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잘했어, 너를 응원해.’
노란색 기둥 위에 적힌 글귀들을 마주하자 나의 두 눈이 맑게 개었다. 여전히 황사가 기세등등한 오후였지만 혜화초등학교 대문 끄트머리와 맞닿은 그곳에서 나는 청량감을 맛보았다.
요즘에야 서울 하늘 아래 어디서든 감성 충만한 글귀들을 만나기 쉽지만, 내 유년 시절엔 차원이 달랐다. ‘멸공’, ‘충효’, ‘자나 깨나 불조심’ 같은 말들이 학교나 거리를 지배했다. 말뿐만 아니라 폭력이 폭력으로 인식되지 않는 시대였으니 그게 무슨 대수였을까 싶다.
하긴, ‘국민학교’ 출신치고 매를 한 번도 맞지 않고 학창 시절을 보낸 이는 없을 것이다. 혹여 가풍이 남달라서 부모가 매가 아닌 대화로 양육했다 하더라도 학교는 피하기 어려웠을 테고. ‘아빠의 비호 아래 세상 무서운 것 없는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종아리로 날아드는 회초리 매운맛을 날마다 견뎌야 했으니까.
혜화동에서 살던 꼬꼬마 시절, 어머니는 미장원을 운영했다. 너무나 바쁜 엄마를 대신해 외할머니가 나의 엄마가 돼주었다. 나는 아버지가 나이 서른에 본 첫 딸이었다. ‘그래서 귀하디 귀한 공주님답게?’ 가 아니라, 온 동네를 무대 삼아 폭주하는 말썽꾸러기였다.
한 번은 할머니가 저녁상을 차릴 때였다. 안방에선 동생과 내가 놀고 있었다. 갑자기 안방이 너무 조용해졌고, 할머니는 싸한 느낌이 들어 달려갔는데 아뿔싸! 백일도 안된 동생 위에 방석이며 이불, 베개들이 뒤덮어 놓았단다. 난 기억도 못 하는 그 사건 이후, 할머니는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어, 넌 그때부터 맞을 짓만 골라 했다’라는 말을 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했다.
키가 자라면서 장난꾸러기 기질도 동반성장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내 등짝은 어김없이 할머니의 매타작에 불이 났다. 행길 건너 혜화초등학교 부근까지 행동반경이 넓어지자 나의 말썽 능력치도 사정없이 치솟았다. 할머니가 랩처럼 흥얼거리던 욕을 흉내 내면서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어느 날은 윗동네 아이들이 나를 혼내겠다며 나타났다. 육두문자를 날리며 평화롭게(?) 마무리하려 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단단히 마음을 먹고 왔는지 오히려 위협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땅따먹기하던 짱돌 하나가 내 손에 들려있음을 알아차렸다. 난 있는 힘껏 손을 흔들어댔다. 얼마나 마구잡이로 휘둘렀는지 한 아이의 얼굴이 피범벅이 되고 말았다. 부모님은 손이 발이 되도록 그 아이 부모님에게 빌었다. 화가 잔뜩 난 아버지는 나를 광 속에 가둬버렸다. 광에서 풀려난 밤에는 목침 위에 서서 내 나이보다 훨씬 더 많이 종아리를 맞았다.
내 여린(?) 종아리 위를 날아다닌 것은 바로 싸리나무 회초리였다. 마구잡이 매타작에서 회초리로 전환! 그것은 내가 유치원 신입생이 된 해에 일어났다. 매년 설이면 할머니는 외삼촌네에서 명절을 쇠고 왔는데, 그해 할머니의 귀가 보따리에는 특별한 것이 들어 있었다. 싸리나무 회초리 묶음! 부모님은 무턱대고 매를 들지 않고 반드시 잘잘못을 따지고 그에 맞는 벌로 회초리를 들기 시작했다. 부모 노릇이 처음인 두 분이 고육지책으로 택한 교육철학이었으리라.
사진 출처_ M.blog.naver.com/namutaku
싸리나무의 꽃말이 ‘사색, 상념’인 것은 이번 글을 쓰면서 알았다. 아하, 생각이란 걸 좀 하고 살라는 뜻이었나 보다. 언제까지 어린 생각에 젖어 살 거냐고, 자신이 한 행동을 스스로 되돌아보라는 울림이 담긴... 그 정도 생각까지는 몰라도, 회초리를 맞을 때는 최소한 내가 인격적 대우를 받는구나 싶었다. 내가 잘못해서 혼나지만 그럼에도 부모님은 날 귀하게 여긴다고 믿었으니까.
내가 태어나서 만난 첫 동네, 혜화(惠化)는 은혜를 베풀어 교화한다는 사전적 뜻을 가진다. 그래서인지 혜화동엔 ‘대학로’가 있고, 그곳은 학교 밖 문화예술의 배움터로 우뚝 서 있다. 수많은 연극과 뮤지컬 공연장들과 극단들이 생존하고 번영해왔다. 싸리나무 회초리만 없다뿐이지, 혜화동은 다양한 문화예술을 통해 젊은이들을 예술가로 일깨웠고 서울시민들을 문화적 삶으로 안내해준 무대인 것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참 괜찮은 곳이란 생각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차가 혜화동을 벗어나는데, 노란색 기둥에 적힌 청량한 글귀들은 여전히 내 귓가에 머물고 있었다.
‘네가 최고야, 제일 멋져, 너를 믿어, 사랑해.’
50+에세이작가단 정호정(jhongj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