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부모님 팔순에 고향마을을 둘러보고 싶다고 하셨다. 경상북도 경주와 건천, 안강 일대를 돌면서 생존해 계신 친척 어르신들을 찾아 다녔다. 집은 현대식으로 짓거나 고쳤지만 아직 그 터에 그대로 살고 계시니 찾아나니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헤어지는 자리에서 살아 생전에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하시면서 서로 손을 맞잡고 눈물짓는 어르신들을 뵈면서 이제 한 세대가 지나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세대가 지나가면 다음세대가 이어야 하는데 작금의 우리 지방 마을은 그렇지 못하다. 평생을 한 마을에서 살면서 자식 낳고 기르고 출가 시키셨다. 옥답을 지키며 농사짓고 피부가 구릿빛으로 변하고 허리가 구부러지신 어르신들. 그러나 이제 젊은 사람들은 도회지로 다 떠나고 농사를 짓기도 힘든 노인들만 고향을 지키고 있다. 마을엔 빈집도 많고 마당엔 잡초가 무성하고 허물어져 가는 집도 많다. 집을 없애고 밭으로 사용하는 곳도 많다. 친척 어르신들을 만나러 여기 저기 마을을 돌아 다니는 동안 아이들이나 젊은 청년들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동네마다 정적이 흐른다. 간혹 노인들 모습 만을 볼 수 있는 시골 마을은 그래서 더 힘겨워 보인다.
<마늘밭이 넓게 펼쳐진 고향마을 풍경>
부모님 팔순 여행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내가 어릴 때 살던 마을 이었다. 우리가 살던 집은 방이 두 개고 그 방 사이에 작은 부엌이 있는 작은 초가집이었다. 마당에서 바라보면 멀리 앞 산과 넓게 펼쳐진 논과 밭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어릴 때는 동네에서도 산 중턱 맨 위에 있는 집 까지 오르 내리는 것이 힘들었다. 그 집을 찾아갔더니 집은 없어지고 집터는 밭으로 변해 있었다. 부모님과 그 집터에 서서 사방을 둘러 보았다. 어린 시절에는 동네에서도 높은 곳에 있어서 불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전망이 동네에서도 가장 좋은 곳이었다. 지금 그 동네에서 새로 집 지을려면 아마도 우리집이 있던 그 터가 가장 인기 좋은 자리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 마을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부모님이 알던 어르신들은 대부분 돌아가셨고 그 자녀들은 이 마을을 떠났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없으니 빈 집이 늘어난다. 폐허로 변해버린 집도 여기저기 보인다. 이렇게 사람이 없고 마을은 망가져 가는 걸 보니 마음이 불편하다. 마을을 떠난 젊은 사람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마을의 빈집>
십 수년 전에 경상남도 남해에 조성하는 작은 전원마을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정부예산을 지원해서 그 마을에 도시인들이 귀어 할 수 있는 전원마을을 조성하는 프로젝트였다. 그 전원마을 대상지는 죽방렴으로 유명한 지족해협 근처로 관광객도 많이 찾아오고 어느정도 활성화 된 어촌 마을 인근이었다. 그러나 지역 어르신들과 몇 차례 대화를 나누어보니 실상은 문제가 많았다. 그곳 어촌 마을도 젊은 사람들은 다 떠나고 이제 노인들만 남아서 몇 년 지나면 배를 탈 사람도 다 없어질거라고 했다. 심지어 하루에 두 번 썰물 때 거둬야 하는 죽방렴도 방치 될 정도라고 했다. 원주민 어르신들은 새로 만들려고 하는 전원마을엔 무조건 젊은 사람들이 와야하고 나이 든 사람들이 온다면 그 전원마을 계획을 절대 찬성할 수 없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온다면 마을 어르신들이 모든 것을 지원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하시는 걸 보면서 농촌 뿐만 아니라 어촌도 고령화 되어가는 현실의 절박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광, 고흥, 완도, 신안 등지의 어촌 관광마을 조성 계획에도 참여하면서 그 지역들도 머잖아 사라질지 모른다는 원주민들의 불안감, 절박함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고향마을 뒷산에서 잔달래꽃을 따시는 어머니>
우리나라는 지구상에 유래없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 되어가고 있다. 수치 상으로는 아직 초고령 사회엔 이르지 않았다고 하지만 지방 마을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미 초고령 사회가 된지 오래되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50%를 넘긴 지역도 많다. 예측 자료는 향후 30년 내 전국 3,482개 읍,면,동 중에 39.7%인 1,384개가 소멸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지방을 둘러보면 이러한 예측은 더 이른 시간에 현실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갖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불안을 잘 아는 각 지자체에서는 도시인들에게 많은 혜택을 제안하면서 귀농, 귀어 하기를 홍보하고 있다. 강원도처럼 산지가 많은 지역은 더 다급하다. 이를 반영하듯 산림청에서는 귀농. 귀어대신 이제는 ‘귀산 시대’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지방으로 가는 것이 얼마나 큰 모험인가를 잘 알 수 있다.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지방 마을들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면 그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의 지속가능한 행복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금 우리나라 지방마을은 거대한 실버타운이다. 모든 기능의 도시편중 현상이 심화되면서 지방은 방치되어있다. 이미 초고령 사회를 넘어버린 지방 마을들은 활기가 사라지고 서서히 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 단기적인 지원으로 도시인들을 지방으로 유치하는 것은 부작용을 유발 할 것이다. 이주자들에게 편중된 지원은 오히려 원주민들과의 갈등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도시인들이 이주 해 오도록 지원하는 예산을 먼저 원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사용해야 한다. 지방에 거주하는 고령자들도 지금 도시의 고령자들이 누리는 의료, 문화, 교육 등 여러가지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러한 혜택들이 지역적 특성과 잘 결합되어 정착되어 갈 때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주를 고려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방 소멸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