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센서등이 꺼지기 전, 집안의 형광등을 모두 켠다. 방마다 다니며 살핀다. 욕실과 베란다도 예외는 아니다. 장롱 안이나 침대 아래, 수납장이나 심지어 세탁기 안까지,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다면 여지없이 열어보고 들여다본다. 아무도 없다는 게 확인되면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쉰다.
내 습관이다. 외출했다 귀가하면 자동반사적으로 하게 된다. 혼자 산 세월이 긴 만큼 오래되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얘기했다가 무섭다느니 강박이라느니 변태라느니 하는 소리를 들었다. 악의를 갖고 한 말은 아니었다. 아니 외려 걱정되어 한 소리임을 모르지 않지만, 듣는 1인이 불편할 수 있겠구나 싶어 그 뒤로 삼가게 되더라는.
누가 봐도 별스러운 내 오랜 루틴이 언제 시작됐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마음으로 하게 됐는지는 정확히 기억한다. 맞을 매라면 먼저 맞자는 심산이었다. 누군가 몰래 숨어들었다면, 그래서 나쁜 일을 당할 거라면 덜 시달리고 빨리 끝나는 쪽을 택하는 게 낫겠다는 마음이었다. 1인 가구는 문을 두드릴 동거인을 기대할 수 없으니까. 하루 정도 연락이 안 닿아도 무슨 일이 있나 잠깐 걱정하다 하루쯤이야 하게 될 테니까.
만약 캄캄한 밤에 집 앞에서 괴한이 칼을 들이밀며 문을 열라 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는 그냥 그 자리에서 칼을 맞는다는 쪽이다. 같은 이유에서이다. 집안보다 집 밖이면 덜 시달릴 거고 누군가에게 쉬 발견될 수도 있으니까.
이런 겁쟁이니 삼복더위에도 창문을 연 채 잠들지 못한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건물에 들어올 수 있고, 현관문에 별도의 잠금장치를 했고, 5층에 살고, 타고 오를 배관 따위 없는 데도 말이다. 문단속을 꼼꼼하게 하고도 문밖에서 수상한 인기척이 느껴지면 잠을 못 이룬다. 그런 밤이면 도어락이니 숨바꼭질 같은 영화가 뇌리를 맴돌고, 흉악한 범죄기사들이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그러니 창이 환하게 밝아올 때까지 비몽사몽을 오갈밖에.
나도 안다. 이 정도면 강박이고 오버다. 한데 어쩌랴, 무서운 것을. 영화나 소설보다 현실이 더 가혹하고 끔찍하다는 건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혼자 사는 여자라면 낯선 이가 침입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누군가 불쑥 튀어나오지 않을까 하는 공포 한두 번쯤 겪지 않았을까? 혼자 산다는 것은 어쩌면 매일의 두려움을 껴안고 사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1인 가구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1인 가구라서 제약받는 게 많다. 배달음식은 무조건 2인분 이상, 반드시 문 닫고 밖에서 받는다. 택배는 무조건 비대면으로 받고, 박스에 붙어 있는 주소 택은 분리수거가 아니라도 반드시 제거한다. 단골 가게가 생겨 말을 나눠도 1인 가구가 노출되지 않게 조심하고, 동네 마트에서 물건을 많이 사도 배달은 어지간해선 안 시킨다. 웬만한 집수리는 혼자 해결한다. 현관에 놓인 신발만 봐도 1인 가구임을 들키게 되니까.
제일 신경 쓰이는 것은 집이다. 나는 마당 깊은 집을 유독 좋아하고 캄캄한 밤에 별 헤며 하릴없이 서성이고 싶은데, 단독주택은 엄두를 못 낸다. 지금보다 겁 없었을 때 감꽃 떨어지는 마당에 반해 덜컥 이사한 적이 있는데, 마당으로 밤마실 나서는 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낮은 층에 살 때면, 창마다 방범창이 있는지 확인하면서 마치 간수 없는 감옥 같구나, 현관 가까이에서 불이 나면 빠져나가긴 글렀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선택했다. 그 집에 사는 내내 답답했다. 그래도 문 걸고 들어앉으면 불안하지 않았음을 기억한다. 밤 산책은 또 얼마나 매혹적인지. 그래도 어둠이 짙어지면 혼자 문밖을 나서는 데 주저하게 된다.
앞서 과도한 루틴은 나만 그럴 수 있지만, 집 문제는 나만 그러는 건 아닌 것 같다. 여성 1인 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집을 선택할 때 방범 혹은 안전을 1순위로 고려한다고 답한 걸 보면 말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가끔은 1인 여성들이 모여 ‘따로 또 같이’ 살 수 있는 공공주택이 건설되는 꿈도 꿔보는 것이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혼자 사는 남자도 이런 생각을 하나?
50+에세이작가단 우윤정(abaxia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