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두'는 함께 꿈을 꿉니다
50+인생학교 1기생들이 만든 커뮤니티 '두두'
미국의 국민화가로 알려진 모지스 할머니(GRANMA MOSES 1860 - 1961)는 70대 후반의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시골 아낙으로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남편을 여윈 후 몸의 여기저기가 지병으로 힘든 시기에 붓을 잡은 것이다. 그 전에는 뜨개질로 소일을 했다고 한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워 본 적이 없지만 모지스 할머니는 자신과 마을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자연의 모습을 소담스럽고 따뜻한 필치로 화폭에 담았다. 세상은 할머니의 그림에 주목을 하게 되었고 5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그림은 미국을 넘어 유럽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949년 트루먼 대통령은 그에게 여성프레스클럽상을 주었다. 1960년 뉴욕주는 그의 생일을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선포하기까지 했다. 모지스 할머니는 101세로 세상과 이별하는 날까지 붓을 놓지 않고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할머니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당신의 나이가 80이라 하더라도요."
▲ 모지스 할머니와 그의 그림 「시럽 만들기」
모지스 할머니의 개인적인 노력과 성취는 실로 대단하다. 칭송 받아 마땅하다. 나이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라는 말도 자못 감동적이다. 한 세기 전의 사람이지만 이른바 고령화 사회 혹은 백세시대라는 요즈음의 우리 사회의 경우에도 모범적인 사례이자 교훈으로 딱 들어맞는다. 그래서 이런 성공담을 들을 때 우리는 몹시 부러워진다. 동시에 은근히 부담스럽거나 거북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학창 시절 '공부가 제일 쉬웠다'는 어느 모범 장학생의 말을 들을 때처럼 상대적인 거리감이나 절망감이 증폭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누구나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현실적인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그럴 때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꿈을 모색하기도 한다. 집단의 지혜는 종종 개인적 지혜의 산술적 합계를 뛰어넘는 시너지를 창출하기 때문일 것이다.
2018년 8월 14일, 오후 중부캠퍼스 모임방에서는 커뮤니티 '두두'의 회합이 있었다. 두두는 '두레 두리번'의 약칭으로 50+인생학교 1기 동기생 10여 명이 모여 작년 6월에 결성하였다. 사회적 경제 활동과 관련 사업을 연구하는 모임이다.
이 날 모임에서는 올 9월 협동조합 설립이라는 목표를 앞두고 진척 상황에 대한 공유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점검이 있었다. 지난 일 년간의 연구를 집약시켜 실제 사업으로의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는 터라 분위기는 고조되어 있는 듯 했다. 두두의 리더인 이귀보님의 사업 진행에 대한 전체적인 모두 설명을 통해 그동안 조합 설립 진행에 상당한 진척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세부 실천 방안에 대한 논의와 검토에 들어가자 회원들의 찬성과 반대, 낙관과 비관의 의견 제시는 예정된 모임 시간을 넘겨가면서 팽팽하게 이어졌다. 설립뿐만 아니라 설립 이후 조합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넘어서야 할 문제들이 여전히 많아 보였다.
그래도 시종 회의는 밝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진지한 토론 속에서도 간간히 서로의 격의 없는 농담이 오고 갔다. 회원들은 리더인 이귀보님의 '수평적 리더십'으로 공을 돌렸고, 리더는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엄지를 세웠다. 기자는 그런 덕담들이 오글거리는 자화자찬이 아니라, 회원 간의 끈끈한 인간적 유대감과 친화력의 표시라는 걸 2시간 넘는 회의 시간 내내 느낄 수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남달라 보이는 두두의 결속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물었다. 모두 일 년 전 참여했던 50+인생학교를 꼽았다. 그곳에서의 경험이 각자의 삶에 가져다 준 의미와 변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A회원 : "경단녀였던 저에게 인생학교가 가정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사회 관계망으로의 재진입을 시켜준 마중물 같은 의미였어요."
B회원 : "사회생활을 지속해왔던 저로서는 늘 젊은 친구들과도 자유롭게 어울리며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인생학교는 그런 곳에서는 받을 수 없는 어떤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시공간이었어요."
C회원 : "내 자신을 위해 산다는 것이 혼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도 할 수 있다는 걸 인생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친구와는 다른 의미의 '동지적' 연대감을 느꼈고, 내 자신에게서 사회로 나의 역할이 확장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학교라는 우연은 회원들을 '두두'라는 필연으로 변화시켰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자체로 두두는 협동조합의 설립과 운영이라는 현실적 과제의 달성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하나의 성공을 이루었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모든 존재의 목표가 행복이라고 할 때, 모지스 할머니 같은 비범함이나 커다란 성취만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저마다 처한 상황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어울려 관계를 나누고 소소한 공동의 목표를 세워 매진하는 과정도 그에 비견할만한 가치 있는 행복일 것이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9월 초에 개강하는 인생학교 4기에 기자가 참여하여 후배가 되기를 강권했다.
모임을 끝내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문득 빼먹은 게 생각나 리더인 이귀보님에게 문자로 질문을 보냈다.
"두두, 즉 두레 두리번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요?"
금세 답이 들어왔다.
"함께 호기심으로 세상을 두리번거리며 좋은 기운을 퍼뜨리자."
기자는 '함께'라는 단어에 주목하며, 두두의 새로운 꿈이 반드시 '두두하기'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