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

 

소통하지 못하고 불화를 겪는 가정들이 많다. 소통 단절은 고독사, 이혼, 가정 내 폭력 등 엄청난 사회 문제를 유발한다. 가족 소통의 출발은 부모와 자녀의 대화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각자 바쁜 일상에 지친 가족들. 세대 간 전혀 다른 언어 사용. 그나마 함께할 시간조차 부족하다.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가족이 함께한 시간은 하루 평균 13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소통의 방법을 고민한다면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어떤가? 최근 출간된 '아빠가 책을 읽어 줄 때 생기는 일들'은 부모 자식 간 공감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책은 옥명호 작가의 12년에 걸친 독서 육아기를 담고 있는데 작가를 직접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어떤 계기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게 되었나?
거제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성장기 동안 원양어선 선원으로 일했던 아버지를 직접 본 경우가 많지 않았다. 당연히 아버지와 대화한 적이 거의 없다. 아버지가 안아 준 기억도 없다. 아버지와의 유일한 대화가 어느 날 집에 온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공부 열심히 해라'란 이야기였다. 물론 그 소리는 아버지의 서툰 사랑의 표현이었다.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아버지로서 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자신을 사랑해 준 존재가 있다면 세상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이들과의 함께한 시간과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녹치 않았다. 잦은 야근과 넘치는 일로 심신이 지쳤다. 늦은 시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다 '문득' 잠깐 동안 책을 읽어주는 건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Q. 책 읽어 주기로 집안 분위기가 바뀌었나?
온종일 육아에 지쳐있던 아내가 좋아했다. 잠시나마 아이들에게서 벗어나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육아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었다. 아이들도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했다. 큰 아이가 일곱 살, 작은 아이가 네 살 때부터 책 읽어 주기를 시작했는데 12년이 지난 지금은 아이들과 하찮은 이야기까지 공유하는 친구로 지낸다. 성장기에 대한 고민뿐 아니라 사소한 잡사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바탕은 매일 밤 아이들 곁에서 책을 읽었던 시간 때문이다.

 

책 읽어 주기는 아내와 아이들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일과 사람에 치이고, 업무로 골치 아플 때도 책을 읽어주다 보면 어느새 머리가 맑아지며 홀가분함을 느낀다. 나중에는 아빠가 아이들에게 요구할 때도 있었다. 가족 모두에게 가장 행복한 추억의 시간이 되었다.

 

 

Q. 늘 책을 가까이하는 직업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닌가? 다른 아빠들도 가능하겠는가?
편집자들은 집에서 책 보기를 싫어한다. 직장에서 하루 종일 책을 접하기에 그렇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미안함이 책 읽어 주기를 계속하게 했다. 책은 늘 우리 가까이에 있으니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시간도 하루 15분 정도면 충분하다. 분량도 5~6쪽이면 훌륭하다.

 

 

Q. 고등학생 자녀에게 책 읽어주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계속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인가?
잠들기 전 아빠가 책을 읽어줘야 잠이 든다는 습관이 들었다. 고등학생이 되어도 부담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다 딸아이는 고 1이 되는 해 자연스럽게 그만두었다. 성장하면서 독립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섭섭했다. 원래는 결혼할 때까지 하기로 했던 터였다. 지금 고1인 둘째는 아직도 하고 있다. 저녁에 아빠에게 말한다. '아빠 준비 되었어요!'라고. 

 

자녀 양육 상담가인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부모가 책을 읽어주면 긍정적인 애착관계가 형성되어 정서지능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책이 아니더라도 옆에 있는 시간만으로 아이들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끼게 한다. 관계 형성을 통해 자기존중과 존재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놀이를 같이 하는 것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Q. 작가님이 생각하는 책 속의 한 줄을 소개해 달라.
'함께하는 시간을 희생하면 모두 가난해집니다'란 말을 하고 싶다. 희생은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시간의 희생으로 아이들의 현재는 행복하지 않다. 마더 테러사는 현대인의 끔찍한 질병은 관계의 가난, 외로움, 무관심으로 인한 황폐함이라 했다. 서로가 소외되어 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잠시 동안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무엇이 중요한지 되돌아 보고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했다. 지금은 다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시니어 가족에게 당부의 한마디 해달라.
어릴 적부터 소통했다면 모르겠지만, 나이 들어 대화를 시작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20대 중반 이후 객지에서 아버지와 대화를 시도할 때 많이 힘들었다. 어색했다. 그러나 여러 번 전화하며 먼저 다가갔다. 처음에 아버지께 전화드렸더니 다짜고짜 어머니를 바꾸려고 했다. 몸이 어떠시냐? 날씨이야기 등 마음이 열리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지금도 늦은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먼저 다가서서 질문을 던지고, 물어주고, 차 한 잔 권유하라. 처음엔 수동적이겠지만 자녀 편에서도 다가 올 것이다. 자녀도 기다려 왔던 일일 것이다. 꽁꽁 언 마음이 녹아내리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은 열린다. 한마디, 한마디 다가서는 용기가 소통하고 공감하는 순간으로 연결될 것이다.

 

50+시민기자단 김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