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안 해도 기부금은 내는 ㈜에트로 CEO 이충희 사장의 인생철학
 

“즐기다 보면 즐거운 일이 생긴다”

 

 

수중에 가진 돈은 800만원.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는 없고 시장은 척박했다. 그러나 그는 과감히 도전했다. 그 도전의 결과는 20여 년 후 연 매출 1000억원대의 견실한 중견기업으로 자라났다. 바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에트로의 국내 총판을 맡고있는 (주)에트로 이충희(李充熹·61) 사장의 인생 이야기다. 화려하고 요란스럽지는 않아도 꾸준하고 놀라운 성공을 이끌고있는 그가 20여 년간의 경영자 생활과 함께 예순을 넘으면서 품게 된 인생철학을 들어본다.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에트로는 특유의 페이즐리 문양(인도 카슈미르 지방의 전통 문양을 스코틀랜드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문양)의 디자인을 기본적인 이미지로 삼은 독자적인 스타일을 갖고 있다. 1960년에 선보여 곧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30여 년만에 공인된 명품 자리에 오르게 된 건 그러한 독특한 디자인의 힘에 기인한 바가 크다.
 

에트로는 24년 전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명품 브랜드는 희귀했고 일반의 인지도도 낮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이충희 사장은 에트로의 한국 총판 사업권을 잡아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수중에는 800만원만 가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절박하게 시작하여 성공을 일구다


이 사장이 회사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26세 때, 그가 속한 부서는 신라호텔 자금관리과였다. 어린 나이, 더군다나 관광경영학과 출신이어서 회계를 잘 모르다 보니 부서에서는 그를 안 받아주려고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고생이 나중에 회사를 경영할 때 큰 도움이 됐다. 그걸 깨달은 후, 그는 ‘그때는 힘들지 모르지만 겪고 나면 도움이 된다’는 지론을 갖게 됐다.


“처음에 에트로를 시작할 때야 뭐 절박했지요. 직장을 그만두고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나를 움직이게 만든 원천이죠. 궁하면 통한다잖아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피곤하지도 않아요 (웃음).”


에트로의 총판권을 따내는 작업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워낙 낯선 도전이었기에 실패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는 주변의 우려, 에트로 브랜드를 원하는 다른 기업들과의 경쟁, 본사에서의 의구심 등등. 그러나 마침내 에트로를 한국에 전파할 기회를 얻었고, 그는 자신에게 온 기회를 허투루 쓰지 않았다. 직원 270여명, 연 매출 1000억원에 달하는 에트로의 현재 모습은 그러한 노력의 대가일 것이다.
 

 

모든 성공의 기반은 부지런함


“직원들에게 부모가 능력이 있으면 수성(守成)하기가 힘들고 능력이 없으면 벌기가 어렵다고 말해요.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밑에 깔려 있는 건 부지런하다는 겁니다. 부지런함이 습관화 안 되면 인생이 어려워져요.”
 

그러고 보니 이 사장이 강조하는 부지런함은 에트로의 이미지와도 흡사하다.

 

“한국에서 에트로라는 브랜드는 자극적으로 확 뜨지는 못했어요. 그러나 저희는 꾸준히 가고 있는 중이에요. 확 뜨고 확 떨어지고 하는 현상이 없었어요.”
 

이 사장은 에트로 본사 사장의 정신, ‘서두르지 마라, 길게 봐라’에 매우 동의한다고 말했다. 사실 에트로가 나오면서 함께 나왔던 명품 브랜드들이 있었다. 그중에 현재까지 살아 있는 브랜드는 얼마나 될까? 서두르지 말고 길게 보라는 말의 정당성은 에트로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현상 자체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여행의 즐거움 속에서 발견한 인생의 의미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이 사장이 경영을 하지 않았으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지 궁금했다.
 

“경영을 안 했으면 돈이 없을 테니까 무전여행이나 하고 있었겠죠 (웃음).”
 

대답대로, 그리고 그의 경영처럼 그는 꾸준한 여행가로서의 취미를 갖고 있다. 그는 최근에는 <조용헌의 휴휴명당>을 읽고 책에 나온 명당 12곳을 골라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책을 읽고 난 후에 가니 의미가 깊었습니다. 산을 오르며 과거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상황이었을 때를 상상하며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도 됐어요. 특히 전남 장성군의 백양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또한 미술품을 수집하는 취미도 있다. 아버지의 호를 따서 만든 백운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그로선 당연한 일이기도 할 것 이다.
 

“해외를 나가면 하루나 이틀 정도는 벼룩시장에 갑니다. 그곳에서 그림을 사죠. 벼룩시장에 가면 그림이 싸요. 덕분에 많이 살 때는 30점씩 사기도 합니다.”
 

그에게 있어 그림은 지적 허세나 투자의 목적이 아니다. 오로지 순수하게 즐기는 분야다. 그래서 그는 그림을 살 때 나름의 법칙을 갖고 있었다.
 

“벼룩시장에서 그림을 구입할 때는 가격이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가기 전에는 그림의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죠. 그러니 미리 살 수 있는 금액의 한도를 결정해놔야 합니다. 콜렉션의 가장 좋은 부분은 즐긴다는 것입니다. 즐기려면 가격을 중시 안 할 수가 없는 법이죠. 저는 한 점당 통상 30만원 이내로 잡고 움직입니다.”

 


순수하게 즐기는 것이 최고의 보상이 된다

 

그가 벼룩시장에서 산 그림들 중 다수는 백운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소장하고 있는 총 작품 수는 400~500점 가량 된다고 한다. 벼룩시장에서 산 그림이라고 싸구려만 있을까? 그렇지 않다.

 

“언젠가 사온 그림을 어느 작가 분이 보시곤 ‘저 그림에 대해서 한 번 찾아보세요. 저건 보통 작가가 그린 게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큐레이터에게 말해서 내역을 찾아봤더니 경매 사이트에서 1000만원짜리로 책정된 그림이었어요. 그래서 ‘야, 다른것도 좀 검색해봐라(웃음)’ 했더니 그런 가치를 가진 그림 한 점 더 나오더군요.”
 

즐기다 보면 즐거운 일이 생긴다는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순수하게 즐겁기 위해 그림을 살 뿐이다.
 

“내가 그림을 좋아한다고 해도 자식들이 안 좋아하면 그건 쓰레기가 돼요. 해외 벼룩시장에 그림들이 나오는 건 부모가 돌아가시면서 자식들이 부모의 짐을 정리한 것들이 다수입니다. 그러니까 그림도 내가 즐기고 봐야지, 투자한다고 욕심을 내는 게 의미가 없어요. 어차피 사람은 죽는 걸요.”

 


광고는 안 해도 기부금은 낸다
 

이 사장은 아버지의 호를 딴 백운장학재단을 운용하고 있는 중이다. 살펴보니 작은 규모인데도 불구하고 연 3억원 이상의 기부 활동이 계속 이뤄지고 있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장의 활발한 기부 활동은 에트로의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효과도 낳고 있다.
 

“고객들도 저희 브랜드에 대해서 착한 브랜드라는 개념을 갖고 있는 거 같아요. 가격이나 상품의 질이나 기부 활동 등등에서. 저는 광고비는 못 내도 기부금은 낸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가 하는 패션쇼는 브랜드를 알리는 목적도 있지만 기부 활동의 하나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패션쇼에서 화환을 안 받
아요. 대신 화환에 쓸 돈을 입구에 있는 기부함에 내주시면 쌀을 사서 불우이웃을 돕고 있습니다. 기부하신 분들께는 기부영수증을 개인별로 챙겨서 보내드리고 있어요.”


이러한 기부 활동에 힘입어 그는 2010년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하고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되기도 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목적이 다릅니다. 각자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업가로서는 회사를 키우는 게 첫 번째 목적일 수밖에 없죠. 그런데 저는 회사를 무조건 키운다기보다는 영속성에 가치를 두는 것 같아요. 경영에 있어 다른 사람이 100을 돈을 버는 것에 둔다면 저는 60만 돈을 버는 것에 두고 40은 다른 가치관
을 부여하는 거죠. 저랑 같은 시기에 시작한 회사들 중에는 지금은 없어진 회사도 있고 저보다 엄청나게 큰 규모가 된 회사도 있어요. 저희보다 크게 성장한 회사를 보고 부럽냐고 묻는다면 그런 생각은 안 듭니다. 제 현실에 만족하니까요.”

 


가족, 회사, 국가에 대한 사명감
 

이 사장에게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지키면서 살아왔느냐고 묻자 사명감이라고 대답했다. 우선 가족에 대한 사명감이 있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원초적인 사명감, 회사에 대한 사명감이 있다. 그의 회사에는 270여 명에 달하는 적지 않은 직원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 대한 사명감이 경영을 지속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크게 보면 국가에 대한 사명감이 있다. 

 

“2001년부터 군경이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오고 있습니다. 강의 내용에서도 국가관을 강조하는 편이죠. 요즘 많이 약해진 듯해요.”


그는 나이가 들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게 된다는 게 강점이라고 밝혔다. 그런 마음이 그에게 삶의 여유와 행복을 주고 있을 것이다.
 

“행복하죠. 지금 제가 경영을 하지 않았다면….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동기들이 45~50세에 명퇴했잖아요. 그래서 모임을 나가면 다 백수라고 하고. 그에 비하면 저는 얼마나 행복해요.”

 

 

 

 

모든 해결법은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믿음


이 사장과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즐겁게 경영하는 CEO로 다가온다는 게 부러웠다. 그렇지만 경영자로서 그 또한 힘든 일이 없었을 리가 없다.
 

“장사하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가 없죠. 그러나 자기가 스스로 푸는 방법밖에 없어요. 저는 고민이 되면 ‘에이 여행이나 가자’ 해요. 내가 그걸 앉아서 계속 고민이나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는 고민에 대한 모든 결정과 해결 방법은 자기 스스로에게서 나온다고 말했다. 돈은 없고 브랜드에 대한 기반도 없고 미래에 대한 보장도 확실치 않았던 시절, 과감하게 사업을 시작하여 성공에 이른 사람답게 그의 말에는 ‘홀로 결정하고 홀로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법칙이 내재되어 있었다. 이제 에트로는 내년에 국내 론칭 25주년을 맞이한다.
 

“5년에 한 번씩 패션쇼를 하는데 내년이 패션쇼를 여는 해입니다. 본격적으로 기부활동을 같이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대략 3월 15일 전후해서 열릴 것 같네요.”


근면함과 인생에의 긍정. 이 사장을 정의할 수 있는 두 가지 키워 드일 것이다.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살았고, 세상은 그에게 보답을 해줬다. 그런 인생이 만들어낸 건강함이 이 사장의 아우라가 되어 나오고 있었다. 역시 부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의 말대로 금전적인 성공이 아닌 인생의 성공이라는 점에서.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