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시대, 아니 직업에는 숫자의 한계가 없는 시대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건너온 (평생 한 회사만 다니는) ‘회사인간’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차지한 신인류가 있으니 N잡러(복수 이상의 직업활동을 통해 소득을 얻는 자)다.

조직에 평생을 거는 도박이 싫어서, 혹은 재능이 넘쳐나 멀티플레이가 가능해서, 그것도 아니면 일과 삶의 여유가 무엇보다 중요해서. N잡러가 되는 이유는 각기 다르다.

사단법인 한국창직협회를 이끌고 있는 이정원 회장은 1세대 N잡러라 불릴 만한 이력의 소유자다.

꿈에 그리던 직업을 얻어 후회 없는 조직생활을 경험한 후, 40대 초반에 일찌감치 창직의 세계로 입문했다. 그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나선:나도 선수'라는 이름의 중장년 재능마켓 플랫폼 서비스를 런칭했다.

N잡러, 중장년, 일자리 매칭 서비스. 중장년 라이프스타일 전문매체를 표방하는 라이프점프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세 개의 키워드가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는 그를 광화문 본사에서 만나봤다. 

 

 

이정원 사단법인 한국창직협회 회장 

 

-자기 소개 부탁드린다.

"사단법인 한국창직협회의 이정원 회장이다. 한국창직협회는 국내 최초로 창직을 체계화한 단체다. 새로운 직업과 직무를 만들어내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창직과 관련한 책을 몇 권 내면서 국내 1호 창직전문가로도 불린다. (하하) 최근에는 ‘나선:나도 선수’라는 중장년 일자리 플랫폼 서비스를 런칭한 창업가다."

-'직함'이 많으신만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하하) 무엇보다 창직이란 표현이 와닿는다.

"대학졸업 뒤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직장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나만의 역량을 무기 삼아 몇 차례 이직을 단행했고 직장에서 하고 싶은 일은 거의 다 해본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남 좋은 일보다는 나의 비즈니스를 해보자란 생각이 들었다. 40대 초반부터 인생 2막이 시작된 거지. 창직의 시작이었다." 



한국창직협회 홈페이지 


-그때까지만 해도 창직의 개념이 낯설었을텐데.

"(하하) 그래서 국내 1호 창직전문가로 불리는 거겠지. 창직이란 용어가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그건 정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사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어쩌면 이렇게 평범할까, 할 정도로 말이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사회생활 초창기에 나름 화려한(?) 이력을 쌓았던 것은 우연찮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변화를 일찍 캐치하고 막연히 준비했더니 엄청난 기회가 찾아오더라.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만든 것이 창직이란 키워드였다."

-여기서 잠깐, 본인 이력을 먼저 말씀하지 않은 것을 보면 원치 않으시는 것 같은데 힌트라도 줄 수 있을까.

"잘 보셨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과거는 지나간 일일 뿐이니까.(하하)"

-창직이라 하면 '자신만의 직업을 만들라'라는 당위로 읽히는데 대표님의 말을 들어보면 창직개념이 좀 다른 것 같다.

"창직이라고 하면 일단 부담스럽다. '대한민국 1호 직업을 만들라'라는 주문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하하) 그건 고역이고 희망고문이다.

물론 본인 역량을 극대화해서 직업 자체를 발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단한 일이고 본 받을 말한 업적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창직은 '새로움'이란 키워드에서 출발한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창직은 한자 '創(비롯할 창, 새로울 창)'과 '職(직책 직)'이 합쳐진 단어다. '직업을 창조하라'는 것이 아니라 '직업을 새롭게 하라'는 것이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토록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려면 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늘 새롭게 바꿔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 바탕이 되는 것이 창직이다."

-따지고 보면 기술발달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곳이 일자리 시장인 것 같다. 이제는 일상화된 긱이코노미(비정규 프리랜서 근무형태), 주52시간 근로제 등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었으니까.


"대학교 전공과 홈페이지에 가보라. 국문학과를 예로 들어볼까. 국문학과 홈페이지에 전공자들의 진로로 제시된 것들은 선생님, 작가, 출판사, 언론사 등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진로코스만 동일할까. 커리큘럼도 예전이랑 같고 교수진도 달라지지 않았다. 세상은 엄청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사회인을 양성하는 대학은 멈춰 있는 거다. 무서운 이야기다."

-듣고 보니 당신이 '나선:나도 선수'라는 일자리 플랫폼 서비스를 준비한 맥락이 대략 이해된다.

"흔히 N잡 시대라고 하잖나. N잡 시대의 근간은 긱 이코노미인데 여기엔 사각지대가 있다.

살펴보니깐 현재 임시직을 연계하는 플랫폼이 60여개 이상 출시돼 있다. 문제는 디지털 일자리 장터에서 주인공은 오로지 2030 세대다. 일자리 수요가 주로 IT 인력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강연을 다니면서 중장년들에게 크몽, 숨고, 탈잉 같은 일자리 플랫폼에 접근해보시라고 권한다. 돌아오는 대답은 ‘가봤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더라. N잡이 일상화됐지만 플랫폼에서 중장년은 소외돼 있는 거다. 여기서 출발한 것이 ‘나선:나도 선수’ 서비스다."

-아시다시피 라이프점프는 중장년 일자리 시장을 취재한다. 1년 넘게 이 시장을 관찰해본 결과, 중장년 일자리 시장을 민간영역에서 성장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동의한다. 중장년 일자리 시장의 성장속도는 느리다. 생각 이상으로 더딘 것 같다.

현재 2030 인구는 1,340만명, 4050 인구는 1,670만명, 60세 이상 인구는 1,260만명이다. 40대 이상 인구만 3,000만명인데 재능거래는 2030 세대에서만 이뤄진다.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405060 세대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도 얼마 전이다. 액티브 시니어의 참여가 본격화하면 재능마켓 시장 역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먼저 깃발을 꼳아야 하는데 그것을 내가 하고 싶다."

-중장년들에게 본인들의 숨겨진 재능을 거래하게끔 만드는 인식의 전환이 중요할 것 같다.


"팔순 우리 어머니가 만드신 식혜가 너무 맛있다. 아까운 재능이지. 그런데 정작 본인들은 이걸 재능이라고 받아들이시지 못한다. 반대로 청년들은 그렇지 않다. 청년 세대는 사소한 재능도 거래할 수 있다고 믿고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한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중장년들이 누군가. 오랜 시간 한 분야에서 노하우를 축적한 기술자들 아닌가. 본인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지 각자만의 재능을 갖고 있다. 이걸 긱 이코노미에 녹이면 된다. 그러려면 중장년들이 오랜 시간 축적한 본인만의 노하우를 거래가능한 재능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끔 인식을 바꾸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중장년 재능마켓 '나선:나도 선수' 홈페이지 


-서비스명에 '선수'라는 단어를 쓴 것도 그런 의도가 숨어 있는 거 같다.

"재밌는 것은 중장년들은 정작 '시니어'란 단어를 매우 싫어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시니어는 상대적인 늙음을 뜻하는데 누군들 좋아하겠는가. (하하) 중장년 일지라 서비스를 표방하지만 중장년의 부정성을 숨기기 위해서 발견한 표현이 '선수'다. '고수'는 왠지 귀한 재능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선수'는 조금만 잘해도 '너 선수네?'라고 하잖나."

-현재 몇 개의 재능이 올라와 있는지.

"약 100여개의 재능이 플랫폼에 올라와 있다. 음식 만들기부터 책 쓰기, 골프티칭, 상표권 등록하는 법까지 중장년이 실생활에서 필요한 재능들이 등록돼 있다."

-플랫폼에서 실제 서비스가 이뤄지는 과정이 궁금하다.

"재능의 종류마다 다르다. 골프레슨이나 반찬 만들기 등은 매칭이 이뤄지면 합의 하에 현장에서 재능거래가 이뤄진다.

반면 '변리사 없이 상표권 등록하는 법' 같은 상품은 결제가 이뤄지면 해당 정보콘텐츠를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시장은 전자책이다. 앞서 말한 상표권 등록하기의 경우 변리사를 고용할 경우 몇백만원이 소요되지만 판매자가 올린 2만원짜리 매뉴얼만 따르면 혼자서도 쉽게 해결 가능하다. 그런데 전자책은 일반 간행물과 달리 5페이지 이상만 되면 발행 가능하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소비자, 공급자 모두에게 유리한 이 형태를 집중적으로 서비스할 계획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다음달부터 최소 회원수 확보에 나설 예정이다. 플랫폼의 경쟁력은 거래건수에 달려 있으니까. 올해 안에 최소 월 1만건의 거래가 이뤄지게끔 마케팅에 집중하겠다. 크몽, 숨고 등과 같은 긱이코노미 플랫폼이 안착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 시장이 성숙단계에 접어들 거라고 예상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누구보다 N잡이 필요한 계층이 중장년이다. 기존 플랫폼이 품지 못한 중장년 재능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나선:나도 선수’가 될 것이다."


[상기 이미지 및 원고 출처 : 라이프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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