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별곡(關東別曲)의 재조명
아는 만큼 보인다는 옛 말이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관동별곡>을 우연히 최근 다시 읽어 보니, 과거에는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다시 보이는 것이 아닌가? 예컨대, <관동별곡>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江湖애 병이 깁퍼, 竹林의 누엇더니,’
‘강호에 병이 깊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서(唐書) <은일전(隱逸傳)>에 나오는 ‘천석고황(泉石膏肓)’이란 성어를 우리말로 표현한 것이다. 당 고종 때의 은사 전유암(田游巖)은 기산(箕山)의 허유(許由)가 기거하던 곳 근처에 살았다.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나중에 고종이 숭산(嵩山) 행차길에 들러 “선생께서는 편안하신가요?”라고 묻자 “신은 샘과 돌 같은 자연을 즐기는 게 고질병이 됐습니다”라고 답한 고사가 나온다. ‘고황(膏肓)’이란 원래 ‘심장과 횡격막 사이’를 뜻하는 말로, <춘추좌전>에 경공(景公)이 이 부위에 병이 생겨 고칠 수 없었다는 고사에서 이후로 ‘고질병’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그 다음, ‘竹林의 누엇더니’란 구절을 살펴보자. 당시 정철은 동인(東人)들의 탄핵으로 물러나, 전남 창평(담양군)에 머물고 있었다. 창평에 대나무가 많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여기서의 ‘죽림(竹林)’은 위진(魏晉)시대의 은사들인 ‘죽림칠현(竹林七賢)’에서 따온 단어이다.
즉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벼슬길에서 물러나 있음을 죽림칠현과 같은 수준의 은거로 승격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또한 말미 부분, 술이 거나하게 취해 잠이 들어 꿈에 신선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신선이 송강에게 하는 말의 일부이다.
‘黃庭經 一字를 엇디 그릇 닐거 두고, 人間의 내려와셔 우리를 따르난다?’
<황정경> 한 자를 어찌 잘못 읽은 탓에 인간 세상으로 쫓겨나 신선인 우리를 따라다니는 신세가 되었느냐란 뜻인데, 이 부분은 소동파의 <부용성(芙蓉城)>이란 시의 다음 부분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往來三生空煉形(왕래삼생공연형) 삼생을 왕래하며 부질없이 수련을 하였거니
竟坐誤讀黃庭經(경좌오독황정경) 결국 <황정경>을 잘못 읽은 탓이었네.
<황정경>은 신선이 되는 비결을 담았다는 도교의 경전이다. 마지막으로, 송강이 잠에서 깨어 상쾌한 기분을 표현하는 다음 구절이 있다.
‘和風이 習習하야 兩腋을 추혀드니, 九萬里 長空애 져기면 날리로다.’
화창한 봄바람이 솔솔 불어와 양 겨드랑이를 추켜올리니, 아득한 하늘도 웬만하면 날 것 같다는 뜻인데, 이 중 앞부분은 당나라 때의 천재시인 노동(盧仝)의 아래 <칠완다가(七碗茶歌)>에서 따온 것이다.
碗喉吻潤(일완후문윤) 차를 우려내어 첫 잔을 마시니 목구멍과 입술이 촉촉해오고,兩碗破孤悶(양완파고민) 두 번째 잔을 마시니 외로운 시름이 사라지며,(중략)七碗契不得(칠완계부득) 일곱째 잔은 채 마시기도 전에惟覺兩腋習習輕風生(유각양액습습경풍생) 두 겨드랑이 사이에 가벼운 바람이 이는 것을 느끼겠구나.
여기서 ‘습(習)’은 어린 새가 날갯짓[羽]을 하면 하얀 속[白]이 보인다는 뜻에서 나온 글자다. ‘두 겨드랑이 사이에 바람이 분다’는 표현은 새처럼 날개가 돋아 하늘을 난다는 뜻으로, 결국 신선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글 하태형 현대경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