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나무/ 레미 쿠르종 글, 그림/ 나선희 옮김/ 시공주니어-
얼마 전, 어떤 분이 나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뭐라고 할 것인지, 꿈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나는 아주 잠깐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나는 배나무입니다. 배홍숙은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깔로 살아가는 중이예요.”
내가 오지랖이 넓어 여기저기 관심사가 많고 하는 게 너무 많은 건가 싶기도 하지만, 실은 하고 싶은 걸 다 하지는 못한다. 무리하며 할 수도 없고 시간과 능력이 따라주지 못하니까.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마다하지 않고, 예전엔 하고 싶은 것을 50%도 못하다가 50대 이후엔 내 나이 숫자만큼씩 하고 싶은 것을 실천해보는 맘으로 살고 있긴 하다.
꿈이라면~ 글쎄, 어린 시절엔 겉보기에 멋있는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먼 미래에(어쩌면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는 때에) 좋은 할머니, 멋진 할머니 소리를 듣다가 잘 죽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무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레미 쿠르종’이 쓰고 그린 그림책에 나오는 할머니처럼....
어떤 돈이 많은 아저씨가 자신의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가가 멋진 큰 나무를 발견한다. 비서와 조종사에게 당장 내리겠다고 말한 부자 아저씨는 그 나무를 집으로 가져가려고 한다. 자기 성에 있는 수영장 옆에 옮겨 심고 싶어서. 삼십 명이나 되는 정원사들을 불러 일을 시키는데 며칠 동안 일을 하다 거의 끝날 무렵 기술자가 말한다.
“여기서 그만 두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옆에 있는 나무의 뿌리와 단단하게 얽혀 있어요.”
화가 난 부자 아저씨는 뿌리를 자르라고 하는데 기술자는 그러면 나무가 괴로워하다가 죽을 거라고 말한다. 그래서 부자 아저씨는 옆에 있는 작은 나무까지 같이 가져가겠다고 하지만 그 나무의 주인은 따로 있다. 그래서 작은 집에 사는 할머니에게 비서를 보내는데 비서는 빈손으로 돌아온다. 아저씨는 비서 뺨을 때리고 직접 할머니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아저씨는 이제껏 자신이 살던 세상과는 아주 다른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할머니가 직접 만든 아몬드쿠키와 따뜻한 차, 그리고 할머니 두 눈에 비취는 큰 나무와 작은 나무! 그날은 마침 할머니의 생일이란 얘기를 듣고 아저씨는 선물을 뭐로 하면 좋겠냐고 묻는다.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한다.
“큰 나무의 뿌리를 다시 덮어줘요, 그대로 두면 곧 감기에 걸리고 말게요. 그거면 돼요.”
그래서 아저씨는 사람들에게 품삯을 줘서 돌려보내고, 비서와 비행기도 돌려보낸 후, 혼자 직접 삽을 들고 일을 시작한다. 처음엔 요란스레 울리던 휴대 전화도 더 이상 울리지 않게 되었다. 아저씨는 더운 날들과 비오는 날들을 지나며 꺼칠꺼칠하고 굳은살이 생기도록 일해서 마침내 나무를 원래 상태로 만들어 놓고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며 할머니와 나무를 떠난다.
이 책은 판형이 보통책 보다 크고 길다. 커다란 나무처럼! 이 책의 그림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단순한 듯 선명한 색감이 편안하고 몇몇 장면은 참 좋다.
작은 집과 마당에 놓인 테이블, 찻잔, 졸고 있는 모자 쓴 할머니와 고양이들의 나른하고 평화스런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좋다. 제일 맘에 드는 장면은 부자 아저씨가 문득 발견하는 할머니의 두 눈이 크게 확대된 장면이다. 두 눈가의 잔주름이 마치 왼쪽 눈과 오른쪽 눈에 담긴 작은 나무와 큰 나무를 이어주고 있는 듯하다. 실제론 이렇게 나무 한그루씩 따로 담아내는 눈은 없겠지만, 그 장면 하나로 할머니의 심성과 작가의 메시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 책에서 아쉬운 것은 마지막 두 페이지인데, 없어도 될 이야기가 붙어서 마치 사족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여러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현재의 내 모습은 어떤 모양인지를 돌아보게 해준다.
나무를 자기 집 수영장으로 가져가려 했던 부자 아저씨는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는 현대인들을 닮았다. 할머니는 그저 조용히 있으면서도 너무나 멋진 나무를 닮았다. 욕심을 부리며 화난 사람을 큰 소리 하나도 치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가라앉히게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설득하는 능력은 또 어떤가? 나도 이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난 진작부터 ‘배나무’란 닉네임과 아이디를 즐겨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큰 나무는 아니라도 그저 소박하면서도 도움이 되는 나무면 충분하다.
며칠 전, 고양시에서 공익 포스터 하나를 봤는데, 크고 진한 글씨로 ‘배나무’라고 적혀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배워서 나누는 무료강습이란 부재가 있었다.
^^ 배나무란 이름도 두루두루 쓰임이 많다면 그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