 ‘여행복’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하)“
- 마지막으로 다음 목표가 있다면.
“미국 본토에 있는 60여개 국립공원 횡단이다. 북미 국립공원 여행을 두 번 해놨는데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다른 건 몰라도 미국이란 나라가 복 받은 땅인 건 확실한 것 같다. 대략 3~6개월 기간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함께 할 팀원을 물색하고 있다. 차량을 타고 국립공원 횡단하는 컨셉이라 자동차 전반, 영상 전반에 전문성을 지닌 분들 위주로 팀을 구성할 예정이다. 그 과정을 글로 남기고 유튜브 방송도 하면서 구독자들에게 전달할 계획이고.“
- 마지막으로 자유여행을 꿈꾸는 시니어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여행은 건강하고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여정이고 우리 클럽에 오는 분들은 그 과정을 즐기러 오신다고 믿는다. 건강한 삶, 행복한 삶을 꿈꾸는 시니어들이여 그 과정을 즐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