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유정(北村遊情)’도심 속에서 어머니 품을 느끼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옥’은 낡은 것이었다. 선조들이 살던 빛을 잃은 퇴물. 역사 속으로 잊히는가 싶던 한옥이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삶 속 깊숙이 다가왔다. 특히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북촌 한옥마을’은 외국 관광객 필수 코스가 된 지 오래다. 1960~70년대 개발 바람 속에 제 모습을 감추고 있던 북촌의 한옥은 깔끔하게 다듬어져 현재를 사는 이들에게 조용히 곁을 내주고 있다. 에어비앤비 ‘북촌유정’도 그중 하나다. 그곳에 가면 어머니의 정성은 물론이고, 아버지의 환영인사는 덤으로 따라온다.
‘북촌유정’에서의 하룻밤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은 마루,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각 방이 한 개씩 있다. 처음에는 조금 좁은 느낌이지만 적응하다 보면 아늑함에 빠진다. 앉아 있으면 세상이 정지된 듯 묘한 감정마저 든다.
외국인 투숙객이라면 가끔 ‘행운의 조식(?)’을 맛볼 수도 있다. 단, 어머니 박소자(朴昭子·76)씨가 아프지 않을 경우다. 갈비찜, 불고기, 조기 등 ‘임금님 수라상’ 부럽지 않은 요리가 식탁 위에 올라간다. 조식에 얽힌 일화도 있다. 에어비앤비 공동설립자인 네이선 블레차르지크가 묵었을 때다. 박씨는 아침밥으로 갈비찜을 만들어 줬는데 네이선이 아침밥을 다 먹을 때까지 지켜봤다고. 그것도 아무 말도 없이. 영화 <집으로>의 할머니가 순간 생각났다. 그 뒤 네이선은 ‘그녀와 단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고 방문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북촌유정’은 박소자씨의 또 다른 봉사 공간이다. ‘북촌유정’에 오는 손님을 온정다해 맞이한다. 깨끗한 이불을 내고, 좋은 음식 맛보이고 싶어 장을 보는 어머니를 딸 이수연씨는 그냥 이해하기로 했다. 어머니가 손님을 대할 때 스스로를 치유하는 것 같기 때문. 이씨는 여기 오는 모든 사람이 박소자씨의 따뜻한 품을 느끼고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 프리랜서 오병돈 obdlife@gmail.com ‘북촌유정’은 6년 전 박소자씨를 위해 가족들이 마련한 일터이다. 오
랜 봉사생활을 접은 후 마음고생이 심했던 박씨가 일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다 게스트하우스를 생각했다. 한 달
에 두, 세 번 정도 손님을 받을 계획이지만 어머니가 너무 열심히 일해서 걱정인 딸 이수연씨. 안코코예술문화공
간 대표로 활동하는 이씨는 ‘북촌유정’이 비는 시간을 이용해 자신이나 다른 작가들의 미술작품을 전시한다.
▲박소자씨의 남편 이형술(李炯述·79)씨는 ‘북촌마을’의 ‘촌장’이다. ‘북촌’이라는 지명도 이씨가 처음 썼다. 북촌
한옥 가꾸기에 한평생을 바친 세월이었다. 이씨를 만나면 반갑게 맞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북촌의 역사까지 들을
수 있다.
▲ 어머니의 지극정성이 담겨 있는 것이 바로 이불. 손님들이 한 번이라도 쓰고 간 이불의 겉 천을 다 떼어내 빨
고, 다려 바느질하는 데까지 3일이 걸린다. 한 번 하고 나면 며칠 몸이 아프지만 오시는 손님에게 깨끗한 이불을
제공하고 싶은 마음은 늘 한결같다. 요금은 1박 4인 기준 28만원. 문의 02-6369-5230
글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사진 프리랜서 오병돈 obdlif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