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기억 「Try in Sept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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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발적으로 따가웠던 여름이 아쉬운지 때늦은 장마 소식이나 대세의 기운은 이미 기울었다. 서늘한 공기와 따뜻한 기운들이 마음 한편에 쓸쓸함을 채워주는 계절, 가을이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여울목처럼 여름이 서서히 물러가고 가을이 훅 들어오는 장면 어딘가에는 두 계절이 중첩되는 디졸브(dissolve) 순간, 그래서 9월은 아직 더위가 남아있는 잔서지절(殘暑之節)이기도 하다.
가을을 흔히 영어로 Autumn 혹은 Fall로 쓴다. Autumn은 14세기 말 라틴어 autumus에서 파생된 것으로 무언가 말라가는, 건조해지는 계절이고, Fall 역시 feallan이라는 단어에서 보듯이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묘사한 단어다. 자연 속의 나무들은 그래서 쌀쌀한 가을 기운이 돌면 여름 내내 무성했던 잎들을 스스로 떨군다.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차디찬 서리가 내리기 전에 더 이상 나무가 펼치지 못하도록 나뭇가지에서 잎사귀를 떨어뜨리는 분리 운동을 하는 데 이를 숙살(肅殺)이라 한다.
50+인생, 20대는 준비하는 시기이고, 30대는 펼치는 시기이며, 40대가 꽃을 피우는 시기라면, 50+인생은 가을 나무처럼 숙살 후 또 하나의 알찬 열매를 맺는 시기다. 산악인들 가운데 ‘라인홀트 메스너’는 히말라야 8,000m 14좌를 최초로 완등한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린다. 메스너가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등정할 때는 이혼의 아픔을 겪어야 했고, 낭가파르바트를 처음 등정하는 중에는 동생을 잃고, 동상으로 자신의 발가락 일부도 절단했다.
메스너에게 동료가 물었다.
“산이 아름다워 올라가나요?”
“그것도 이유 중 하나지”
“비행기에 탄 채 내려다보면 안 되나요?”
“안 되지, 그렇게 해서는 산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느낄 수 없어!”
실제로 히말라야 등반을 쉽게 하려고 4천 미터 공항을 만든 적도 있다. 그러나 실패했다. 이유는 갑자기 고산에 내리다 보니 호흡곤란이 심각했다. 우화(羽化)가 힘들다고 사람이 거들면 성충은 적응 못 하고 죽는다.
1978년 5월 8일,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등정한 메스너는 3개월도 안 돼 ‘운명의 신‘이라 부르는 낭가파르바트를 ‘단독 등반’이라는 새로운 기록으로 도전한다. 그런 그에게 주변에서 물었다. “무엇 때문에 또 가야 하느냐? 방금 에베레스트에서 돌아왔는데 또 떠나야만 하느냐 말이다.” 메스너는 말했다. “나는 떠나야만 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수 있으니까 떠나는 것뿐이다.”
“이미 세계 최고봉 8,848m에 오른 사람이 무엇 때문에 전세계 8,000m급 고봉 14좌 가운데서도 9번째 8,125m의 낭가파르바트에 오르냐는 말이다.” “나는 단지 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한 나라 대통령까지 했는데~, 장·차관에 임원까지 했는데~’ 메스너의 답변은 과거나 훈장만 만지작거리지 말고 진짜배기로 살아보는 기를 충동한다. 9월은 시작도 끝도 아닌 중간이다. 50+는 소년도 아니고, 노년도 아닌 중간. 제대로 잘 걸어가는지, 부끄러운 중년은 아닌지 한번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시절인연(時節因緣),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말이다. 자연현상도 원인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 일, 물건과의 만남도 때가 있다는 법이다. 그때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 알 수 없는 ‘내일’보다는 ‘지금(Now)’이라는 시간에서 ‘여기(Here)’를 붙잡으려고 애써야 한다. 삶의 종착에서 생을 돌아보기보다 12월의 어느 날, 문득 삶이 여유롭고 부드러웠던 9월 같은 날들을 떠올려 보라. 그때 당신의 9월, 삶은 여유롭게 참 달콤했는지! (When life was slow and oh so mellow)
독초성미 신종의령(篤初誠美 愼終宜令)
처음에 성실하니 참으로 아름답고, 끝에 신중하니 마땅히 훌륭하다! 중간에 애쓴다면 금상첨화가 아닌가!
50+시민기자단 황용필 기자 (yphwa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