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백운대 정상에서 잠시 쉬어가기
산에 오르며 궁금했다. 사람들은 왜 산에 오를까?
산에 오르는 이유가 궁금해졌고, 올바른 등산은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았다.
최초의 등산은 어디서 누가 시작했을까?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아직 산의 아름다움을 몰랐다. 르네상스 시대가 돼서야 신앙이 바탕이 돼 교회를 짓기 위해 1358년 아스티의 로탈리오가 로쉬멜론(3,537m)에 오른 것이 알프스-히말라야의 최초 등산기록으로 남아있다. 이후 사람들은 산 정상에서 미사를 드리거나, 화약의 원료인 황을 채취하기 위해 산을 계속 오르내렸다.
▲몽블랑(Mont Blanc)
그렇다면 수단으로의 등산이 아니라, 산을 오르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인 첫 '등산'은 언제일까?
1786년, 프랑스의 파카르와 발마가 밧줄도 없이 땅이 갈라진 틈 '크레바스'를 건너며 알프스 몽블랑에 도전했다. 두 사람은 먹을 것이 떨어지고 수면부족, 동상, 고산병에 시달렸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파카르와 발마가 몽블랑 꼭대기(4,807m)를 정복하며 본격적인 알프스 봉우리에 대한 피크헌팅(Peak Hunting)이 이루어져 1865년 에드워드 엄퍼의 마터호른(Matterhorn 4,477m) 초등까지 이어졌다. 이후 알프스에서 더 이상의 초등지가 없어지자 '등로주의' 등반 사조가 나타났다. 정상 등정만을 최대 목표로 하는 것이 '등정주의'라면, 등로주의는 어떤 방식, 어떤 길로 오르는지 스스로 판단·선택하며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중시하는 것이다.
▲마터호른(Matterhorn)
이처럼 등산은 알프스에서 시작되었고, 등산을 가리키는 '알피니즘'이란 알프스에서 따온 말이다. 알피니즘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발전해 왔다. 때로는 등정 자체(등정주의 : 정상에 오르는 것)를, 또는 등반 과정(등로주의 : 정상을 오르는 과정)을 중요시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등로주의는 단순히 루트(route)가 아니라 방법(way)의 의미로 자신만의 방법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높이에 따른 정상정복을 추구하기 보다는, 정상에 오르는데 자신만의 방법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적응, 극복, 포기, 순응의 과정을 이겨내는 정신을 담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과 비슷하다.
▲백운대 정상의 줄
나는 시간이 허락할 때 마다, 또는 머릿속에 무언가 들어와 나를 재촉할 때 텀블러에 커피를 내리고, 물 한 병을 들고 북한산으로 향했다. 1월부터 오르기 시작한 산은 정상을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겨울 산을 지나 초봄이 되어서야 정상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나는 항상 빨리 올라가는 가파른 코스를 선택했고 정신없이 정상을 향해 걸었다. 구파발 버스종점에서부터 백운대 정상까지 올랐다가 내려오는 시간을 재었고, 그 다음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더 열심히 산을 올랐다. 그리고 그 보상을 기록이라도 하듯이 백운대 정상에 걸려있는 태극기와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남들처럼 긴 줄을 감내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바라보더니 친구와 바위에 대자로 늘어져 뒹굴뒹굴 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고양이를 따라가 옆에 살짝 앉았다. 등산객들의 접근이 익숙한지 고양이들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옆에서 함께 고양이를 보시던 분이 관악산 정상에도 고양이가 있는데 북한산 고양이가 더 편해 보인다며 아마 이곳이 좀 더 살기 좋은 것 같다는 말을 건넸다. 그 말에 편안한 모습의 고양이를 찍어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백운대 정상에서 노니는 고양이의 모습에서 그동안 내가 느끼지 못한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백운대 정상의 고양이들
이후 나의 산행은 달라졌다. 북한산의 다양한 모습을 천천히 느끼고 살펴보며 알아가야 할 시간이 필요했다. 백운대를 오르는 코스는 무척 다양했다. 우이동에서 도선사를 지나는 8km 코스와 창의문과 세검정에서 오르는 약 12km 코스, 정릉에서 오르는 약 10km 코스 등이 있으며, 그밖에도 계곡과 능선을 따라 여러 방면으로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성과주의 시대를 살아오며 과정보다는 결과를 최우선의 목표로 살아온 나에게 길은 단 하나였다. 빠르지만 험난한 길. 다른 길로 돌아갈 여유가 없었다. 묵묵히 정상에 오르면 지체 없이 하산해야 했다. 인생과 등산의 모습은 무섭게도 닮아있었다.
▲백운대 정상의 풍경
이제 나는 가파른 코스보다 완만한 코스를 선택해서 쉬엄쉬엄 오른다. 경치를 보고, 물에 발을 담그고 놀기도 한다. 절에서 내어주는 떡도 받아 먹어가며 천천히 오른다. 어느 날은 바람에 향기가 더해져 코를 뻥하고 뚫어주기도 하고, 어느 날은 땀을 뻘뻘 흘려 속옷이 다 젖었을 때 어디선가 살얼음 섞인 바람에 시원함을 느끼기도 하며, 언젠가는 너무 축축한 바람에 괴로울 때도 있다. 산을 오르며 들리는 새소리 또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아름다운 새소리를 만날 때면 걸음을 멈추고 눈을 지그시 감고 그 소리를 조용히 들어본다.
요즈음 산에 가는 즐거움이 훨씬 많아졌다. 전에는 백운대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숨이 차오르고 힘이 들었지만, 지금은 정상에 가까워지는 한걸음 한걸음이 아쉽다. 정상에 오르면 고양이처럼 시원한 바람과 함께 뒹굴뒹굴 정상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낸다. 산 정상에 올라 조용히 바람을 느끼고, 냄새를 맡고, 고양이처럼 늘어져 하늘을 보자. 바쁜 일상을 잊고, 나만의 길로 오른 백운대에서 잠시 쉬었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