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 명장 이정구(66)의 손, 골드핑거의 사나이
▲ 이정구 명장이 쥔 줄자와 손목에 찬 바늘꽂이, 그리고 오른손에 낀 반지(쇠골무)는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다.
손에는 사람의 인생이 드러난다. 크기와 모양 그리고 거기에 박힌 굳은살은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영광스러운 순간을 손에 쥐고,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세웠던 순간. 손을 통해 그 역사의 순간을 알 수도 있다.
옷을 만드는 이정구(李貞九) 명장의 매장에 눈에 띄는 사진이 하나 있다. 1970년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사진. 그 흑백사진 속 이 명장의 손은 황금처럼 빛나고 있다. 물론 컴퓨터로 보정작업을 통해 만든 것이겠지만, 그의 손에는 미다스 손만큼의 가치가 있다. 10대에 처음 가위와 천을 쥐었던 손은 이제 내로라하는 사람들의 옷을 재단하는 황금 손으로 변했다. 민감하고 섬세한 작업을 하는 그의 손은 크고 울퉁불퉁하다. 그리고 그사이 주름도 늘었다. 아마도 그 주름은 베테랑이라는 세월의 훈장이리라.
>> 손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그동안 고생한 것에 비하면 꽤 깨끗한 편이네요. 많이 휘지도 않고 바르고요. 저는 양복을 만드는 사람치고는 손이 부드러운 편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누구의 손보다 내 손이 멋있고 예쁘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나를 위해 일을 해줘서 참으로 고맙네요.
>> 운영하는 매장의 이름이 ‘골드핑거’인데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명동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을 때 손님이 물어본 적이 있어요. 혹시 영화 <007 골드핑거>를 모티브로 따온 상호냐고 하시면서요. 그것은 우연의 일치였죠(웃음). 사실은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나서 만든 겁니다. 만지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하는 미다스의 손처럼 제가 만드는 옷이 황금처럼 빛났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만든 상호예요.
>> 일을 하면서 손이 변했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요?
동사무소에 가서 지문을 확인하려 하는데 지문이 안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옷을 만들면서 엄지와 검지를 많이 쓰는데, 이곳에 힘을 많이 주다보니 지문이 닳게 된 것이죠.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에는 굳은살이 박혀 있어요. 가위질을 할 때 닿는 부분인데 이 녀석이 가위와 몇 십 년을 부딪치다 보니 굳어졌네요.
>>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을 때는 언제인가요?
요즘은 페이스북에서 많이 치켜세우더라고요(웃음). 저 또한 페이스북을 통해 엄지손가락을 많이 치켜세우고 있습니다(‘좋아요’를 누른다는 의미). 이제는 온라인 마케팅 시대니까요. 기존의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아서 맞춤 생산을 하려고 합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문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 엄지손가락을 받았을 때는 언제인가요?
1970년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죠. 그리고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을 때. 그리고 고객들에게 정성껏 옷을 만들어주고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을 때. 그런 것에서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 뿌듯하고, 보람 있어요.
>> 내 손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손을 사용합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는 디테일한 것도 하고, 옷의 패턴을 만들기도 하죠. 또 착용감이 좋고, 멋스럽게 하는 과정의 일을 하고 있어요.
>> 내 손이 가장 많이 닿는 물건은 무엇인가요?
천, 바늘, 가위, 자 등등 많아요. 다리미도 빠질 순 없죠. 그런데 애착이 가는 게 한 가지 있어요. 작업을 할 때 손가락 끝에 끼는 반지인데요. 바느질이나 다른 작업을 할 때 꼭 필요해요. 저는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이 반지를 껴왔는데, 요즘은 의상학과 학생들도 이 반지를 잘 모르더라고요. 조금 의아했습니다. 저는 이 반지(쇠골무)를 황금으로 만들어서 갖고 싶어요. 그만큼 의미가 있는 반지입니다.
>> 그 반지를 처음 꼈을 때 느낌은 어땠나요?
그때는 제가 10대였죠. 남자가 이런 바느질을 하는 게 맞는지 생각했을 때죠. 그때는 지금과는 세상이 달랐으니까요.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의상 디자이너는 남자더라고요.
>> 결과물에 화가 날 때는 언제인가요?
습도 변화에 민감한 양모를 잘못 다뤘을 때 화가 납니다. 양모는 습도에 따라 변화가 생기는데, 그것을 제대로 감지하지 않으면 옷 상태가 변해요. 습도가 있을 때 옷을 만들면 습도가 없는 곳에서 옷이 팽팽해지기도 하고, 반대의 상황이 되면 옷이 쭈글쭈글해지거든요. 이 경우에는 다림질을 한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다시 해체해야 하죠. 그때는 정말 힘들어요. 다른 경우는 손님의 요구에 못 맞췄을 때. 그때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 내 손이 남다르다는 것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옷을 만들면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보다 맵시가 좋다고 생각해요. 일을 할 때 손도 중요하지만, 머리로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중요하죠. 결과물을 미리 생각해봐야 하니까요. 그때는 손과 머리가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 젊었을 때 손과 지금 손은 어떻게 다른가요?
확실히 지금은 주름도 많아졌지만, 노련미도 더해졌죠. 그런 게 경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젊어서는 손에 땀이 많아서 고생했는데, 요즘은 땀이 적고 건조해 불편해요. 소재를 만질 때 손에 습기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하니까요
>> 이 사람의 손을 갖고 싶다면?
역시 미다스의 손이죠. 제가 ‘골드핑거’라는 상호를 딴 것도 이것 때문이니까요. 예전에 TV 프로그램 <젊은이들, 골드핑거를 원한다>라는 곳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남들에게 인정을 받으니까 자랑스럽더라고요.
>> 손으로 쥐었던 것 중 벅찼던 것은 무엇인가요?
역시 1970년 일본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이죠. 그때는 연습을 실전처럼 하면서 살았어요. 또 대회가 일본에서 열렸기 때문에 무엇인가 끓어오르는 것이 있더라고요. 금메달을 손에 쥐었을 때 일제강점기 억압받던 것에 대한 보복을 했다고 할까요?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 내 손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무엇일까요?
뭐든지 멈출 수 있는 힘이 있죠. 이명박 전 대통령, 강창희 전 국회의장 등의 옷을 만들었어요. 그분들도 제가 손에 힘을 주면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정확하게 재단을 해야 하니까요.
글 양용비 기자 dragonfly@etoday.co.kr
사진 오병돈 포토그래퍼 (studio P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