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벌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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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호조벌이 300주년을 맞이했다. 관곡지에 연꽃을 구경하러 가서 발견한 이름이 특이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렴풋하게 알고 있다가 300주년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답사에 나섰다. 사전 조사가 미흡하고 욕심을 내는 바람에 의외로 많은 시간을 더위와 싸우며 돌아다녔다. 그 사연은 방죽과 관련되어 있다.
호조벌 입구 (멀리 LOVE 호조벌이라는 글자가 보이며 은행천이 흐른다.)
호조벌의 유래
호조벌은 시흥시 미산동, 은행동, 매화동. 도창동, 포동, 물왕동, 광석동, 하상동, 하중동 등 10개 동에 걸쳐 483ha(약 150만 평) 규모로 조성되었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전국적으로 농도가 황폐해져 백성들이 굶주림에 고통받은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도전에 슬기롭게 대처한 응전의 결과이다.
호조벌 경관1
호조벌 경관2
조선 경종 1년(1721년), 호조(현재 기획재정부에 해당) 소속 진휼청에서 안산군 초산면 돌장재(하중동)과 신현면 걸뚝 포동에 제방(방죽)을 쌓아 간척사업을 통해 개펄을 농토로 조성하였다. '호조벌'과 '호조방죽'이라는 이름은 당시 육조 중 하나인 호조 산하 진휼청이 방죽을 세워 농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진휼청은 기근 시 굶주린 백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만든 임시기관이었으나, 그 후 필요에 의해 상설기관이 되었다. 국가가 애민 정신을 실천한 사례여서 뜻깊게 다가온다.
호조방죽은 당시 진휼 당상을 지낸 민진원의 진두지휘 아래 호조방죽을 축조한 것으로 승정원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에 정확한 규모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길이가 약 720m 정도로 추정된다. 농지가 만들어진 후, 물론 그 후로도 쉽지 않은 고통의 역사가 지속하였다. 소금기가 남아있어 경작한 농작물이 죽는 일이 발생하였을 뿐 아니라, 축조한 방죽이 무너져 다시 쌓는 일이 계속 일어나는 어려움을 겪었다. 다른 수단이 없어 스님의 말에 따라 사형수를 제방 아래에 묻고 나서야 방죽을 쌓는 데 성공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외에도 장마철에 상류에서 내려오는 빗물, 만조 때 들어오는 바다의 밀물, 빗물과 밀물 사이를 가로막고 놓여 있는 호조방죽과 그 안에 펼쳐진 호조벌, 비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호조벌 안의 도랑을 파고 호조방죽의 일부를 헐어 물을 바다로 빼내는 힘든 작업을 했다. 이를 위해 조선 시대 내내 경작인을 모으고, 농수로를 확보하며, 홍수 및 가뭄과 싸우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모두가 힘을 모았던 그때를 떠올려 보니, 국가와 백성이 힘을 합쳐 노력한 이런 사건이 이어졌으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세월이 흐른 뒤, 은행천과 보통천과 물왕저수지를 활용하여 간척지의 염분을 없애고, 1960년대 경지정리 작업을 거쳐 현재의 호조벌 모습이 되었다. 시흥시 최대의 곡창지대로 시흥시 전체 농업인의 23%(1,107명)가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다. 시흥시 연간 쌀 생산량 4,574톤의 51%(2,318톤)를 차지하고 있으며, 시흥시의 특산미인 '햇토미'가 여기서 생산된다. 우렁이 농법으로 생산하는 친환경 쌀이다(2021년 기준으로 20㎏ 1포대 69,000원, 10㎏ 1포대 37,000원에 판매한다.) 조선 시대에는 구휼미 등 백성들의 기근 등 어려움을 구제하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다가 이제 현재 관내 유치원부터 초·중·고교 일부 등 관내 91개교에 급식용 쌀로 공급되고 있다.
생태환경 보전
호조벌은 관곡지, 골목 여행, 물왕저수지, 소래포구와 연결되고 더 나아가 오이도까지 이어지는 생태환경 단지를 구성한다. 호조벌에 희귀종인 저어새를 비롯해 백로, 오리, 왜가리, 참게, 맹꽁이 등이 서식한다. 수도권에서 옛 농업환경을 보존하는 희소가치까지 갖추고 있어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광활한 이 일대를 걷다 보면 머리 아픈 일을 모두 잊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 돌아보려면 하루도 부족할 것 같다.
평화로운 이곳, 그러나 여기서도 개발과 보존의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2014년 봄에 시흥시 하중동 142-4번지에 레미콘 공장을 세우려고 계획하였다. 이에 맞서 생명이 숨 쉬는 시흥의 허파인 호조벌과 연꽃테마파크, 그리고 보통천을 지키기 위해 시흥 시민들은 ‘하중동 레미콘 공장 설립 반대 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2017년 1월 대법원의 최종 승소 판결을 끌어내면서 생명 터전을 지켜냈다.
이후 호조벌을 보존하고 가꾸어 후대에 원형을 전하기 위해 ‘호조벌 가꾸기 시민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초대 위원장을 맡은 이수용(65) 위원장은 “호조벌은 각종 개발 사업에 따른 환경 파괴로 얼룩진 수도권에서 농업환경을 보존하고 있는 희소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인천 등 인근 대도시와의 우수한 접근성을 가진 곳으로 역사적·생태적·문화적으로 가치가 높아 현명하게 활용하고 보전해 미래 세대에 전수해야 한다."라고 호조벌 보존 필요성을 역설했다.
방죽을 발견하려고 방황
뜻깊은 방죽을 사진 찍기 위해 여러 번 답사했다. 주위 사람에게 방죽의 위치를 물어보았지만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서 방죽의 흔적을 찾으려고 한여름에 땀을 흘리며 돌아다녔다. 포동과 하중동의 수문을 발견하였으니 어딘가에 방죽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포동 수문
은행천(포동 수문을 통해 은행천이 바다로 흘러간다.)
하중동 수문
보통천(하중동 수문을 통해 보통천이 바다로 흘러간다)
자료를 다시 조사하는 중에 답이 나왔다. 구 39번 도로에 방죽이 포함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철저하게 조사했으면 피할 수 있는 시행착오였다. 하지만 여러 번 답사하는 기회를 얻으면서 숨은 그림 맞추기를 했다. 이를 통해 따로 가 보았던 호조벌, 관곡지, 갯골공원, 소래포구, 물왕저수지가 다 연결된 생태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재 시흥시에서는 호조벌을 다룬 전통 창작극 「호조벌 스캔들」, 뮤지컬 「1721 호조벌」을 통해 호조벌을 알리고 있다. 또한 호조벌 300주년 행사가 연중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없어 아쉽지만, 기념행사들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 기회에 넓은 호조벌에 가서 가을을 즐기는 것은 어떨까. 시간이 허락되면 관곡지, 갯골공원, 물왕저수지에 가보는 것도 추천한다.
50+시민기자단 최원국 기자 (hev5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