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진단, 도그마가 깨졌다
갑상선암의 급증은 최근 의료계의 핫이슈 중 하나입니다. 갑상선암의 10만 명 당 발생률은 1999년 7.2명에서 2013년 71.3명으로 비정상적으로 급증했습니다. 매년 21.2%씩 증가한 셈입니다. 국가암정보센터에서는 공식적인 통계에서 ‘갑상선암 제외 모든 암’의 통계를 따로 관리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아직 급증 현상에 대해 이렇다 할 시원한 해설은 없는 상태입니다. 이에 대해 홍혜걸 의학전문기자가 진단합니다.
갑상선암 과잉진단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캡슐에 둘러싸인 갑상선암은 암으로 부르지 말자’라는 주장이 미국에서 등장했습니다. 의학의 도그마를 깨는 상당히 획기적인 내용입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도 최근 이 주장을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갑상선암 재분류를 위해 결성된 전문가 패널에서 <JAMA Oncology>란 잡지에 발표한 내용입니다.
이 패널은 미국 피츠버그대학 의과대 병리학과 유리 니키포로프 교수 등 24명의 병리학자와 2명의 내분비내과, 1명의 외과와 정신과 의사로 2년 전 결성됐습니다. 세계 각국의 갑상선암 환자들의 데이터를 10년 동안 조사한 결과입니다.
결론은 과거 ‘캡슐에 둘러싸인 유두상 갑상선암(encapsulated follicular variant of papillary thyroid carcinoma)’을 이젠 ‘캡슐이 뚫리지 않은 유두상 갑상선 종양(noninvasive follicular thyroid neoplasm with papillary like nuclear features)’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암(carcinoma)이란 말이 사라지고 대신 종양(neoplasm)이란 말이 도입됐습니다.
알다시피 암 진단의 최종 결정권은 전적으로 병리과에서 갖고 있습니다. 조직검사 슬라이드를 현미경으로 보아 세포의 모양이 암세포처럼 보이면 암으로 진단이 내려지는 것이지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포의 핵이 어떤 모양인가입니다. 암세포의 핵은 정상세포의 핵보다 훨씬 진하고 크며 모양도 매우 불규칙합니다.
그런데 이번 전문가 패널의 발표는 암 여부를 과거 전통적인 세포의 핵 모양보다 세포의 특성, 즉 캡슐을 뚫고 나가는 성질로 판단하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암 진단 기준을 송두리째 뒤바꾸는 주장입니다.
핵의 모양이 암처럼 보여도 캡슐을 뚫지 않고 있다면 다른 조직으로 전이되어 생명을 앗아가는 등 암 특유의 양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주장을 적용하면 해마다 6만5000명씩 발생하는 미국의 갑상선암 환자 가운데 거의 1만 명이 암이 아닌 것으로 진단이 내려지게 됩니다. 이들 1만 명은 앞으로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방사성 동위원소 치료도 받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주의사항은 있습니다. 갑상선암 가운데에서도 미분화 암이나 유두상이 아닌 여포성 암은 예외입니다. 그러나 이들 암은 매우 드뭅니다. 대부분 유두상 암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장이 아직 과격하다는 반론도 있지만 미국 메이요클리닉 교수이자 미국갑상선협회장 존 모리스 등 저명한 학자들이 동조하고 있습니다.
‘암이 아니라면 암이라고 부르지 말자’는 것입니다.
평소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는 건국대병원 이용식 교수도 ‘비온뒤’와의 인터뷰에서 “덩치가 크며 문신을 하고 머리를 짧게 깎았다고 해서 모두 조폭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갑상선암의 경우 현미경에서 보이는 세포의 모양만으로 환자에게 부담이 많이 되는 수술과 방사성 동위원소 등 치료를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갑상선암에서의 이러한 움직임은 전립선암과 유방암 진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암에서도 현미경상 모양만 암이지 실제 생명을 위협하는 암이 아닌 경우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갑상선암 과잉진단이 사회적으로 논란을 빚은 바 있습니다. 최근 갑상선암의 5년 생존율이 100%를 초과하는 웃지 못할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갑상선암 환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오히려 수명이 더 길다는 뜻이며 이는 갑상선암은 죽고 사는 데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요약]
1. 캡슐로 둘러싸인 유두상 갑상선암은 암이 아니다. 불필요한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다.
2. 암 진단이 갑상선암의 경우 과거 암세포의 핵 모양에서 캡슐의 침투 여부로 바뀌고 있다.
3. 갑상선암이라도 여포성 암과 미분화 암은 예외다. 이들은 수술 등 적극적 치료가 여전히 필요하다.
4. 이러한 발표가 국내 환자에게 적용되려면 학계의 합의와 지침 마련 등 시간이 필요하다.
글 홍혜걸(洪慧杰)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