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본격적으로 사막과 만날 시간이다. 고비는 '물이 없는 곳'이라는 몽골어다. 전체 구역의 길이는 1,600km이고 너비는 480km~965km다. 몽골과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내몽골로 불림)의 넓은 땅을 가로질러 뻗어 있다. 봄철에 우리를 괴롭히는 황사가 여기서 온다. 바람이 얼마나 세면 우리나라까지 모래가 날아오겠는가. 몽골을 바람의 나라라고 부를만하다. 그중에서 그레이트 고비로 불리는 곳은 폭 12Km, 길이 100Km, 높이 약 300m의 사구인 홍그린 엘스다. 이 사구를 오르는 게 이번 여행의 목표다. 첫날은 비가 와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다음 날 아침에도 비가 내렸지만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사구를 오르기 전 신발은 벗어서 한곳에 모아둔다. 맨발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신발을 벗듯 욕심도 벗어버리자.
욕심과 함께 벗어버린 신발들
천천히 모래 위를 걸었다. 젖은 모래가 발바닥을 시원하게 마사지해 주었다. 가시처럼 앙상한 가지에 초록 잎을 단 식물을 보았다. 끈질긴 생명력이 경이롭기만 했다. 햇볕을 받아 마른 모래가 다양한 무늬를 만들었다. 바람이 불면 금싸라기처럼 모래가 날렸다. 모래가 들어오지 않도록 얼굴을 감싸고 걷는 동안 진정한 의미의 방랑자가 된 기분이었다.
맨발로 사구를 오르다
마른 모래가 많아질수록 걷기가 힘들었다. 두 걸음 올라가면 한 걸음 미끄러졌다. 걷는다기보다 엉금엉금 긴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손과 발을 모두 이용해 힘겹게 올랐다. 마침내 사구에 올랐을 때 입을 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사막은 끝없이 넓었다. 앞에도 뒤에도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사방이 모래였다. 바람에 땀을 식히며 아득한 모래 언덕을 바라보고 있자니 벅찬 감동이 밀려오며 심장이 펄떡펄떡 뛰었다. 불편과 괴로움을 감수하고 올만 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사구에 앉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철학자라도 된 듯 생을 관조하는 말을 쏟아냈다. 사구 위에서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해졌다. 까마득히 먼 지평선 위에 보이는 건 알타이산맥이다. 알타이는 금이 묻혀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사구 정상에서 생을 관조하다
사구에서 내려오니 기사가 모래에 파묻어두었던 콜라를 꺼내 주었다. 제법 시원해서 갈증을 다스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낙타를 타기 전에 민가에 가서 양을 샀다. 바닥에 피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고 양을 잡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양은 허르헉이라는 요리가 되어 숙소로 배달된다. 허르헉은 뜨겁게 달군 돌로 양고기를 익힌 요리다.
티메라고 불리는 몽골의 낙타는 혹이 두 개인 쌍봉낙타다. 기분이 나쁘면 고약한 냄새가 나는 침을 뱉으니 화려한 색 옷을 입거나 바람에 스카프 자락을 휘날리면 안 된다는 주의를 받았다. 말을 모는 사람을 마부라고 부른다. 그런데 낙타를 모는 사람은 뭐라고 불러야 하나? 낙타부? 낙타 두 마리에 낙타부 한 명이 딸려 있다. 쌍봉낙타라서 혹 사이에 앉는다. 처음에는 앞의 혹을 꼬옥 끌어안았지만 이내 안정된 자세로 탈 수 있었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아래 황금색 사구를 등지고 초원을 유람하는 모습이 실크로드를 누비던 대상 같지 않은가?
낙타를 타고 초원을 유람하다
다음 행선지는 욜인암이다. 욜은 독수리의 일종이긴 하지만 독수리와는 다른 새다. 욜인암은 독수리 부리처럼 날카롭게 패인 협곡이라는 뜻이다. 가는 길이 험난했다. 폭우에 길이 쓸려나가서 무게를 줄이기 위해 차에서 내려 걷기도 했다. 한여름에도 얼음이 남아 있는 곳인데 트레킹하기 좋다. 바위산 위를 유유히 나는 욜도 보고, 깎아지른 절벽에 서 있는 야생 산양도 볼 수 있다.
욜인암 협곡의 트레킹 코스
몽골말로 말을 멀이라고 한다. 말등에서 태어나 말을 타다 죽는다는 말처럼 말과 관련된 전설이 많다. 멀을 타고 협곡을 지나 보자. 마부가 딸려 있지만, 승마 교육을 귀담아듣는 게 좋다. 낙마에 대한 주의를 제일 많이 받는다. 헬리콥터 타고 병원에 가야 한다나?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으나 필자의 말을 몰던 아가씨가 중간에 돌아가 버렸다. 말은 당장 코스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갔다. 아찔했지만 고삐를 오른쪽 왼쪽으로 당기기도 하고 배를 가볍게 걷어차기도 해서 무사히 출발 지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식은땀이 났지만 재미있고 유쾌한 경험이었다. 근처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에는 욜과 독수리, 늑대, 여우 등 욜인암 근처에 사는 동물 박제가 있다. 여우 모자를 사지 못했다면 여기서 사면 된다. 단 아직 완전한 상품이 되지 못했으므로 한국으로 돌아가면 꼭꼭 싸 두지 말고 환기가 잘 되는 곳에서 말려야 한다. 그냥 두면 곰팡이가 생긴다. 염색한 가죽에 그림을 그린 지갑이나 낙타 털로 만든 장갑, 양말 등 기념품을 사자. 값도 싸고 품질도 좋다.
말과 교감하며 협곡 탐험하기
작은 굳센 바위라는 의미의 바끄가자링 촐로에는 이름과 달리 엄청나게 큰 바위가 많다. 수정을 캐던 동굴이 있고 고승이 수도했던 동굴도 있다. 지붕이 무너진 사원터도 있고 장님의 눈을 뜨게 했다는 약수터도 있다. 기적을 바라며 필자도 이곳에 착륙했다.
기적을 체험하려고 한국에서 왔어요
서울행 비행기를 타려면 울란바토르로 돌아가야 한다. 울란바토르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은 캐시미어 가게다. 고비 캐시미어는 국영이기 때문에 가격이나 품질을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서울에서 200만 원가량 하는 100% 캐시미어 코트를 1/3 가격에 살 수 있다. 비우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지만 캐시미어 제품은 채워서 오자. 내의부터 스웨터 자켓 코트 양말 모자까지 모든 게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물러나면 바람의 나라 몽골에 꼭 가 보자! 우리도 몽골리안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