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나 현자들이 하나같이 사막이나 황야를 찾아간 것은 그곳이 ‘비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비어 있지 않으면 신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많은 사람이 해오는 질문 중 하나는 가봤던 여행지 중 한 곳만 추천한다면 어디를 꼽겠느냐는 것이다. 장소마다 느낌이 다른데 그런 데가 어디 있냐며 웃어넘겼지만 결국 꼽은 곳은 모로코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진기한 것들로 가득한 곳. 정비된 수도 라바트와 천년 미로의 도시 페스, ‘본 아이덴티티’를 비롯해 온갖 영화의 배경이 된 다닥다닥 붙은 하얀 집들이 있는 항구도시 탕헤르, 이름만 들어도 노래가 흥얼거려지는 낭만 가득한 카사블랑카도 좋지만 역시 모로코 여행의 백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야시장이 열리는 마라케시와 별이 쏟아지는 사하라 사막의 야영이라 하겠다. 아침에 일어나면 입안에서 모래가 서걱대고 며칠간 제대로 씻을 수도 없지만 밤이 되면 500만 개, 아니 5000만 개의 별을 이불삼아 잘 수 있는 곳. 사하라 사막의 하룻밤은 세상 어느 5성급 호텔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다.

 

 

모로코의 심장, 마라케시

카사블랑카를 지나 기차를 타고 모로코의 심장이라 불리는 마라케시(Marrakesh)로 간다. 밤이면 세상에서 가장 큰 포장마차촌이 펼쳐지는 제마엘프나(Djemaa el-Fna) 광장과 미로로 된 장터 수크(Souq)가 있는 곳. 가게마다 손님을 불러 세우고 어느 나라에서 왔냐, 안 사도 좋으니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말을 걸지만 다른 곳에서라면 몰라도 이곳에선 귀찮지 않다. 모로코 사람들 특유의 유머와 밝음 때문이다.

이곳에선 반드시 흥정을 해야 한다. 함께 여행한 유럽 친구들은 평소엔 콧대 높게 굴다가도 수크에 갈 때면 한껏 낮은 자세로 함께 가줄 것을 청했는데 그들에겐 흥정 문화가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단 80%는 후려치고 들어가며 흥정하는 내 모습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진다. 난 마치 묘기라도 부린 듯 으쓱해진다. 그들은 왜 정찰제가 아니냐고 투덜대지만 이런 맛이 있어야 장터이지~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노천카페에 앉아 민트차를 마신다. 제대로 씻지 않은 민트 잎에 뜨거운 물만 부었는지 흙이 우적우적 씹힌다. 포장마차가 열리기 전 낮의 빈 광장에선 세상 어디서도 보기 힘든 진기한 묘기를 볼 수 있다. 젤라바(모로코 전통의상)를 입고 춤을 추는 마라케시의 명물 물장수를 비롯해서 뱀 부리는 사람, 약 파는 사람, 헤나 타투를 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수백만 명이 들끓는 광장을 보고 있으면 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보는 것 같다. 저녁 무렵이 되니 목욕탕도 아닌데 거대한 광장에 일제히 연기가 피어오른다. 낮 동안 비어 있던 광장이 거대한 포장마차촌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다닥다닥 붙은 포장마차에서 타진, 하리라, 쿠스쿠스, 케밥, 에스카르고 등 갖가지 산해진미에 취해본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헷갈리는 동안 밤이 깊어간다.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 사막 여행이 시작되는 므하미드로!

마라케시에서 뭉친 일행은 미니버스를 타고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 사막캠프가 있는 므하미드(M’hamid)로 향했다. 베르베르족들의 터전이기도 한 므하미드 사막 캠프의 숙소는 진흙으로 된 카스바다. 카스바라니? 가요에서나 듣던 카스바가 정말 존재한다는 말인가? ‘카스바(casbah)’는 ‘요새’라는 뜻으로 주로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도시의 방어를 위해 시가지의 일부 또는 그 외곽에 세워지는 성을 말한다. 붉은 사막 한가운데 미로처럼 붙어 있는 성안에 있는 집에서 민트차를 마셨다. 므하미드엔 사막 캠프가 여러 개 있다. 혼자서 온 여행객도 이곳에서 사막투어를 예약하면 안내받을 수 있긴 하지만, 그럴 경우 차 한 대와 부대비용을 혼자서 다 감당하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불편이 있다. 사막 투어는 혹시 모를 위험도 있어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여러 명이 함께하는 것이 재미도 있고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사막으로 들어가기 위해 3대의 지프차에 나눠 타고 자동차 경주대회인 다카르 랠리가 열리는 길을 따라 에르그 시가가(Erg Chigaga)로 들어갔다.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용광로처럼 뜨겁다. 모로칸들은 머리엔 터번을 쓰고 젤라바라 부르는 긴 가운 같은 것을 입는데, 패션이라기보다는 이곳의 기후에 최적화된 의상이다. 어느 나라의 패션이든 그렇게 입고 다니는 이유가 다 있다. 사막에서 하는 스카프는 장식용이 아닌 것이다. 모래바람을 막아주고, 살을 몽땅 태워버릴 듯한 50℃의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주는 필수품 중의 필수품이다.

 

사막 중의 사막, 사하라!

사막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붉은 모래사막을 떠올리지만 흰색과 핑크색의 소금사막부터 잡초가 자라는 사비나 사막, 이집트의 흑사막과 백사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사막이 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사막 중 사하라(Sahara)만 한 게 있을까. ‘사흐라(Sahra, 불모지)’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사하라는 사막 중 가장 규모가 큰 사막으로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를 비롯해 북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 걸쳐 있다. 바람이 부는 대로 끝없이 굴곡을 달리하는 사하라의 듄(Dune, 모래언덕)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막의 이미지는 바로 사하라다. 낮 동안 달궈진 사막은 걸어 다니기가 힘들지만 이른 아침의 사막은 밤 동안 식어 맨발로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이때 발끝에 느껴지는 시원한 감촉은 두고두고 기억될 만큼 감미롭다. 인간의 기억 중 가장 오래가는 감각이 촉각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된다. 해가 지자 사막은 변화무쌍하게 변했고 곧 밤이 찾아왔다. 모로코 전통의상 젤라바를 두른 사막 캠프 주인 하산과 운전기사는 음악을 크게 틀더니 “밥 먹으러들 내려와~” 하며 손짓했다. 언제나 유쾌한 모로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 짓게 하는 매력덩어리들이다.

 

 

별이 쏟아지는 사막에서 즐기는 야영

사막 야영을 갈 때는 운전사와 요리사가 함께 간다. 일행이 사막을 보며 광분하는 동안 그들은 텐트를 치고, 저녁식사와 잠자리를 마련한다. 사하라 사막의 밤, 전갈이 있다 해서 높은 매트리스를 깔았다. 무수한 별이 쏟아지는 하늘이 지붕이다. 새벽 무렵 사막을 덮어버릴 듯 쏟아져 내리던 별들. 그 향연을 잊을 수 없다. 낮 동안 뜨겁게 달궈졌던 모래 위에 발을 얹어본다.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어 밤새 식어버린 곱디고운 사하라 사막의 모래 위를 맨발로 걸어 아름다운 듄에 호젓하게 올라본다. 최고의 명상이란 바로 이 순간이 아닐까. 고요함 속에서 붉은색 모래 평원을 보니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린 듯하다. 가늘고 긴 모래가 발가락 사이를 간질인다.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달콤한 오르가슴이다. 겹겹이 쌓인 산맥처럼 듄과 듄 사이를 너머 시야를 넓히니 멀리서 부지런한 이탈리아 친구가 벌써 산책 중이다. 모래 위에서 잠을 자던 운전기사 모하메드와 요리사 알리도 어느새 일어나 메카를 향해 절을 올리고 있다.

 

검은 옷의 카스바 여인!

사막을 나와 낙타를 타고 카스바 마을을 지나는데 단체로 어디를 다녀오는지 검은 옷을 입은 카스바 여인들이 지나간다. “살람 알레이쿰(당신에게 알라의 평화를)!” 하고 인사를 하니 “봉주르~” 하고 답한다.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등은 오랫동안 프랑스 식민지였던 탓에 프랑스어를 공용어처럼 사용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모로코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에사우이라 등지에 별장을 사두고 바캉스 시즌이 오면 차를 몰고 온 가족이 내려와 한 달간 머물다 돌아가곤한다. 사막에서 돌아온 밤, 숙소에서 생존을 축하하며(?) 하산이 열어준 모로칸식 전통공연을 관람했다. 마치 현실의 시간이 아닌 듯 몽롱했다. “별밤에 더워서 잠도 안 오는데, 이렇게 공연을 보며 놀지 뭐.” 멋쟁이 프랑스 언니 오빠는 흥에 겨운 듯 덩실덩실 춤을 춘다. 그렇게 아름다운 밤이 꿈결처럼 흘러갔다.

 

·사진 이화자 68hjlee@hanmail.net (‘비긴어게인여행’, ‘여행처방전’, ‘여행에 미치다’ 저자)  bravo_l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