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치마 흩날리며 핑크빛 사랑 나누는, 개정향풀

 

 

 

 

‘나이가 들수록 봄이 좋아진다’고 입버릇처럼 되뇌던 옛 어른들을 기억하게 하려는 듯 ‘모든 게 파릇파릇 새롭게 시작되는 봄이 좋다. 아지랑이 아스라하게 피어오르는 봄이 좋다’고 말하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세대들을 갈수록 많이 만나게 됩니다. 생동하는 봄의 기운이 나이 든 세대에겐 삶의 기력을 되찾아 주는 효과가 있는 게 확실한가 봅니다. 그렇다고 연분홍 치마 흩날리며 가는 봄날을 한사코 붙잡아 둘 도리는 없고 그저 가는 세월을, 덧없이 가버린 봄날을 아쉬워하는 6월입니다. 그렇듯 가버린 봄날이 더없이 그리워지는 때 연분홍 봄날의 환희를 다시금 안겨주는 야생화가 있습니다. 바로 ‘개정향풀’입니다. ‘청춘의 연분홍 사랑이여 다시 한 번’이라고 외치고 싶은 이들에게 서·남해 바닷가를 찾아가 보라 권합니다. 가서 온 벌판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는 개정향풀을 만나 눈 깜박할 새 사라져버린 봄날의 생동감을 다시 한 번 느껴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개정향풀은 크게는 어른 키만큼 자라며 나팔 모양의 손톱만 한 연분홍 꽃이 고깔 형태로 다닥다닥 피는데, 많은 개체가 무리 지어 자생합니다. 10여 년 전 개정향풀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 일본인 학자가 표본을 남긴 이후 잊혔다가 민간 환경단체 회원들에 의해 90여 년 만에 다시 발견됐다고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이지요. 그 후 서·남해안 여러 곳에도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사라진 게 아니라 저 홀로 피고 지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는 게 정답이겠지요.

 

 

 

 

그렇듯 큰 키에 비해 꽃은 자잘하기에, 잘 살피지 않으면 개정향풀 꽃의 진가를 알아채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이름 앞에 붙은 ‘개’는 큰 키와 꽃 모양이 전남 완도와 인천 광역시 대청도 등 서해 섬의 산지에 자생하는, 같은 협죽도과의 정향풀[사진]을 닮은 풀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아예 ‘갯정향풀’로 불린다고 하는 걸 보면 얕잡아 부르는 개(犬)가 아니라, ‘갯가’ 식물이라는 뜻의 ‘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꽃 색은 정향풀은 하늘색, 개정향풀은 연분홍색입니다. 작약이나 투구꽃처럼 오각형 뿔 모양의 씨방이 농익으면 터져 씨가 여기저기로 날려 번식합니다.

 

 

Where is it?

 

 

 

 

도감에 따르면 중부 이북에 자생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서·남해안 섬에서 만났다는 사람들이 더 많다. 오래전 식물학자들이 표본을 채집했다는 충북 단양 경기도 여주, 평택 등 내륙에선 현재 자생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기도 화성의 작은 섬 선감도와 안산 시화공단 인근 둔치에서 제법 풍성한 군락을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전남 신안 압해도와 강원 삼척, 경북 영덕 등 전국에서 자생지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경기도 화성의 경우 선감어촌체험마을 초입 수만 평의 논 사이에 작은 수로가 지나고, 그 수로변 100여m 구간에 어른 가슴까지 차오르는 개정향풀 군락지가 있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