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시절 회고하는 김정렬 부동산전문가의 인생 재구성
삶의 허무를 깨달으니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다
김정렬(金淨烈·60) 한국일반행정사협회 전임교수는 최근 숲해설에 푹 빠져 있다. 숲해설가가 되기 위해 한국숲해설가협회에서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그의 전력을 살펴보면, 그러한 선택에 의아함을 느낄 수 있다. 30여 년 부동산 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다양한 직책을 갖고 살던 사람이 숲해설가라니? 그러나 그뿐만 아니라 그는 그림, 탁구, 수화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영역을 제2의 인생에서 종합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하나같이 그의 과거 인생과는 완전히 다른 것 같은 일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선택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김 교수의 삶을 바꾼 그 열쇠는 무엇일까?
김정렬 교수는 대학 졸업 후 1981년 지금의 한국자산관리공사 공채 1기에 수석으로 입사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에서 부동산에 대한 기획과 집행, 채권추심 등의 업무를 10년 동안 맡아 했다. 1991년 정부에서 당시로선 획기적으로 부동산 신탁회사인 대한 부동산신탁을 세우자 그는 그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때 사표를 쓰고 그는 ‘대한부동산경제연구소’를 열었다. 부동산 기획통으로 이름을 날린 그에게 일간지 기자들로부터 외환위기 상황에서의 부동산시장을 전망해달라는 요청이 잇따랐다. 그러던 중 한 일간지 기자가 그에게 생계형 부동산 실무 강좌를 개설해보자고 제안했는데, 그때 만든 것이 ‘부동산중개업 창업과정’이다.
그 후 경향신문에 ‘김정렬 부동산칼럼’을 연재하고, 방송에 출연하면서 명성을 높여갔다. 1999년 말엔 지방 언론사 사주가 ‘부동산써브’라는 부동산 정보회사를 만들고, 그를 전문 경영인으로 스카우트했다. 1년간 좋은 실적을 내며 이론에 실무 경험까지 쌓으면서 부동산 드림팀도 만들고 알리멤버스 등 민간기업 대표이사도 역임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로 국유지 개발을 성공시켰고 부동산 공매를 전자시스템으로 전면 개편하여, 국가 수익 창출 및 예산 절감에 기여했다. 남대문세무서 부지를 개발한 서울 ‘나라키움빌딩’과 ‘온비드’등이 그 성과다. 그 공로로 국무총리상을 포함하여 각종 기관 표창을 받았다. 지금도 김 교수에게는 명함에 쓰일 직책들이 많다. 그는 한국자산관리공사 이사와 충청대학교 겸임교수 등을 거쳐 지금은 정보통신공제조합 전문위원, 한국자산신탁 자문위원, 한국자산관리공사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1956년생으로 환갑을 맞은 그는 가뜩이나 바쁜 제2의 인생에 그림, 탁구, 숲해설가의 길을 확장했다. 이렇게 계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그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가 궁금했다.
인생의 전환기 “시원하다”
그는 인생의 전환기에 선 자신의 감정을 ‘시원하다’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사람이 인생에서 맡아야 하는 역할을 ‘관점’이라는 정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부동산의 가치는 기준시점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물건이 좋냐고 누가 물어봐도 그것이 좋은지 나쁜 지에 대해선 여러 가지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거죠. 단적으로 말하자면 언제 사서 언제 팔아야 하는 건지 그 조건에 의해서 그것의 가치는 천차만별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의 ‘관점’으로 봤을 때 그가 하고자 하는 숲해설가는 어떨까?
“전망을 하자면, 이 시장은 계단식으로 움직여 왔어요. 그런데 계단식이라는 건 올라왔다는 거고 앞으로도 올라갈 거라는 거죠.”
그의 관점은 독특했다. 숲과 그림, 부동산이 하나로 묶이는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저는 숲에 왔을 때 삼나무면 어떻고 잣나무면 어떻고가 중요하지 않아요. 그것들이 저에게 어떻게 느껴지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그림을 볼 때 무엇을 그렸는지 어떤 걸 그렸는 지보다 느낌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림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고 다녔는데 주로 어떻게 느끼는가에 대한 것이었어요.”
그는 자신이 설명하는 행동 자체도 만족해하지만 자신의 설명을 듣는 사람이 기존 관념과는 다른 느낌을 받는 일이야말로 정말로 만족스러워 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하다보니 출판사까지 하게 된 인생
학구열은 그의 현재를 만든 주요한 동력 중 하나였다. 그런 데다 과감한 행동력도 있었다. 그래서 그가 출판사를 운영하겠다고 마음 먹게 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교보문고,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가면 부동산 관련 책과 논문을 검색합니다. 그러다가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됐어요. 마침 매일경제신문과 교육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 교재가 필요한 일이 있었죠. 그런데 각 강사에게서 자료를 받아 교육하자니 내용의 통일성에서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만들
겠다고 마음먹게 됐어요.”
그러나 생전 처음 하는 출판 일, 쉬울 리가 없었다. 아는 것도 없고 자신도 없어서 우리나라 최고의 출판사 사장을, 그러나 출판사를 실패한 사람을 만나자고 생각했다. 성공 사례가 아닌 실패사례에 능통한 사람의 지식을 흡수하면 실패를 그만큼 피하게 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이었으리라.
“소개를 받아서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하니까 굉장히 시니컬하더라고. 밥 먹자고 하니까 자기가 밥을 먹어서 뭐가 좋으냐고. 당신과 대화를 해서 자신이 얻을 게 뭐냐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이거 이거를 주겠다고 하니 만나자데. 특히 부동산 관련해서는 자기도얻고 싶은 정보가 있었던 거예요. 그렇게 해서 만났는데 말이 굉장
히 간결했어요. ‘안 돼요’ 아니면 ‘좋아요’로 대답했어요.”
출판은 영업과 유통 파이프라인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재무쪽으로 들어가면 업계 관례로 인한 그 복잡함이 웬만한 사람은 엄두도 낼 수 없다. 그러나 김 교수는 뛰어들었고 자신의 경험과 이력에 한 줄을 추가할 수 있었다.
1. 여수 오동도 혼자 여행 중 2. 경향신문 부동산 컬럼니스트로서 왕성한 활약을 보였던 김 교수가 2005년 자문위
원 위촉을 받고있다.
문학적이고 미술적인 감성을 담은 숲해설 추구
그는 현재 숲해설가협회에서 숲해설가 교육을 받고 조만간 시험을 치를 예정이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그렇기에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의 어려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숲해설가가 받을 수 있는 강사료 등은 열악한 수준입니다. 쉽게 말하면 최악의 직장 중 하나예요. 그런데 제가 직장을 여러 개 겪어 봤어요. 사장님, 단장님, 이사님 등등 우리나라에 있는 직책은 다 한 번씩은 해봤을 겁니다. 이러한 모든 직장의 공통점은 자기가 다니는 직장이 가장 고달프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숲해설가는 정
말 고달프긴 합니다. 그런데 저는 거꾸로 생각해요. 상황이 어려운만큼 개선하면 그만큼 앞으로 발전할 여지가 많다는 관점으로.”
숲해설도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문학적이고 미술적인 감성을 더한 숲해설을 하고 싶어 했다.
“동화책을 굉장히 많이 읽었습니다. 모든 상상력은 아이들을 웃게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나와요. 동화책을 읽듯이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숲해설을 하고 싶어요. 더군다나 숲은 아이를 동화책보다 더 신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마약과 같은 탁구의 매력
그는 탁구를 하루에 한 시간은 기본으로 한다. 하루라도 안 하면 성취감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열정적인 탁구 마니아이기도 하다. 탁구 기술의 원리에 대한 글을 따로 정리하고 있을 정도다.
“탁구와 숲해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열악하다는 거죠 (웃음).”
그에게 있어 탁구는 작디 작은 공간 안에서 다양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섬세한 체험이다. 그의 탁구 예찬을 들어보자.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 뭘 준비하면 좋겠느냐고 물으면 탁구를 배우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탁구는 빨리 배우는 게 좋아요. 탁구는 스스로 성취할 수 있는 자료들이 잘 준비되어 있고 탁구장이 동네에 가까이 있어서 쉽게 찾아갈 수 있으며 비용이 저렴합니다. 그리고 구성원이 남녀노소가 다 있어서 인간관계가 아기자기하게
이뤄집니다. 성취감이 있으며 스트레스도 풀 수 있죠. 마약과 같습니다(웃음).”
그는 탁구에서 선수는 타자와 포수 역할을 혼자서 다해야 하는 즐거움이 있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그가 삶을 살아온 방향성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너무 거대해서 이룰 수 없는 것을 체험하다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의아한 점이 있다. 그는 부동산 전문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제2의 인생에서 열중하고 있는 숲해설이나 탁구는 자본을 가치의 핵심으로 두는 그의 본업과 비교해 보면 열악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의 이러한 완전히 다른 선택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었던 걸까?
“과거에 몽골에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몽골에 도착해서 현지 명사들과 함께 헬기를 대절해서 고비사막을 갔었죠. 헬기 위에서 보자니 몽골은 길이 하나밖에 없습디다. 초원의 타이어 자국이 길이었어요. 사람도 없고 차도 없고. 중간 지점에서 헬기가 급유한다고 내렸을 때였어요. 그때 저는 360도 지평선을 처음 봤습니다.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제가 선입관을 갖고 살았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단순히 놀랍기만 한 경험이었다면 그저 신기한 여행 체험이었을 것이다. 몽골은 그에게 세상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이어서 헬기를 타고 가다가 늪지대를 저공비행으로 지나갈 때가 있었어요. 현지 인사들도 비용 때문에 잘 안 가는 지역이었죠. 늪의 색이 정말 신비한 인상을 줬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끝없는 넓이가 인상적이었어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만약 여기에 빠지면 빨리 자살하는 게 좋겠다. 살겠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겠다.”
그는 몽골의 늪지대에서 너무 거대해서 이룰 수가 없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직 알지 못하는 이 세상, 그리고 자연의 무서움이 어떤 것인지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죽을 고비도 넘기고 나니 앞으로 살면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나중을 위해서 준비하는 게 아니라 지금이 행복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됐다.
개인전을 열만큼 그림에 열정이 있는 김 교수는 기자를 만나기전에 직접 만들어온 수제 목걸이를 보여주고 있다.
경계를 넓히고 배려하고 소통하라
“알고 보면 너무 허무한 게 많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도 있는 겁니다.”
그동안 그가 했던 일은 전망을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연만큼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가 자신이 행복한 일, 돈 말고도 가치 있는 일을 찾아 나서게 된 이유였다. 그 누구보다 냉정하게 평가하는 일을 업으로 살아오던 이는 스스로의 일 자체에도 냉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으
로써 그는 돈과 경력에 구애받지 않는 가치로서의 일을 냉정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
숲해설이라는 자연과 맞닿은 일을 추구하게 된 그는 중요한 것은 공존이라고 강조한다.
“숲해설은 과학이면서 시,음악, 그림을 융합해놓은 종합예술과도 같습니다. 나무나 사람이나 비슷한 점이 있어요. 살아 있을 때가 투쟁의 역사라는 점이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 차이가 납니다. 나무는 나이가 들거나 죽어서도 많이 베푸는 모습을 보이지만 사람들은 나무에 비해 그 정도가 현저히 떨어집니다.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존중받고 존중해주는 모습이 더 필요하고 멋지지 않을까요.”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