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또 깊이 산을 바라보라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막아낸 녹색연합 공동대표 박그림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박그림 선생님!” 환경단체 녹색연합 공동대표 박그림(그림·69)씨가 내 앞을 지나갔다. 귀신에 홀린 듯 정류장 의자에서 일어나며 이름을 불렀다. 밤늦은 종로 한복판. 반갑게 인사를 이어나갔지만 신기했다. 박그림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던 중 그가 도깨비처럼 내 앞을 걸어온 것이다. 인연이었다. 국정농단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이던 12월 말, 한국 역사에 길이 남을 대단한 사건 하나가 있었다. 1995년부터 강원도 양양군에서 추진해오던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이 사실상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지금까지 환경과 관련한 정부나 지자체 사업은 시민단체나 주민이 발 벗고 반대해도 무사통과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결국 계란으로 바위를 깬 것. 박그림 대표가 몸소 뛰어다닌 노력으로 이제 더 이상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생겨나지 않게 됐다. 마른 체구, 바람에 낡아버린 모자를 쓰고 점퍼를 입은 그는 세상 짐을 다 지고 있는 성자의 모습이었다.

 

 

도시 남자, 산속에서 환경지킴이 되다

박그림 대표는 오랜 시간 설악산 지킴이로, 산양들의 아빠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깍쟁이란다. “서울에서 사업을 했어요. 의료 부자재 관련 사업도 하고 종목을 바꿔가면서 개인사업을 했죠. 그런데 잘될 수 없었어요. 늘 마음이 산에 가 있었거든요.” 1992년 가족들과 함께 결단을 내리고 설악산이 보이는 곳으로 옮겨갔다. 아내 또한 서울 삶에 큰 미련이 없었다. 산이건 어디건 괜찮다고 생각했다. “무일푼으로 갔어요. 다들 서울로 가는데 시골로 오느냐고 주변에서 그러더군요.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하고, 뭘 먹고 살 것인지 말들이 많았습니다. 아내와 저는 마음의 정리가 됐기 때문에 내려갔죠. 그냥 가서 부딪치면서 살았어요.” 그렇게 박그림 대표의 진짜 인생이 시작됐다. 산을 좋아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환경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환경의 눈으로 항상 산을 바라봤던 것은 아니지만 산에 다니면서 ‘저거는 괜찮은가?’ 하는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전부터 배달녹색연합(지금의 녹색연합) 회원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제가 가자마자 속초 청초호유원지 건립에 필요한 환경영향평가가 진행되고 있었어요. 청초호 40%를 매립해 유원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죠. 이를 막기 위해 ‘청초호를 되살리는 시민의 모임’에 합류해 힘을 모았습니다. 그 이듬해에 공사가 진행됐고 고민이 많아졌어요. 그때 지역 단체보다는 전국 규모 단체의 지부를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저는 온전히 설악산 문제에 매달리겠다는 마음으로 설악녹색연합을 창립했어요. 1993년 3월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케이블카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사업 초기에는 오색약수터에서 대청봉까지 케이블카를 놓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부결됐고, 이후 노선을 달리해 추진했지만 그 일대가 남설악의 산양 최대 서식지였기에 또다시 제동이 걸렸다. 최종적으로 대청봉이 아닌 끝청봉(대청봉에서 1.4km 떨어진 지점)을 상부종점으로 정하고 하부종점까 3.5km 노선을 정했지만 결국 사업 무산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승인했던 사업을 상위법인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서 10명 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사업을 부결했습니다. 1년 넘게 설악산 자연실태조사를 거쳤기에 재심을 해도 통과는 어렵다고 봐요. 현재 설악산 대청봉을 오가는 사람은 연간 40만~50만 명 정도입니다. 설악산은 벌써 다 망가진 상태죠. 만약 케이블카가 설치돼 탑승객까지 더한다면 100만 이상이 될 것이고 결국 설악산 전체는 무너지게 됩니다.”

 

 


아빠 박그림 대표는 늘 녹색 치마를 입고 현장에 서 있었다. 
푸른색에 생명, 평화 사랑을 담았고  치마는 생명을 품고 아우른다는 뜻이 있다

 

 

설악산 산양 아빠 거리로 나서다

박그림 대표는 앞서 말했지만 ‘산양 아빠’ 로 불려왔다. 설악산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는 산양에 대해 관찰하고 조사해 알리는 일을 나서서 해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양 아빠라는 별명이 붙게 됐다. “산양은 천연기념물 217호이면서 멸종위기종 1급입니다. 마음놓고 살 수 있게 놓아두지 않으면 멸종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아주 절박한 상황이죠. 계속 어떤 상황인지를 알려야 했어요. 이게 바로 산양이구나, 우리가 정말 관심을 갖고 사랑해야겠다. 이렇게 함으로써 산양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산양을 향한 사랑은 케이블카 사업을 반대하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 초부터 반사판으로 된 커다랗고 동그란 피켓을 들고 다니면서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에 대한 현장 상황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늘 들고 다녔어요. 케이블카 사업이 부결되기 전에는 어디든 약속이 있으면 만남 시간 한 시간 전에 와서 피켓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어느 장소건. 이것을 그저 운동으로 생각했으면 못했을 거예요. 내 삶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이죠.” 박그림 대표는 피켓을 들고 있는 동안 당당하고 올곧았다. 제재하면 제재하는 대로 밀리면 밀리는 대로. 장소에 구애받지않고 설악산의 상황을 발길 닿는 곳 어디에서든 알렸다. 싸운 적도 없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인데 싸우고 그러면 안 되잖아요.”

박그림 대표는 젊은 활동가들에게 자신의 삶을 통해 꿈꿔온 세상을 만들어나가라 말한다고. 일로 보는 순간 결과를 따지게 되기 때문이다. 된다, 안 된다 결과에 집중하면 포기하기 쉽지만 삶으로 나아가면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박그림 대표의 설명이다. 이제 자연보호법을 개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국립공원에 케이블카 설치는 안 된다는 조항을 넣을 생각이다.

 

“국립공원 내에 인공 시설물도 사실 너무많아요. 데크나 계단 등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시설을 하잖아요. 국립공원은 최소한의 시설만을 설치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난간과 계단을 하나의 시설물로 만들어놓았어요. 일본 쿠시로 습지의 경우옆으로 떨어지면 이탄지대라 쑥 들어가요. 난간이 없어요. 산도 정말 이 지역이 위험해서 안 되겠다 싶으면 기본적인 사다리만 딱 걸쳐놓고. 안전은 산을 오르는 각자의 책임입니다. 관리 당국이 어떻게 안전을 확보해주냐는 거죠. 위험이 없고 불편함이 없으면 무엇 때문에 산으로 가는 겁니까? 그럼 그건 자연이 아닙니다.”        

 

 

 

 

 

시니어, 산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져야 한다

갑작스런 궁금증이 생겼다. 시니어 세대 또한 산을 즐기고 싶을 텐데 케이블카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이가 들어도 대청봉에 올라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박그림 대표는 욕심이라고 말했다.

 

“20대는 올라갈 수 있지만 70대는 못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문제가 있죠. 시니어들을 위해 케이블카를 놓아야 한다면 그게 왜 설악산뿐이겠습니까? 그리고 왜 케이블카뿐이겠습니까? 그 나이가 되면 산을 바라만 보고도 설렐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꼭 산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옛 조상들은 산을 바라만 보고도 진경을 느끼고 시심이 일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왜 정상을 갈구하는지. 그것이 의문이라고 했다.

 

“진경산수화 같은 것도 정말 멀리서 바라보고 그린 그림이잖아요. 바라봤지만 깊이있게 들여다봤죠. 우리는 지금 빨리, 아주높이 올라가지만 겉핥기식으로 산을 오르고 내려옵니다. 탄성을 지르고 내려오지만 남는 것이 없죠. 어떤 시설이 없을 때는 힘들여 산을 오르게 됩니다. 오랜 인내를 통해 올라간 정상에서는 더 많은 것들을 바라볼 수 있죠. 나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자연과 일체를 이룰 수 있는 그런 상황을 맞이하기 때문에 훨씬 다르게 산을 느끼게 됩니다.”

 

 

손자·손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박그림 대표가 케이블카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래세대를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는 설악산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 캠프도 진행한다. 산을 돌아다니면서 산양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며 바람 소리를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다.

 

“바람의 느낌을 지식을 통해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아이의 손을 잡고 바람 부는 언덕에 서면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는 ‘이게 바람이구나’하고 느낄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국립공원 22개가 차지하는 넓이는 전국토의 5%밖에 안 된다고. 그것 마저도 아이들에게 온전하게 되돌려줄 수 없다면 이다음에 어디에서 지친 영혼을 달랠 수 있을까를 박그림 대표는 걱정한다고 말했다.

 

“제게는 다섯 살짜리 손자와 돌 지난 손녀가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라났을 때 바라볼 설악산이 어떠해야 되는가를 난 늘 꿈꾸거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사진 박규민 parkyu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