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로운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 세월의 흔적이 담긴 오래된 잡동사니만 모으는 한 사람이 있다. 그가 모아온 추억의 물건은 그 시절 티 없이 맑던 어릴 적 모습을 상기시켜 괜스레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글. 김민주 사진. 이정수
옛 기억을 마주하는 시간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미미인형, 세일러문 스티커, 매직키드 마수리 목걸이를 보니 꼬꼬마 시절 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뽈랄라 백화점’의 주인 현태준 단장은 레트로 감성이 흥미로운 젊은이에게 재미를, 그 시절 순수한 기억을 떠올리고픈 어른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있다. 아마 현존하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뽈랄라 백화점이 바로 그런 존재이지 아닐까.
현태준 단장은 빈티지 장난감, 피규어, 만화 등을 모으고 있는 수집가이자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를 겸하고 있다. 다양한 물건을 수집하고 있는 그는 그저 수집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2011년 ‘뽈랄라 수집관’을 열었다. 그러나 수집관을 열자마자 그는 예상치도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그동안 수집해왔던 물건이 워낙 많은 탓에 정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정식으로 문을 열기까지 1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뽈랄라 수집관을 처음 열었을 때 입장료가 있다고 하니까 손님들이 그냥 나가시더라고요. 그래서 개업하고 3~4년 후에 삼천 원 받던 입장료를 천 원으로 내렸죠. 이젠 좀 괜찮아지겠구나 싶었는데 또 젊은 친구들은 천 원도 없어서 그냥 나가는 경우가 생기는 거예요(웃음). 그렇게 쭉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적자를 보다가 3년 전에 뽈랄라 수집관을 ‘뽈랄라 백화점’으로 바꿨어요. 현재는 제가 수집하고 있는 모든 물건을 다 합리적인 가격에 팔고 있고, 적자에 탈출하면서 조금씩 가게가 살아나기 시작했어요. 또 무엇보다도 입장료를 안 받으니까 사람들도 부담 없이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어서 참 좋아요.”
여행 중 만난 빈티지의 세계
현태준 단장이 처음 빈티지 물건을 수집하게 된 건 1998년 IMF외환위기 때부터였다. 서울대 미대 공예학과를 나온 현태준 단장은 디자인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당시 디자인 회사들이 전부 어려워지면서 일이 끊기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마음먹은 그는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골목 구석구석을 여행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아내와 함께 친척이 살고 있는 미국과 캐나다로 여행을 갔다.
“처음 캐나다에 갔을 때 옛날 빈티지 물건을 파는 작은 가게를 보았어요. 캐나다 사람들이 가지고 놀던 온갖 신기한 물건들이 그곳에 가득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분명 우리나라에도 이런 빈티지 숍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여행 후에는 동네 문방구와 완구점 곳곳을 다니며 빈티지 물건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그 경험을 토대로 <아저씨의 장난감 일기>이라는 책을 냈어요. 또 제 책을 보고 저처럼 전국을 돌아다니며 빈티지 물건을 수집하는 마니아들도 생기기 시작했고요. 어떻게 보면 IMF로 인해 모두가 힘들었지만, 그 위기가 제겐 기회가 된 셈이죠.”
인생의 활력을 되찾는 일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한 번씩 찾아온다. 그럴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돌보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자신을 조금씩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특히 건전한 취미생활은 지친 일상 속에서 작은 돌파구가 되어 우리 삶에 활력을 찾아 줄 수 있다.
“나이를 먹으면 별로 기쁜 일이 없어요. 금방 지치고 무기력해지거든요. 하지만 수집생활을 시작하면서 늘 엔돌핀이 생기고,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것 자체가 참 기분이 좋더라고요. 실제로 저희 뽈랄라 백화점에 오시는 단골손님 중에 한 할아버지가 계시는데 그분이 미니카를 모으세요. 매일같이 TV만 보시고 집에만 계시는 노인 분들이 많으시는데 이렇게 취미생활하시는 모습이 멋져보였어요. 그리고 혹시라도 수집 생활에 관심이 생기는 분들이 계신다면 과도하게 비싼 것 말고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약간의 시간을 들여서 모을 수 있는 것부터 수집하는 걸 추천 드려요. 예를 들어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사면 주는 맥토이 같은 거요.”
대한민국에서 빈티지 잡화를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유일무이한 만물 상회, 뽈랄라 백화점. 현태준 단장은 만약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누군가가 하고 있었더라면 이 일을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이기에 더욱 사명감을 갖고 이 일에 임할 수밖에 없다는 그의 말에 진정한 프로 의식이 느껴진다.
어린 시절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소중한 단짝이 되어주던 장난감 친구들. 이젠 추억 속의 물건이 되어버렸지만 뽈랄라 백화점에서만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늘 지금처럼 어른아이의 동심을 지켜주는 뽈라라 백화점이 우리의 곁에 영원하길 간절히 바라본다.
[상기 이미지 및 원고 출처 : 신한 미래설계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