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는 우리나라 국민의 2015년 암의 발생률과 생존율, 유병률에 관한 통계를 발표했다.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은 폐암으로 나타났다. 폐암과 위암, 대장암 순서였는데, 폐암은 10만 명당 발생자 수가 2위인 위암에 비해 11%가 높은 253.7명을 기록했다. 여러 가지 암종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지만, 시니어에게 가장 무서운 암으로 전문의들이 ‘폐암’을 지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폐암이 고령층에게 골칫거리인 이유는 뭘까.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김주상(金周祥·46) 교수를 통해 들어봤다.
“시니어에게 폐암이 잘 생기는 이유는 ‘시간’ 때문입니다.”
고령층에 폐암이 자주 발병하는 이유를 묻자 김주상 교수는 “시간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기자의 짧은 지식으로 예상한 답변과는 달랐다. 담배나 환경오염 등이 원인으로 지목될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물론 흡연이나 오염물질도 원인으로 작용하죠. 과거에는 이런 오염물질이 영향을 줄 거라는 추측만 있었을 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알지 못했어요. 연구가 계속 되면서 이런 것들이 왜 폐암을 일으키는지 밝혀지고 있거든요.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알아낸 것은 장기간 폐가 독성물질과 접촉 하면서 DNA에 돌연변이가 유발된다는 것 이에요. 시간이 문제였던 것이죠. 다른 암에 비해 발병하기까지 오래 걸리기 때문에 노인들에게 발병이 많습니다. 또 그간 다른 사망 원인으로 작용했던 질환들이 조금씩 정복되면서 폐암이 두드러져 보이는 현상도 작용을 했고요.”
김 교수에 따르면, 실제로 한 국가에서 담배 매출이 정점을 찍고 난 후 30년이 지나면 폐암환자 증가가 최고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고 한다. 이 이론을 국내에 적용하면 폐암 환자의 증가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김 교수는 예측했다.
비흡연 여성도 안심할 수 없어
흡연이 폐암의 가장 큰 원인이지만, 금연을 했다고 해서, 비흡연자라고 해서 안심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여성도 안심 할 수 없다. 폐암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비소세포폐암 일부 종류는 여성에게 잘 나타나는 병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여성에게서 암이 발견되는 이유도 시간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담배 이외의 독성물질에 오래 노출되었을 것이라는 이론이죠. 아궁이에서 나는 연기나 요리할 때 발생되는 물질들이 원인으로 의심받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아시아 여성에게서 발생하는 폐암 중 선암은 표적항암제 효과가 좋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EGFR 표적항암제가 대표적이다. 유전자의 특성에 따라 약효가 달라지지만 암 환자들에게는 희망이 아닐 수 없다. 표적항암제의 경우 월 1000만 원이 넘는 비싼 약값이 문제였지만, 최근 2세대 폐암 표적항암제까지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되면서 월 30만 원 내외로 줄어 환자 부담이 낮아졌다.
최근 문제로 지적되는 미세먼지도 폐암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인과관계를 정확히 밝히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미세먼지에는 화합물 등 폐암 유발인자가 섞여 있어요. 주거지역을 옮기지 못하면 가끔 청정지역에 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도 폐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폐암이 가장 무서운 암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는 낮은 생존율에 있다. 국가암등록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1년에서 2015년 사이에 폐암 환자의 생존율은 26%. 10대 암 중 췌장암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물론 1993년에서 1995년 사이에 조사된 11.3%보다는 비약적으로 향상된 숫자 이지만, 위암(75.4%)이나 유방암(92.3%), 전립선암(94.1%)에 비하면 심각하게 낮은 수치다.
사망까지 1년밖에 안 걸리는 폐암도 있어
김 교수는 폐암의 문제점은 조기 발견이 어렵고, 증상이 나타나서 발견된 경우에는 이미 손쓰기 힘들 정도로 병이 진행되어 있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폐암 중 소세포폐암이 더 심각합니다. 성장이 아주 빨라요. 보통 CT나 엑스레이와 같은 진단 장비로 확인 가능할 정도까지 성장하는 데 3개월밖에 안 걸립니다. 그 전까지는 발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죠. 이후 발견 가능한 시점부터 다른 장기로 전이될 정도로 성장하는 데도 3개월밖에 안 걸립니다. 그러니까 수술로 치료 가능 한 시기(1기~2기)가 3개월 정도밖에 주어 지지 않는 거예요. 이 시기를 놓치면 방사선 치료나 항암제를 사용하는데 완치가 매우 어렵습니다.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발생에서 사망까지 1년밖에 걸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폐암의 자각증상으로 기침이나 객혈, 흉통, 호흡곤란을 이야기한다. 간혹 폐의 가장 꼭대기 쪽에 암이 발생하면 어깨에 통증이 오기도 한다. 오십견 등 일반적인 관절 질환으로 오해하다 치료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어깨에 문제가 없다는 진단이 내려졌는데도 통증이 계속된다면 가슴 엑스레이를 찍어볼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자각증상을 느끼고 병원을 방문할 때는 이미 수술이 불가능한 3기 이후의 시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조기 발견을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이가 쉬운 것도 문제다. 폐암은 주변 장기로 쉽게 전이가 되는데 그 중 치료가 어려운 뇌나 뼈에 전이가 되면 심각한 결과로 이어진다. 뇌에 전이가 되면 의식에 문제가 생겨 정상생활이 어려워지고, 척추 등에 암이 발생하면 신경에까지 영향을 줘 하반신 마비 등이 오기도 한다. 뼈에 발생한 암으로 인한 가장 심각한 상황은 골절이다. 암세포가 자리 잡은 상태에서 골절이 일어나면 뼈가 붙지 않는다. 정상세포가 아닌 까닭이다. 이런 증상들은 환자 삶의 질을 극도로 악화시킨다.
고령자는 1년에 한 번씩 검사받아야
반면 조기발견이 이뤄진다면 예후는 희망적이다. 최근에는 건강상태가 좋으면 90세 이상의 고령에도 수술이 가능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김 교수는 강조한다.
“제 환자 중에 96세에 폐암수술을 받고 백순 잔치까지 하신 환자분도 있어요. 우리 국민은 대부분 병원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사니까 이상이 느껴지면 바로 병원을 방문하실 것을 권하고 싶어요.”
폐암을 진단하는 방법으로 가장 권장되는 것은 저선량 CT다. 컴퓨터 단층촬영 장비 중 환자에게 노출되는 방사선량을 최소화한 장치다. 노출을 최소화해 방사선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고안됐다.
하지만 이것도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학계에선 55세 이상 인구 중 30년 이상 매일 담배 한 갑을 피운 ‘고위험군’에게 우선적으로 매년 촬영을 해보길 권하고 있다. 그만큼 이들의 폐암 발병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고위험군이 아니더라도 고령자라면 1년에 한 번 저선량 CT나 엑스레이 촬영을 통한 검진을 해볼 것을 권했다. 위암을 발견하기 위한 위내시경, 대장암을 찾기 위한 대장내시경처럼 국가 암 조기검진 사업에 저선량 CT를 통한 폐암 검진을 포함시킬지의 여부는 아직 고려 중이다. 폐암에 관한 연구는 긴 시간을 요구하는 특성이 있다.
나이 들면 폐 이상 증상에 예민해져야
폐와 관련한 질환 중 시니어에게 심각한 게 폐암만 있는 건 아니다. 지난해 1월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세계 10대 사망원인에 폐 관련 질환만 4가지가 꼽혔다. 폐암, 폐렴, 결핵, 만성폐쇄성폐질환이 그것이다.
김 교수는 “나이가 들어 호흡기 질환이 쉽게 심각해지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면역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벼운 감기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엑스레이를 자주 찍어봐야 합니다.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큰 병이 되는 걸 막아야 합니다. 검사 과정에서 폐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행운(?)은 종종 있습니다.”
그 외 건강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 교수는 잘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암 환자 중 생약 성분이 포함된 음식을 드시는 분이 있는데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 체력이 더 떨어지는 원인이 됩니다. 차라리 그 돈으로 평소에 사먹지 못한 유기농 제품이나 자연산 식재료로 음식을 해드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무리하게 야채만 먹게 되면 장염을 유발해 되레 건강이 나빠질 수 있습니다. 고기는 적정량 먹어주면 좋습니다. 간혹 좋은 공기 찾아 산속으로 들어가시는 경우도 있는데, 병원과의 접근성이 떨어지면 상태가 악화될 수도 있어요.”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