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엔 늘 가벼워저야
6월이면 으레 옷장을 정리한다. 겨울옷과 여름옷을 바꿔 넣고 내친김에 잡동사니들도 버리느라 대청소로 접어들곤 한다.
올해도 손쉬운 서랍장부터 열어 본다. 재킷 속에 받쳐 입었던 목 긴 스웨터와 짧은 소매 스웨터가 엉켜 있다. 원래 계절이 바뀔 즈음엔 서랍 속 내용물이 엉키기 마련이다. 가끔은 계절을 거스르는 날씨 탓이다.
중년을 넘어서면 점점 어울리는 옷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배에 군살이 늘어나서 티셔츠 밖으로 살이 툭툭 튀어나와 더워 보이기 일쑤다. ‘유행은 지났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색이라, 어울리지 않아 몇 번 못 입었지만 비싸게 산 것이라’ 등 버릴 수 없는 이유가 달라붙은 채로 몇 번의 계절을 왔다 갔다 했다. 그래도 모진 맘 먹고 대부분 포기하기로 했다.
서랍장의 판결이 끝나면 키 큰 옷장에서 코트와 트렌치 코트, 원피스, 긴 바지, 긴 치마를 꺼내 한쪽 횃대에 뭉텅뭉텅 건다. 이번엔 크기가 큰 옷이니 좀 더 신중히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나중에 다시 찾으며 버린 걸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 대목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일단 찻물부터 끓인다. 향긋한 커피를 내리고 신선한 우유를 부으며 커피를 만든 뒤 최대한 천천히 마시며 눈으로는 횃대에 널린 덩치 큰 옷들을 관찰한다. 그 옷이 적절한 용도인가, 내가 입은 모양새는 어떤가, 유행을 너무 타서 흔해지지 않았나, 너무 낡지는 않았는가 등을 살펴본다.
이제 변호사와 검사는 실용과 추억과 감성에 호소하는 변설을 늘어놓는다. 흰색과 진회색이 섞인 플레어 코트. 수입매장에서 언니는 검은색 슈트를 샀고 나는 이 코트를 입고 아주 기뻐했다. 나와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 안에 앵두색 재킷을 입고 거래처를 많이 돌아다녔었다. 실적이 좋은 호시절을 함께 보냈던 옷이다. 지금도 그 옷을 입으면 능력 있는 여성의 표정으로 변한다. 복고풍 코트라고 아이들은 무성영화 보는 것 같다고 장난도 친다. 그래도 다시 옷장으로 넣는다.
이제 긴 치마가 나온다. 옆이 터져서 우아하고 관능적인 모양새다. 조끼와 한 벌인데 조끼는 종종 입어도 치마는 손 놓은 지 3년은 됐다. 허리가 굵어져 살 빼고 입는다며 다시 넣곤 했지만 그 살은 영영 안 빠지고 있다.
마지막은 스카프 서랍 차례다. 서랍엔 붉은색과 검은색, 흰색이 멋지게 조화를 이룬, 부드러운 사각 스카프가 있다.
신혼 시절 철없던 우리는 별것 아닌 거로 서로 잘 삐치고 화해하고 요구하는 경우가 참 많았다. 웃을 때 마주 보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고, 돌아누워 잔다고 섭섭해 하고…. 행복과 불행이 같은 공간에서 숨 가쁘게 출렁거렸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은 출장에서 나의 삐침에 대한 보상으로 이 고급스러운 스카프를 예쁘게 포장해서 들고 왔다. 난 너무 기뻐서 그의 목에 매달리며 감사를 10번도 더 했다. 그리고 귀한 자리마다 보물 목록 1호로 함께했었다.
이제 남편은 가고 없다. 그의 빈자리에서 스카프가 미소를 보낸다. 안녕!
하지만 이 스카프, 유행을 놓쳐도 한참 놓쳤다. 그래서 수 놓듯 깃든 추억을 털어내며 과감히 바구니에 던진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돌아보며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와 울컥한다. 젊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얼마나 예쁜 것인지,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인지 몰랐다.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가늠해 본다. 이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다.
옷을 정리하면서 문득 든 생각. 그것은 바로 ‘가볍게’다. 가벼운 것은 부양할 수 있다. 천사는 가벼워 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글 이경숙 동년기자 bravopress@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