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재를 망가트려 죄송합니다”
“교재를 망가트려 죄송합니다.”
월요일 수업에 들어간 나는 제자들에게 45도로 고개를 숙여 정중히 사과했다. 평소에 “학생들에게 교사는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교재다”라고 강조해왔다. 옷차림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완벽해야 직성이 풀렸던 필자인데 이 노릇을 어쩌랴? 교재인 얼굴을 심각하게 손상시켰으니 교사로서 참으로 체통이 안 서는 상황이었다. 필자는 덧붙여서 말했다.
“다 나을 때까지 내 얼굴 정면으로 쳐다보는 애는 배신자다.”
“교장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며칠 쉬시지 왜 벌써 나왔어요.”
걱정할 것 같아 인사차 교장실에 들른 필자 얼굴을 교장선생님은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대형사고를 쳐놓고서 무슨 염치로 결근을 하랴! 미안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더 열심히 수업을 했다.
2005년 3월 5일 토요일. 그날은 우리나라 교육계에서 첫 번째로 시행되는 놀토였다. 전 교직원들은 첫 놀토를 기념할 겸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안성 서운산으로 등산을 갔다. 산 정상에 올라서자 넓적한 바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20대 후반의 남자 체육선생님이 이쪽 바위에서 저쪽 바위로 가볍게 몸을 날리며 건너뛰었다. 순간 ‘나도 한번 뛰어볼까?’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동시에 필자는 벌써 바위를 건너뛰고 있었다.
“오늘이 며칠이에요?”
“내가 왜 여기에 있어요?”
발이 미끄러지며 바위에 머리를 부딪힌 필자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깨어난 후에도 계속 헛소리를 하는 통에 동료 교사들은 상태가 꽤 심각하다고 생각했는지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 상황에서도 필자는 ‘내가 이러면 우리 애들은 어떡하지? 이렇게 정신이 없으면 수업은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걱정을 했다.
20대 젊은 남자 선생님이, 그것도 날렵한 체육선생님이 바위를 건너뛴다고, 50대 중반의 여자가 주제파악도 못하고 따라하다가 완전 대형사고를 친 거다. 딸에게 필자의 별명은 럭비공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 사고를 쳤으니 동료 교사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날의 사고 때문에 모든 일정이 취소되어 점심 한 그릇씩 겨우 먹고 헤어졌단다.
“물의를 일으켜서 정말 죄송합니다. 모처럼의 나들이를 제가 망쳐놔서 정말 죄송합니다.”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머리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사과하는 필자의 모습을 보며 한 선생님은 혀를 내둘렀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예의를 차릴 수 있냐고, 자신은 절대로 그렇게 못할 거라고. 바위를 건너뛰었던 체육선생님은 놀라서 자신의 손수건으로 지혈을 시켰고 다른 남자 선생님과 부축을 해줘서 간신히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곧 119구급차가 도착했고 필자는 평택 굳모닝병원으로 실려가 정수리 부분을 다섯 바늘이나 꿰매고, 바위에 무참하게 갈려나간 얼굴을 치료받은 후 겨우 귀가할 수 있었다.
지금도 고마운 분은 정보처리과 부장님이었다. 필자의 직속상관이었던 그분은 당신이 사는 14층 아파트로 달려가 손수 키우던 알로에를 가져오셨다. 심각했던 얼굴의 상처가 깨끗이 아문 것은 순전히 그덕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그날 아파트 엘리베이터까지 고장 나 14층까지 걸어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고 하니 지금도 두고두고 감사한 마음이다.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다. 세월이 지나보면 늘 누군가의 정성과 배려 속에서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글 박애란 동년기자 bravopress@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