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이고 매력적인 음색의 프리마돈나 김성은
“나의 이탈리아 남편은 순애보”
김성은이 공연할 때면 어김없이 찾아와 무대 안팎에서 호들갑을 떨면서 “내가 스텔라의 남편이요”라고 외치는 남자가 있다. 바로 그녀의 이탈리아 남편 카를로다. 대기실에서는 이탈리아어로 예쁘다는 의미의 “Bella Bella”를 연발한다. 소프라노 Stella Kim 김성은의 목소리만큼 아름답고 특별한 사랑과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들여다봤다.
현재 유럽에서 프리마돈나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소프라노 Stella Kim의 한국명은 김성은이다. 이탈리아 베로나 아레나극장에서 동양인 최초로 오페라 <리골레토>의 주인공인 질다 역을 멋지게 열연해서 유럽 현지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스페인 비냐스 국제콩쿠르, 플라시도 도밍고 국제콩쿠르, 이탈리아 토티 달 몬테 국제콩쿠르, 스페인 아라갈 국제콩쿠르 등 유명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소프라노다.
스페인 황실 신년음악회에서는 플라시도 도밍고와 협연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예술의전당에서 김성은 초청독창회가 음악평론가들과 애호가들의 찬사 속에 끝났다. 음악을 좋아하는 한량 이봉규도 감각적이고 매력적인 독특한 음색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김성은 공연을 놓칠 리가 만무하다. 그날 무대에서 뿜어내는 그녀만의 오묘하면서 섹시한 타고난 천상의 목소리를 접하고는 그녀가 왜 유럽에서 그토록 주목을 받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맑고 호소력 넘치는 목소리
나는 그동안 수많은 소프라노 공연을 국내외에서 감상했지만 음악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목소리의 차이를 선명하게 느끼지 못했다. 그저 고음의 꾀꼬리처럼 아름다운 소리들이 음색에 따라 각자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점은 느꼈지만 이렇게 확연한 차이를 느껴보기는 김성은이 처음이다.
대중가요 가수로 말하자면, 전통적인 여가수들과 심수봉 목소리의 차이를 금방 느낄 수 있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재즈 가수로 말하면 루이 암스트롱의 독특한 음색이 다른 재즈 가수들과 확연하게 다른 것처럼, 김성은의 목에서 흐느끼듯 터져 나오는 음색은 가히 독보적이다.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목소리다. 물론 비전문가로서 음악을 그저 즐기기만 했던 한량 이봉규의 평가이기에 음악평론가들이 내 글을 읽으면 생각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동안 즐겼던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솔직하게 느낀 점이다.
요즘은 문화평론가들이 정치평론을 하고 변호사나 의사들도 너도나도 TV에 나와 정치평론을 해대는 자유로운 세상이기에 나도 이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키다리 아저씨와의 운명적 만남
아름다운 프리마돈나를 사로잡은 사람은 아홉 살 연상의 이탈리아 심리상담사(psychology counselor) 카를로다. 올해로 벌써 결혼 20년 차. 그와의 인연도 오페라가 맺어주었다. 오페라 정극의 주인공을 뽑는 콩쿠르에서 1등(주역)에 뽑혀 이탈리아의 트레비조에서 40일간 생활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녀에게 방을 내준 집주인이 카를로다. 당시에는 남자로 보이기보다는 거처할 집을 내준 키다리 아저씨로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 후 약간의 세월이 흘러 다음번 이탈리아 공연 때 만났는데 카를로의 식구들이 따뜻하게 대해줘 강한 인상이 남았다. 인연이 되려니까 하늘도 도왔는지 이탈리아 공연 스케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만날 기회도 늘어났다. 그렇게 시작된 연애가 4년쯤 무르익어갈 무렵 그녀의 어머니가 이탈리아를 방문했는데 카를로의 인간미에 반해버렸다.
“왜 결혼 안 하냐? 카를로와 결혼하든지, 아니면 지금 깔끔하게 헤어져라!” 하고 압박을 해온 것이 결정적으로 통해 트레비조 대성당에서 1997년 결혼했다. 당시 김성은과 카를로의 결혼은 이탈리아에서 화제였다고 한다.
이탈리아 남자와 동양인 프리마돈나의 결혼은 당시로서는 이탈리아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국제결혼의 장점을 물으니, “국제결혼 이전에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한 것이고, 이탈리아 남자와 한국 여자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힘주어 말한다.
결혼한 지 20년 됐고 이탈리아에서 생활한 지도 그 이상 되기 때문에 김성은은 국제결혼의 실감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공연을 위해 가끔 한국에 오면 낯설고 어색할 때가 많단다. 이탈리아에도 고부간의 갈등이 있겠지만 시어머니는 그녀를 아주 사랑하고 예쁘게 봐준다. 외국 며느리라서 봐주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존경받는 오페라 가수가 내 며느리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서 그런 것 아닐까.
이탈리아도 점을 많이 본다니 놀랍다. 카를로가 김성은을 만나기 전 브라질 여의사와 사귀고 있을 때 점을 보았는데 점쟁이 왈 “너는 동양 여자랑 결혼한다”고 했단다. 카를로는 그 소리를 듣고 무척 충격을 받았다. 그 후 그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고 그러던 어느 날 눈앞에 동양 여인 김성은이 나타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랑에 눈이 멀어 콩깍지가 씌면 아무거나 마구 갖다 붙이면서 운명론자가 되어버리는 경향은 이탈리아 남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동양계의 귀하고 아름다운 프리마돈나의 마음을 훔치려고 지어낸 말인지 진실인지는 카를로만이 알 것이다. 카를로의 직업이 심리상담사이기에 합리적인 의심은 들지만 이 정도로 넘어가자!
‘범생’ 남편과의 찰떡궁합
프리마돈나라고 해서 한량 이봉규가 우아한 질문만 하고 보내줄 리가 없다.
“이탈리아 남자들이 바람을 많이 피운다는데…”라는 도발적 말에 그녀는 웃으면서 “내 남편은 삼식이”란다. “하루 세끼를 집에서 먹는 ‘범생이’라서 바람피울 줄도 모를걸요?” 남편을 만나본 적이 없기에 그 말을 믿어야지 어쩌겠나? 김성은이 공연할 때면 어김없이 찾아와 무대 안팎에서 호들갑 떨면서 “내가 스텔라의 남편이요”라고 외친단다. 대기실에 찾아와서는 이탈리아어로 예쁘다는 의미의 “Bella Bella”를 연발한다. 이탈리아에도 팔불출이 있기는 매한가지.
심지어 아내의 노래를 CD로 들을 때도 눈물을 펑펑 쏟는다고 하니 아까 김성은이 한 말을 믿기로 했다. 두 사람은 부부싸움을 할 때도 여느 부부와 다르다고 한다. 김성은이 “너는 왜 코가 삐뚤어졌니?” 하고 남편에게 시비를 걸면 카를로는 “너는 왜 코가 납작하니” 하며 응수한단다.
이탈리아 남자들의 코가 중간에 약간 휘어진 것을 지적하면서 놀리면 한국 여자들의 납작한 코를 얘기하며 맞받아친다고 하니 유치한 사랑싸움의 극치다. 그만큼 다정하다는 것을 자랑하는 말로 들렸다. 결혼생활이 오래되고 느긋해서 그런지 카를로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는 10년 살고 바꿔야 한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더니, 이제는 “뭐든 다 해줄 수 있으니까 제발 이혼만 요구하지 마라!”고 어리광을 핀다고 한다.
그녀는 공연 등으로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도 다 이해해주면서 외조를 해주는 카를로가 늘 고맙다. 이탈리아 남자와 한국 남자의 차이를 묻자 “이탈리아 남자들은 가족 구성원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각자의 중요하고 개별적인 사생활을 존중해준다. 그렇게 자유를 얻는 대신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국 남자들은 권위적이긴 하지만 모든 책임을 감수한다. 간혹 힘들고 귀찮을 때는 한국 남자 같은 스타일에 의지하고픈 마음도 든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다시 태어나도 이 남자랑?
“다시 태어나도 이탈리아 남자랑 결혼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한국 남자랑 안 살아봐서 다음 생에는 꼭 한국 남자랑 살아보고 싶다”며 깔깔대고 웃는다. 그런데 그 눈가에 진심이 묻어나온다. 20년 넘게 이탈리아 남자와 외국에서 생활했으니 고국이 그리웠을 것 같다. 또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 남자와 살아봤으면 하는 마음도 슬쩍 해봤으리라.
완벽한 결혼생활이 어디 있으랴. 김성은은 지금 행복하기에 다음 생의 바람을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만약 행복하지 않으면 당장 이혼하고 보따리 싸서 한국으로 날아올 것 같은 성격의 소유자임을 한량 이봉규는 간파했다. 승부욕이 강하고 처절한 노력 끝에 유럽에서 성공한 프리마돈나가 되었는데 싫은 결혼을 참으면서 살 김성은이 아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지금 나름대로 만족한 결혼생활과 이탈리아 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12세의 딸 알레그라의 사진을 보여준다. 기가 막히게 예쁘게 생겼다. 알레그라를 성악가로 키우고 싶은데 엄마를 안 닮아 노래를 못한다며 아쉬워한다. 그런데 펜싱을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딸이 이탈리아 3개 도(道)의 12세 펜싱대회에서 2등을 했단다.
“제2의 김연아를 기대해보라! 얼굴도 예쁘니까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순간 세계적인 대스타가 될 것”이라고 부추기니까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프리마돈나 김성은도 별 수 없이 자식바보다. 52세의 소프라노는 대체로 은퇴할 나이이지만 그녀는 오히려 지금이 전성기다. 그 원동력은 가족의 사랑이 아닐까? 그녀는 말을 할 때도 마치 노래하는 것 같다. 고음의 목소리로 흥얼거린다.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마치 한 편의 아름다운 오페라를 감상하는 느낌이어서 행복했다.
글 이봉규 시사평론가 bravo@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