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도 길이 있다

 

 

 

 

사진 작업을 하며 나는 종종 프랑스의 곤충학자 파브르(1823~1915)를 떠올린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를 찾는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1897년에 <곤충기> 시리즈가 세상에 나왔을 때, 이 책의 독자는 과학자에 국한되지 않았다. 수많은 독자를 확보한 이 책은 과학서의 범위를 뛰어넘어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파브르는 집요한 관찰을 통해서, 곁에 있지만 우리가 모르고 지내던 세계를 보여주었다.

 

나도 누구도 상상 못했을 세계를 찾아다닌다.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도구는 자그마한 ‘어둠상자’다. 사람들이 카메라라고 부르는 그것에 빛이 모이고 숨어 있던 아름다운 상(像)이 맺히자, 나는 그 모습들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마치 파브르가 곤충들을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던 것처럼.

어둠상자는 현대의 발명품이 아니다. 우리 짐작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어두운 벽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들어온 빛이 반대편 벽에 밖의 사물을 비춘다.”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50년

 

“작은 구멍으로 통한 빛은 거꾸로 벽에 비친다.” -동양의 책자, 기원전 1500년

 

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 Volume 4, Physics and Physical Technology, Part 1, Physics. Taipei: Caves Books Ltd. Page 82. - Needham, Joseph.

 

사람들이 일부러 연구하고 공부해서 어둠상자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우연처럼, 운명처럼 어느 날 갑자기 마주치게 된다. 그 운명이 나에게는 1960년 봄에 찾아왔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학교 가는 길에 문방구 앞 구멍가게 안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멍가게의 양철 덧문에 난 못 구멍을 뚫고, 한 줄기 빛이 꽂혀 들어오고 있었다.

 

그 빛은 내 등 뒤의 회벽에 위아래가 바뀐 상을 만들어냈다. 사운드까지 또박또박 들리는 동영상 컬러였다. 다만 소리는 오른편으로 지나갔는데 영상은 그 반대였다. 방향이 엇갈렸다. 뾰족구두를 신고 또박또박 걷는 빨간 원피스는 내 기억 깊숙이 저장되었다. 단순한 저장이 아니었다. 각인이었다. 결국 삼십 년이 지나서, 그 빛이 내 삶에 새 길을 열어주었다. 마흔을 넘은 나를 카메라에게 인도해준 것이다.

 

서양에서 어둠상자를 ‘카메라 옵스쿠라’라고 명명했다. 어두운 방의 지붕이나 벽 등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 반대쪽의 하얀 벽이나 막에 옥외의 실상을 거꾸로 담아내는 장치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이 그 속이 칠흑같이 어두운 방이라 해서 ‘칠실파려안(漆室坡黎眼)’이라 불렀다. 카메라를 만나기 전의 내 인생이 바로 그랬던 것 같다. 겉은 멀쩡했지만 속은 깜깜했으니까.

 

사진은 사실 허상이다. 현실 세계의 그림자, 또는 바늘구멍이 만들어내는 일루전(illusion), 환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로 사람을 변화시키기에 힘이 있다. 아름다운 사진에 즐거워하고, 세상의 그늘진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사진 한 장에 눈물 흘리며, 마음을 열기도 한다.

 

이처럼 허상을 가지고 실체인 세상과 사람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사진은 예술로서의 덕목을 지녔다. 이것이 사진의 가치이자, 내가 사진을 하는 이유다. 보통 카메라는 보이는 그대로의 현실을 필름에 찍어내지만, 나의 작업은 그 이미지 뒤에 있는 다차원의 현실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빛을 통해 사람을 움직이는 길이 사진에 있다. 나는 그런 점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즉 인문학의 한 길이 사진에도 있는 것이다.

 

파브르가 눈에 잘 보이지 않았던 곤충의 세계를 탐험한 것처럼, 나는 사람들이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를 카메라 렌즈를 통해 찾아 나서게 하고 싶다. 굳이 산이나 위험한 곳, 신비로운 장소를 찾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우리 주위의 익숙함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요즘같이 카메라가 필수품이 된 시대에, 기계적으로 사진을 찍기보다 자기 주변에 있는 아름다움을 찾는 도구로 카메라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카메라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이 열리고 또 다른 눈을 뜨기 바라는 꿈이 내게 있다.

 

 

 

함철훈(咸喆勳)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