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쓰지만 제겐 스마트폰이 없습니다. 스마트폰은 폴더폰보다 크고 무거워 부실한 제 어깨와 손목에 무리를 주는데다 비용도 폴더폰보다 많이 듭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스마트폰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게임을 좋아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서, 휴대전화는 통화할 때나 문자를 주고받을 때만 사용하니까요.

 

가끔 “어머 아직도 폴더폰 쓰세요?” 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희한한 사람이네’ 하는 식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고, ‘스마트폰 안 쓰면 자기는 편하지만 남들이 불편해’ 하며 은근히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럿이 만날 때 다른 사람들은 메신저서비스로 연락하면 되지만 제게는 따로 문자를 보내야 하니 연락하는 친구의 일이 늘어나겠지요.

 

‘시대에 뒤진 사람이다, 이기적인 사람이다’ 하는 비판을 받아도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이 들수록 에너지의 소진이 빨라져 하고 싶은 일을 못할 때가 많은데 끝없이 날아오는 메시지까지 응대하다가는 아무 일도 못한 채 시간을 보내게 될 테니까요.

 

스마트폰을 쓰지 않으면 사람들과 연락이 끊기고 외로워질 거라고들 하지만 제겐 아직 친구들이 여럿 있습니다.

 

 

시대에 처진 저를 이해해 주고 모임이 있을 때는 따로 연락해 주는 친구들... 술과 친구는 묵을수록 좋다는 말처럼 제 친구들이 모두 오래된 친구들이어서 그럴까요? 제 풍부한 결점은 못 본 척 늘 맞장구치며 격려해 줍니다, 신동엽((1930-1969)시인이 1965년에 <시단(詩檀)>에 발표한 시 ‘응’을 보면 시인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응 그럴걸세, 얘기하게

응 그럴걸세

응 그럴걸세

, ,

응 그럴 수도 있을걸세.

응 그럴 수도 있을걸세.

, 아무렴

그렇기도 할걸세

그녁이나, , 그녁이나

, 그래, 그럴걸세

응 그럼, 그렇기도 할걸세.

,

더 하게!”

--<申東曄全集(신동엽전집)>, 創作批評

 

신동엽 시인은 1930년에 태어났으니 이 시를 발표한 건 만 서른다섯 살 때입니다. 1965년의 서른다섯은 오늘날의 서른다섯과는 많이 달랐을 겁니다. 수명이 길어지면 정신적 성숙 또한 늦어진다는 설을 감안하면 신동엽 시인은 당시에 이미 지금의 ‘오십 너머’들만큼 성숙했을 것 같습니다. 당시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56세 정도였지만 지금은 80세가 넘었으니까요. 더구나 채 마흔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시인이 짧은 생애 동안에 쓴 시들을 보면 그는 생로병사로 이루어진 삶의 과정을 벌써 통찰했던 것 같습니다. 시인이 타계하고 일 년 후 <사상계>에 실린 시 ‘좋은 言語(언어)’의 마지막 두 연에 시인이 도달했던 경지가 뚜렷합니다.

 

때는 와요.

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 할 때

 

허지만

그때까진

좋은 言語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요.”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하게 될 때까지는 ‘좋은 언어’로 세상을 채워야 한다던 신동엽 시인이 지금 스마트폰이 실어 나르는 ‘언어 비슷한 것들’을 보면 뭐라고 할까요? 1963년 <사상계>에 발표했던 시 ‘주린 땅의 指導原理(지도원리)’의 한 연처럼 탄식하지 않을까요?

 

언젠가

우리들의 지성 높은 몸부림

푸른 대지를 채울 날은.....“

 

레바논이 낳은 세계적 시인 칼릴 지브란(1883-1931)도 산문시집 <예언자>에서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하는 순간에 대해 얘기합니다. “진리를 알면서 말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들의 가슴 속엔 영혼이 율동적 침묵에 깃든다”며 친구들과 나누는 침묵의 대화에 대해 말합니다.

 

친구가 침묵할 때도 그대의 마음은

친구의 마음 속 소리 듣기를 그치지 말라;

우정은 말없이 생각과 열망과 기대를 낳아 나누며

요란한 환호 없이 기쁨으로 함께 하는 것이니... “

--Kahlil Gibran <The Prophet>, Penguin Books. 필자 번역.

 

스마트폰은 없지만 침묵 속에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친구들을 가졌으니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 친구들은 어떨까요? 그들 중에 ‘스마트폰은 없어도 되지만 너 같은 친구는 없으면 안 돼’라고 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