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뒤집기 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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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도 책은 남는다”
논어의 첫 편인 학이(學而)편의 첫 장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로 시작된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의 의미로, 학문의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다. 배움이란 삶에 있어 참으로 중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시습(時習)의 의미를 ‘때때로 익힌다’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때를 놓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익힌다’가 맞는 해석이라고 한다. 예전 논어 강의에서 들은 말이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삶은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이란 것이 맞다.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를 처음 방문하는 분들을 위한 강의에서 나는 이렇게 얘기한다. 인생은 결국 쉼 없이 돌파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삶의 길에는 늘 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때 길을 여는 첫 번째가 배움이다. 돌파구가 안보일 때나 필요할 때, 독서와 배움은 길을 만들어 주는 가장 큰 덕목이다.
퇴직 후 사회에서 만난 귀한 친구가 있다. 인문학 교육과정을 함께 들은 후 친구가 된 경우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다들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연락을 나누다 보면 “이 시기에 어쩌겠어, 그냥 답답하지만 건강 관리나 하면서 세월 보내는 거지”라고 답하는 이가 대부분인데 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이때 공부 열심히 해야지, 하고 싶었던 것들 차분하게. 자격증도 따고, 못 읽었던 책들도 읽고, 자기 정리하기 딱 좋은 때 아닌가? 친구들 만나는 것도 자유롭지 않으니, 이참에 아주 넉넉한 시간을 보내고 있네!”
“책 속에는 수없이 많은 내가 있다”
멈춰 있음은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뒤로 가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그 행보는 크게 달라지고 그 결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영어 공부를 한참 하던 학창시절 때이다. 시간 투자를 하면 변화가 보여야 하는데 실력이 늘지를 않는 것이다. 제자리걸음이란 느낌. 그때 영어 공부는 점수 올리는 것 외에 큰 동기 유발이 없어 ‘다른 과목에서 보충해야지’하고 손을 놓았다. 사회에 나와서도 큰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영어의 영역이 확대되고 직장에서도 영어를 잘하는 직원을 찾는 시기가 다가왔다. 그때 나도 영어를 잘했으면 조직의 변화에 대응하고 활동의 외연을 넓힐 수 있었을 것이다. 기회를 놓친 경험을 쓰라리게 가졌던 적이 있다.
자존심으로 다른 이들에겐 표를 내지 않았지만, 자신은 누구 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배움이란 게 그렇다. 때를 놓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배움을 써먹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다 지난 얘기지만 그 부분은 지금까지 늘 내게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가장 피부로 느끼는 것이 다른 언어권의 나라에 갔을 때 상대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공간의 질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직장에서 출장단의 대표로 외국에 갔을 때 겪은 일이다. 물론 일머리를 잘 준비한 직원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놓고는 있었지만 내가 좌장으로 주도해야 하는 회의에서 직원들에게 의존하여 일을 진행한다는 것은 답답함 그 이상의 것이었다. 나의 표정이 자연스럽지 못하니 상대국의 대표도 처음에는 나를 쳐다보고 열심히 얘기하다 분위기를 보고 직원들과 얘기하는 상황으로 되어버렸다.
일의 좋은 결과를 위해서 당연히 그리해야 하지만 자신이 갖게 되는 열패감은 생각보다 훨씬 컸던 기억이 난다. 그날 저녁 직원들과 함께한 회식 자리에서 나는 속 쓰린 맥주를 연거푸 마셨다. 직원들도 나의 그런 기분을 알았는지 분위기를 돌리려고 애쓰는 게 눈에 보였다. 돌아가면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던 큰 경험이다.
일을 알고 결정을 내렸으나, 단계를 거쳐 표현해야 하는 것. 그런 답답함은 느껴본 사람만이 안다. 다행히 회의 결과는 좋았다. 몇 가지 진행 상황의 답을 찾아내어 상대국에 제시를 했고 그 친구들도 만족한 결과를 얻어냈으니까!
학이시습지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서울시50플러스 캠퍼스를 찾는 이들은 그 목적이 상당히 다양하다. 그런데도 똑같은 것은 이곳에서 하나의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하는 마음이다. 숨 쉴 틈 없이 살아왔던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향후 자신이 추구하는 이모작의 세계와 방향성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퇴직을 앞두거나 퇴직한 이들 중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자신을 진단하고 돌아보는 과정은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다. 혹시 마음이 급하더라도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 내가 좋아했던 것들과 즐겁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를 여유를 갖고 찾아보는 것이다. 안 해 본 것,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자기 능력을 뒤늦게 찾는 분들도 많이 보았다.
함께 하는 수업에서 그들은 커뮤니티를 만든다. 같은 수업을 들었으니 화젯거리가 공유되고 정보를 함께 나눌 수 있다. 그들은 수업을 듣고 함께 책을 출판하며 명품 강사가 되기도 한다. 귀농 훈련을 하기도 하고 다문화 가정의 학습을 지원하기도 한다. 디지털 사회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여 변화되는 흐름에 적응도 한다. 음악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린다. 익명의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개개인은 즐거움을 찾아가는 것이다. 로버트 드니로의 영화 「인턴」처럼 인턴사원의 경력을 쌓고 다시 회사로 들어가는 분들도 있다.
학이시습지는 씨름의 멋진 기술처럼 뒤집기 한판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것이다. 오늘도 50+인 그들은 저마다의 꿈을 안고 캠퍼스로 간다. 친구가 밝은 목소리로 얘기한다. “안형! 나 오늘 2시에 웹엑스로 강의 들어야 해.” 열심히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하는 모습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늘 아름답다. 학이시습지를 통한 그 친구의 멋진 뒤집기 한판을 기대해본다.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try3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