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이야말로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가장 큰 동기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처음 타보는 국적기. 처음 보는 ‘그을린 피부’의 여 승무원. 영상과 인쇄 자료를 살피며 상상해보는 시뮬레이션의 시간들…. 에티오피아까지 가는 15시간의 비행시간이 지겹기는커녕 설렘으로 가득한 이유다. 많은 이에게 이름조차 낯선 에티오피아는 수백만 년 전 유인원 루시(lucy)가 직립보행을 시작했던 나라이며, 모세가 신으로부터 받았다는 십계명 돌판이 보관돼 있는 나라다. 시바 여왕에서 시작된 고대 왕국의 찬란한 영화를 이어받았으며, 어떤 나라보다 앞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나라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단 한 번도 식민지였던 적이 없는 나라이자 고유 문자를 가진 나라, 에티오피아로 떠나보자.
아디스아바바에서 시작되는 여행 루트
여행은 크게 북부 유적지 여행과 남부 커피농장 여행으로 나눠진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시작해 고대의 ‘악숨’, 중세의 ‘랄리벨라’, 근세의 ‘곤다르’로의 여행은 국내선으로 이동하면서 볼 수 있도록 잘 짜여 있다. 악숨에서 비행기를 타고 남쪽으로 400km 가면 있는 랄리벨라에는 불교의 아잔타나 엘로라 석굴에 비견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거대한 암굴 교회군이 있다. 주변이 온통 이슬람인 환경 속에서 에티오피아가 기독교를 지켜내기엔 어려움이 많았으리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슬람이 위세를 떨치던 12세기에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온 랄리벨라 왕은 이곳을 제2의 예루살렘으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무슬림의 눈에 띄지 않는, 위험을 최소화한 11개의 암굴 교회를 지었다. 23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이들 교회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인간의 힘과 기술로 만들었다고 보기 힘들 만큼 불가사의해서 ‘천사가 함께 만든 교회’로 불린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전국에서 랄리벨라의 암굴 교회로 순례자들이 찾아드는데, 이들이 일제히 초를 켜고 기도하는 장면은 가히 장관이라 한다.
이르가체페로 가는 커피 로드
이르가체페로 가는 길은 시원하게 쭉 뻗은 도로여서 가슴이 탁 트인다. 시다모주 이르가체페에 도착해 질퍽한 황톳길을 따라 2km쯤 걸어들어가니 커피농장이 나왔다. 커피 수확은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라 볼 수 없었지만 농장 안에서 만난 사람들의 밝은 미소만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커피 빛깔의 향기를 지닌 천사들이 사는 곳이 바로 이르가체페였다. 비가 내려 질퍽대는 황톳길을 자기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바나나와 열매를 등에 진 소녀들이 맨발로 걸어간다. 다 떨어진 옷이 조금도 남루하지 않게 느껴진 것은 어디서도 만나지 못할 햇살 같은 웃음때문이었다.
‘분나 마프라트’라고 불리는 독특한 커피 의식
에티오피아 여행이 지닌 최고의 매력은 ‘분나 마프라트(Bunna Maffrate)’라 불리는 독특한 커피 세리머니다. ‘커피(coffee)’라는 말부터가 에티오피아의 지역명인 ‘카파(kaffa)’에서 왔으며, 에티오피아말로 커피를 뜻하는 ‘분나(bunna)’라는 말에서 ‘원두(bean)’가 나왔다 할 정도이니 이곳을 왜 커피의 기원이라 부르는가에 대해선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에티오피아인들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생존을 위한 귀한 식량인 동시에 신께 올리는 신성한 경배의 수단인 것이다. 이 의식을 제대로 하려면 한 시간 넘게 걸리는데 먼저 향을 피워 몸을 정결히 한 후 원두를 프라이팬에 볶는다. 그런 다음 절구에 넣고 찧어서 낸 가루를 ‘제베나(jebena)’라는 목이 긴 주전자에 넣고 끓여서 ‘시니(cini’)라 불리는 작은 잔에 따라 마신다. 보통 세 잔을 마시는 것이 기본이며 팝콘이 같이 제공되기도 한다. 누군가 에티오피아에서 맛보는 커피 맛을 ‘천국의 맛’이라 했는데, 어딜 가든 맛있고 다양한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커피 마니아에게 에티오피아는 천국 같은 여행지임이 틀림없다.
글·사진 이화자 68hjlee@hanmail.net (‘비긴어게인여행’, ‘여행처방전’, ‘여행에 미치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