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떠나는 배낭 꾸리기
쾌청한 하늘이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 때마다 작년에 걸었던 산티아고가 생각났다. 다시 걷고 싶고, 당시 느꼈던 설렘과 뭉클함 같은 무언가가 자꾸 그리웠다. 그러던 중 온라인 커뮤니티(카미노 카페)에 올라온 '산티아고의 하루치 걷기 체험 2018 송파소리길 걷기'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곧바로 신청했다.
송파구청에서 시작해 종합운동장, 석촌호수, 청용교, 성내천, 장지천을 지나 탄천을 끼고 돌아오는 32.65km를 8~9시간에 걸쳐 걸었다. 산티아고처럼 길벗들은 활짝 핀 꽃이 만들어 내는 경치에 감탄했고, 비가 그쳐 맑고 쾌청해진 날씨에 감사하고 기뻐했다. 모두 30여 명이 신청해서 다녀왔는데, 대부분 50~70대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가장 어린 분이 45세, 가장 연세가 높으신 분은 여든이 넘었다.
좋아하는 것이 같은 사람들이 모이니 마냥 행복한 시간이었다. 산티아고 길을 떠나기 전에 배낭을 메고 실제 하루치 걷기를 경험해보려는 사람들과 카미노블루(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그곳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가 모여 서로에게 정보와 격려를 주는 훈훈한 걷기 모임이었다. 처음 참여하는 사람도 걷다보면 친구가 되는 것은 산티아고나 송파길이나 같았다.
이 모임을 주관한 계수나무꽃님은 교장으로 은퇴한 후 올해 70이 되셨고, 꼬치에 여러 과일을 꽂아와서 휴식시간에 일일이 나누어 주었다. 걷기를 생활화 한 사람들의 공통점인데 엉덩이가 무겁지 않고, 무슨 일이 있으면 먼저 일어나 움직인다. 젊은이보다 더 젊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이런 습관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누군가 나를 챙겨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 대부분 내가 먼저 무엇을 해줄까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정년 퇴직 후 여자 혼자서 약 3,800km를 걸은 여행 선배와의 만남은 나의 가슴을 뛰고 설레게 만들었다. 이렇게 여행을 계획함과 동시에 평소에는 외국어, 체력 등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선배들에게, 50+세대가 흔히 겪는 성인병이나 우울증은 먼나라 이야기다. 이들은 젊은이들도 힘들어 하는 30km정 도를 하루에 거뜬히 걷는다.
산티아고를 떠나는 사람들은 보통 30~50일까지 일정을 잡아 떠난다. 800km를 넘어 3,800km까지 걸었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던져지는 질문이 '배낭에 무엇을 넣어 가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장기간 여행을 하다보면 필요한 것들이 많은 데, 욕심만큼 배낭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욕심 가득한 배낭을 메고 매일 20~30km를 걷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가져가야 할 것들, 내려놓고 가야 할 것들…
그동안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지키고, 소유하고, 보호해야 할 것들이 넘치는 50+세대들에게 짐을 내려놓아야 하는 선택은 무거운 짐을 메고 걷는 고통보다 더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미지의 땅을 걸어야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팁이 무엇일까. 길을 떠나기 위한 간단한 배낭 꾸리기 법칙과 함께 이 말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 그냥 걷다 무거우면 내려놓으면 된다고. 모험을 도전하는 의지만으로도 이미 멋진 인생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니까.
길 떠나는 배낭 꾸리기 Tip!
1. 짐의 총량을 먼저 정하자
내 체력에 맞춰 총량을 먼저 정한 후에 짐을 배낭에 넣어본다. 8kg, 10kg, 12kg을 직접 메고 20km정도 걸어본 후 자신의 체력에 맞는 총량을 정하자.
2. 무엇을 취하고 버릴지 결정하자
총량을 넘어서 꺼내 놓고 가야할 짐을 선택해야 할 때,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면 '왜 여행을 떠나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자유와 나를 찾는 여행에서 그 짐의 무게가 나를 지쳐버리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3. 도저히 줄일 수 없는 짐은 모두 가방에 넣어라
여행은 우리의 삶이다. 내려놓지 못하는 짐은 결국 내가 짊어질 무게다. 걷다 힘들면 버리면 된다는 마음으로 모두 넣어라. 한계에 도달했을 때, 결국 스스로 내려놓게 될 것이다. 포기하지 못하는 짐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지나치게 집착하고 소유해온 내 삶의 무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