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야말로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라고 얘기할 정도로 나심 알리카니(Nasim Alikhani)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 꿈을 실현하는 데는 무려 25년이나 걸렸다. 20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다가 2018년 59세의 나이로 뉴욕 브루클린에 「소프레(Sofreh)」라는 페르시안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현재 뉴욕에서도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 중 하나로, 예약은 몇 주 전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매우 높다.
'소프레'의 사장이자 수석 셰프인 나심 알리카니
성장 배경
테헤란 대학교 학생으로 그녀의 꿈은 판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혁명이 일어나고 학교가 문을 닫았을 때 그녀는 방향을 전환하고, 새로운 꿈을 찾아야 했다. 20대 초반인 1983년 이란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로스쿨에 진학하기 위해 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왔는데 돈이 없었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없는 낯선 나라로 왔다는 사실도 그제야 깨달았다. 다수 이란인을 알고는 있었지만, 결국 혼자뿐이었다고 그때를 회상한다. "나는 당장 먹고살아야 했고, 학교에도 가야 했기에 일주일에 70~80시간 일했습니다." 그녀는 유모, 복사기 상점 점원, 간병인, 식당 종업원 등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30세가 되었을 때 남편과 함께 복사기 가게를 차렸다. 그녀는 "돈도 벌었고 훌륭한 직원도 있었고, 모두 손발이 잘 맞았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그녀의 마음이 그곳에 있지 않았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언젠가는 가게를 매각하고 그 돈으로 작은 카페를 열어 주변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자신의 오랜 꿈을 실현해볼 생각을 해왔다. 어린 시절 항상 어머니, 이모, 할머니,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 자란지라, 관심사는 온통 음식뿐이었다. 가족 중의 여자들은 모두 요리를 잘했다. 이웃들이 전화를 걸어 레시피를 물어볼 정도였다고 한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녀는 레스토랑 운영까진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자기가 요리하고 음식을 만들어 나눠주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았다.
식당 창업 경위 및 과정
그러나, 그때 그녀는 유산을 했다. 망연자실했고, 건강이 나빠져 가게를 매각했다. 그러다가 곧 자신이 다시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무엇보다도 가정에 충실하기로 했다. 쌍둥이를 낳았다. 쓰라린 유산의 고통을 겪은지라, 출산을 위해선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의사 지시를 따라 침대에 누워 편히 지냈다. "아기를 낳고 난생처음 전업주부로서 아기를 키우게 되었습니다."라고 그때를 회상한다.
가족을 위해 요리에 뛰어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3~4개월 된 아이가 먹는 모든 식사가 하나의 프로젝트가 되었다. 요구르트, 식빵, 오트밀도 그때 처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조금 더 성장하자, 아이들의 학교 행사와 과외 활동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이벤트를 주관할 새로운 기회를 찾아냈다. "40명이든 50명이든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손님은 누구지? 어떤 메뉴를 하지, 그리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한 치의 부족함이 없이 자신도 만족하는 완벽한 식사를 준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혼자서 50명 또는 100명분의 식사도 거뜬히 해냈다. "그냥 너무 신났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아이들이 중학교를 마치면서 더는 학교의 축구팀이나 농구팀에 음식을 해주는 기쁨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았다. 이젠 자신의 꿈에 집중하여 일하고 싶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레스토랑을 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레스토랑을 개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레스토랑 사업이 얼마나 실패의 위험이 많은지 여러 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재정적 손실은 떠안고, 감당하며 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꿈을 이룰 기회가 왔는데도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어려운 결단을 했습니다."라고 말한다.
마침내 「소프레」는 뉴욕 타임스, 푸드 앤 와인, 세이버, 푸드 네트워크 등으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2018년에 문을 열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길이었다. 6년 동안 그녀는 다양한 식당에서 인턴을 했고, 프랑스 요리 학교에서 6개월 과정도 밟았다. 남편이 낡고 오래된 건물을 구입하여 레스토랑으로 개조하고 증축하는 데 인허가 문제로 무려 7년이나 걸렸다. 때론 좌절하기도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감사한 것은 꿈을 꾸고 꿈을 향해 계속 노력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한다.
맺음말
속상할 때라도 요리는 그녀를 평온하게 한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그녀를 표현하고, 남에게 사랑을 주는 가장 좋은 일이다. 20대에는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만 하였다. 무엇이 그녀가 좋아하는 일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젠 매일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하며 산다. 앞으로 더 나은 사람, 더 훌륭한 요리사가 되고, 유명한 레스토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아울러 "내가 젊었을 때 식당을 창업하지 않은 것이 다행입니다.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업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고, 레스토랑에 대한 내 생각도 정립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업에 대한 확신과 강한 정신력, 역량, 그리고 많은 관련 지식을 축적하였다. 현재의 레시피도 그간 지속해서 발전시킬 수가 있었습니다."라고 전업주부로서 늦게 창업한 소회를 밝혔다.
그렇다. 충분한 준비 없이 시작한 창업이 성공할 리 만무하다. 특히 은퇴자금으로 시작하는 시니어 창업의 경우에는 더욱더 사전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실패는 노후 파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상기 사례는 준비 없이 무분별하게 생계형 창업에 뛰어드는 국내 은퇴자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좋겠다.
출처 : How This Former Stay-at-Home Mom Built One of New York's Hottest Restaurants At 59. (https://www.paren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