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같은 부부 “아직 끌어안고 자요”
인간과 인간이 만나 기품 있는 가정을 꾸리는 것은 어떤 예술보다 아름답고 귀한 일이다.
부부가 나누는 대화나 작은 감정표현에서도 우리는 기품을 느낀다. 괴테도 “결혼생활은 모든 문화의 시작이며 정상(頂上)이다. 그것은 난폭한 자를 온화하게 하고, 교양이 높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 온정을 증명하는 최상의 기회다”라고 말했다. 이혼은 절대로 용납 못해 졸혼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이혼했지만 다시 만나 사는 부부도 있다.
부부란 참 신기한 관계인 것이다. 여기 부부의 삶을 기품 있게 잘 이어온, 나이가 들어도 아직 끌어안고 잔다는 이강추(82) 성정수(77) 부부가 있다. 이강추씨는 극구 고사해서 아내 성정수씨만 만났다.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한 성정수(77)씨가 50년 잘 사는 부부의 비결을 털어놨다.
50년이 다 되도록 금실 좋은 부부로 잘 살 수 있었던 비결은?
처음부터 좋은 금실은 아니었고요. 초기에는 힘겨루기도 했지요. 그랬더니 나만 힘든 거예요. 남편은 끄떡도 않는데…. “문제가 뭐지?” 하며 공부를 했고 대화 방법을 알아갔어요. 차츰 서로의 강점과 취약점을 알게 되었죠. 그것도 구체적으로요. 그 점을 늘 염두에 두고 갈등이 있어도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되도록 애썼지요. 주로 내가 먼저요. 그러면 남편도 어느새 스르르 풀렸고.
두 분 성격은 어떻게 다른가요?
남편은 흔히 말하는 모범생으로, 세상의 소금 같은 형이죠. 성실 근면하고 규범과 원칙을 중시해요. 그만큼 책임감은 높지만 새콤달콤 시원한 맛은 없어요. 무덤덤한 편입니다. 반면 나는 열정적이고 상황 적응력과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이 뛰어나요. 인간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을 보면 그냥 못 지나가요. 사람들과 나누어야 할 일들이 많아 늘 분주하죠.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을 텐데 싸우지 않나요?
서로의 시간을 존중합니다. 각각 자기 할 일, 즉 컴퓨터, 독서, 글쓰기에 몰두하면서 두세 시간씩 보내기도 합니다. 마주하는 시간에는 교회활동이나 사회문제 등 각자가 보고 들은 것을 서로에게 얘기해주며 소감과 의견을 나눠요. 얘깃거리가 많아 싸울 시간이 별로 없어요.
자식농사 잘된 것, 누구의 공입니까?
우리 부부의 공동 합작입니다. 서로의 좋은 점을 닮았으면 했고, 서로가 완충지대 역할을 했어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모습은 남편의 영향이지만, 진로에 어려움이 있을 때 아들이 원하는 길을 과감하게 허용, 해결이 되도록 도운 것은 나의 자녀교육 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봐요. 아들 둘이 남편에게서는 볼 수 없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요. 남편은 날 닮았다 하면서 늘 부러워하는 편이죠. 큰아들은 글로, 둘째는 음악으로 표현하는 재주가 있답니다.
50년씩이나 끌어안고 살 수 있는 진짜 힘은 무엇일까요?
남편이 소록도 병원 근무 기회가 주어졌을 때, 천주교 신자로서 교회활동뿐 아니라 남편의 직장 일에도 관심을 갖고 비서로 수렴청정(?)까지 했어요. 문제가 생기면 늘 같이 의논하고 해답을 찾았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만나면 대화를 하다 보니 얘깃거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어요.
가정일은 손실과 실패가 있어도 탓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우리는 ME부부(Marriage Encounter, 부부일치운동) 회원으로서 ‘결정은 부부가 함께’를 실천해왔어요. 매일 밤 부부의 기도를 합니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못 살 때나 잘 살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게 하라.” 성당에서 혼인할 때 한 서약 내용을 읊조리죠. 천주교의 신앙생활이 부부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장영희 동년기자(우측)와.
그래도 남편이 미울 때가 있죠?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높일 때죠. 대개 가치지향적 문제에 견해가 엇갈릴 때예요. 그러나 그런 상황은 잠깐이고, 서로 팽팽히 맞서다가 우리와 직접 관계가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감정이 오래가지는 않아요.
남편이 미울 때는 어떻게 해결하나요?
나도 약점, 잘못한 것 있는데 ‘저 사람만 탓할 수 있나’ 양심에 호소하고, 마음을 내려놓으면 미운 감정이 눈 녹듯 녹습니다(웃음).
배우자에 대한 측은지심은 언제 생기나요?
장례미사에서 떠나는 이를 보거나 내가 건강이 좋지 않을 때죠. 먼저 세상을 뜰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혼자 남아 있을 남편이 걱정되고, 그 외로움이 헤아려져 측은한 마음이 들어요.
이혼을 생각한 적 있나요?
신혼 때였어요. 남편은 평소에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지만 자신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아예 입을 닫아버려요. 내 말이 공격적이면 더 심해져요. 불통이 되는 거죠. 결혼 초에는 이렇게 말이 안 통해서 평생 어떻게 사나? 순간 이혼이란 말이 떠올랐어요. 고심 끝에 인간관계 공부를 시작했어요. 부부관계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어가는 것이더군요. 상담 공부를 하면서 직장, 교도소 등 인성교육 집단지도를 하러 다니게 되었어요. 부부관계의 유지는 사랑뿐 아니라 신뢰와 존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나의 부족한 점을 잘 견뎌주고 헤아려주는 남편을 보면 겸손해지더군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편에게 고마운 점은?
성당에 가는 발걸음이 한결같아요. 매일 새벽미사에 다니고 성당에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달려갑니다. 남편은 노(No)~ 하는 법이 없어요. 우리 부부는 서로 의논이 잘되는 편이에요. “그렇지, 옳지” 하면서 추임새로 긍정적인 응대를 해주고 내 요청을 웬만하면 다 들어줍니다.
시장에 장보러 같이 가고 병원, 약국도 같이 가요. 영화도 자주 보고요.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인데 내가 좋아한다고 함께 봐주다가 이제는 남편이 더 좋아하는 취미가 되었어요.
남편은 나이가 팔순이 넘도록 매일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합니다. 또 어떤 일이 있어도 국이 있는 아침밥을 먹어야 하는 남편의 밥상 차리기가 쉽지는 않아요, 남편은 특히 보건복지부 국장 시절에 발생한 사건 때문에 고통을 겪을 때 큰 힘이 되어주었다며 고마워했어요. 그렇게 고마워하니 저도 고마운 마음입니다.
글 장영희 동년기자
사진 변영도 동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