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에게 필요한 건 로열티(royalty)가 아니라 로열티(loyalty)
나이가 꽤 들다보니, 주변에 결혼 20년을 채우는 친구들이 많아진다. 드물게는 25주년이 된 친구들도 있다. 다들 근사한 데서 외식을 하거나 여행도 가고, 추억에 남을 만한 이벤트도 기획하고 서로에게 선물도 주고 하는 것이 참 좋아 보인다. 어찌 됐든 잘 버텨왔지 않은가. 한데 가끔 남자동창들의 볼멘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왜 남자가 늘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거야? 와이프는 뭐 해줄 거냐고 한 달 전부터 조르는데…. 평소에도 신용카드로 옷이며 가방이며 늘 사는데 뭐가 더 필요하단 건지.”
반면 여자동창들은 다르다.
“이제껏 살아줬는데 알반지 정도는 해줘야 되는 거 아냐? 아님 명품 백이라도…. 호텔 가서 근사한 디너도 즐기고…. 다른 남편들은 미리미리 준비하던데.”
집에 가서 배우자 앞에서 대놓고 어깃장을 놓지는 못하니까 이렇게 친구들에게 푸념을 하는 것 같다. 남편의 말도 맞고 아내의 말도 맞는 것 같은데, 일단 여자 입장에선 이런 것이다.
요즘 20~30대들은 프러포즈 때부터 대단한 이벤트를 한다고 하는데, 예전만 해도 프러포즈받은 여자는 정말 드물었다. 손 한 번 잡혔다가(?) 결혼까지 간 커플도 많았고 커플로 주변에 소문이 나면 “국수는 언제 먹여줄 거야”라는-지금 젊은 세대가 들으면 참 썰렁한-덕담을 한 백 번쯤 듣고 나서 “다음 주에 양가 상견례한다”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랬던 까닭에, 우리 중년 여성들은 결혼기념일만이라도 좀 떠받듦을 당해보자, 닭살쯤은 각오할 테니 좀 달달한 코멘트라도 해봐라, 하는 마음인 것이다.
“나와 결혼해줘서 고마워. 내 아이를 낳아줘서 고마워. 난 평생 당신을 여왕처럼 모시고 살겠어.” 뭐, 이런 식의 코멘트 말이다.
이런 말과 함께 ‘증서나 돈이나 값어치 있는 물건’을 내민다면 이건 10점 만점에 10점이다.
‘뛰어난 업적이나 잘한 행위’를 인정받는 상(賞) 말이다.
그런데 남편 입장에선 왜 그런 상을 아내만 받아야 하는지 불만인 거다.
아주 후하게 점수를 준다면 분명 그 부부는 상을 받을 만할 것이고, 반면 배수진을 치고 상대방의 점수를 박하게 주었다면 이 부부는 결코 상을 받을 수 없는 부부일 것이다.
그런데도 서로에게 상을, 아니면 적어도 ‘로열티(royalty)’를 요구하는가?
‘가족관계등록부’에 부부로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상을 받는다는 것은 내가 인정받는 것이고 보상을 받는 것임엔 틀림없지만 우린 부부니까 ‘증서나 돈이나 물건’보다 다른 걸 요구하자. 또 다른 로열티(loyalty) 즉, 충성(충실)을 보여달라고.
내가 병들고 아프고 위로가 필요할 때 내 곁을 지켜줄 배우자의 존재는 그 어떤 상으로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부에게 필요한 건 로열티(royalty)가 아니라 로열티(loyalty)다.
글 김이나 디보싱 이혼상담센터 양재점 소장 jasmin_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