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철훈의 사진 이야기]
색도 언어입니다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는 학교 뒷산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진달래와 산수유가 몽우리를 터트렸습니다. 주위 동산뿐 아니라 무겁고 건조한 시멘트 건물마저도 환하게 밝혀줍니다. 무게 없는 분홍색이 땅 위를 떠다니며 곳곳에 봄의 생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물론 자세히 보면 뿌리에 연이은 가지가 있고 다시 더 가는 가지에 꽃이 피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멀리 떨어져 보면 색만 보입니다. 이것을 사진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사진은 다른 시각예술처럼 사람의 손으로 이미지를 일일이 그려나가지 않고, 카메라라는 어둠상자에 빛으로 상을 맺히게 하고 그것을 화학적이나 전자적 방법으로 정착시켜 서로 나누는 예술입니다. 그 빛을 인정하고 나눌 준비만 되어 있다면 사진의 좋은 점을 많이 알게 됩니다. 우리 맨눈에 잘 보이지도, 드러나지도 않는 것을 사진기에 담을 수도 있습니다.
또 그 과정을 통해 미묘하게 숨어 있는 빛과 다양한 색의 변화를 나름 이해하게 됩니다. 빛의 반응에 따라 사진 속 이야기와 색의 변화는 얼마든지 바뀌며 섬세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이번에는 그중 조리개 값의 변형으로 색의 공중부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진은 만물의 겉모양만 보게 됩니다. 물론 사물을 뚫고 적절한 두께를 선택해 볼 수 있는 엑스레이(x-ray) 같은 사진기구도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색이기도 하고 질감인 그 겉모양만으로 사물의 진위와 그 속을 유추해 냅니다. 질감과 색은 엄밀히 구분하면 일종의 포장입니다. 아주 섬세하고 얇은 겉껍질입니다. 글을 쓰면서도 수채화를 많이 그린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색은 사물에 입혀진 얇고 아름다운 포장이다, 그것은 가장 감각적인 피부이다. 그것은 섬세하고 완벽하기까지 하다. 사물들은 색채 가운데서 가장 찬란하게 빛난다.”
그림만 그린 폴 세잔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색은 인간의 두뇌와 우주가 만나는 구체적인 공간이다.”
그런데 빛은 모든 색을 만나고 전달해 줄 수 있는 대단한 그 무엇임이 20세기 21세기를 거치며 드러났습니다. 우리의 과학이 이젠 빛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빛을 연구하는 많은 과학자들이 빛을 응용하는 많은 첨단 결과물들을 하루가 다르게 세상에 내놓고 있지만, 정작 빛의 본질로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색도 그렇습니다. 우선 빛이 물질인지 아닌지 그 경계를 정하기가 쉽지 않은가 봅니다.
내가 만난 많은 빛은 그 색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해 자신이 보고자 하는 빛이 무슨 색인지 그려보면 알게 됩니다. 빛은 자신의 색을 보여 달라는 세상에게 조건을 붙입니다. 너그러운 사랑의 시선으로 찾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늘에도 색은 존재합니다. 보지 못할 뿐입니다. 이런 빛을 경험한 사람은 그늘 어느 곳에서든 색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사진을 하며, 수많은 곳에서 그늘을 보았고, 담았지만, 나의 사진 어디에도 늘 빛이 그늘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그 빛의 색은 작은 불꽃이 되어 이곳저곳에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긴 겨울을 지나며 피어나는 봄꽃들이 그렇습니다.
빛은 에너지 레벨에 따라 다른 색으로 바뀌는 감정이 없는 물리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진 작업에서의 빛에 따른 색의 변화는 문법이 있는 감정의 교감에 논리가 함께한다는 것을 감지하기도 합니다.
봄의 들판과 겨우내 빛은 얼마나 오랜 시간 색들을 기다렸을까요?
많은 기다림으로 만들어낸 세상입니다.
진달래의 원형을 보기 위해 나뭇가지도, 꽃잎의 디테일도 조리개를 열어 지웠습니다. 더구나 초점을 의도적으로 뒤에 있는 흰 꽃에 맞췄습니다. 드디어 무게도 부피도 없는 핑크빛이 디테일 없이 하늘에 떴습니다.
색도 언어입니다.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이냐 하는 따짐보다 제가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은 연한 분홍색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축복된 봄입니다.
글 함철훈(咸喆勳)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