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썰매에 꽂혔던 동심
겨울에는 도회지에서도 얼음썰매장이 개설된다. 얼음썰매에 꽂혔던 초등학교 시절의 어느 겨울방학, 얼음이 깨지면서 큰일날 뻔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문득 그날들이 그리워진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요즘처럼 놀이가 많지 않았다. 마땅한 장난감이 없었던 산간벽촌은 더 그랬다. 딱지치기·자치기·팽이돌리기 등 모든 놀잇감을 스스로 만들어서 놀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필자는 겨울방학이 가까워오면 얼음썰매를 미리 만들어뒀다. 책에서 본 얼음썰매가 설계도 역할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재료였다. 나무와 못은 어찌어찌 준비했으나 썰매 바닥에 붙일 철사가 없었다.
플라스틱 제품이 없었던 당시에는 양철로 만든 양동이와 두레박을 많이 사용했다. 양철 제품 테두리에 굵기가 적당한 철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잠깐이었다. 멀쩡한 생활용품을 망가뜨려가면서 철사를 빼낸 필자는 신나게 얼음썰매를 만들었다. 얼마 안 있어 “두레박을 찾아라” 하며 집이 난리가 났다. 하지만 망가진 두레박을 누가 찾을 수 있겠는가. 두레박이 사라졌으니 물을 길을 수도 없었고 따라서 밥도 굶어야 할 형편이 되었다. 그래도 시치미를 뚝 떼고 이웃집으로 두레박을 빌리러 갔다.
필자의 고향은 남해안이다. 겨울에도 따뜻했던 고향에서는 눈이나 얼음을 보기 어려웠다. 동네 앞 물이 채워진 논에 얼음이 어는 경우가 간혹 있었지만 며칠이면 금세 녹아버리고 말았다. 얼음이 얼어도 아주 얇게 얼었고 해가 솟아오르면 곧 녹아버렸기 때문에 얼음썰매를 타고 싶었던 필자는 새벽부터 냅다 달려가 잠깐이라도 썰매를 타다가 오곤 했다. 중학교 때는 외지로 나가 공부를 했는데 그곳에서 수북하게 쌓인 눈과 두꺼운 얼음을 보고 매우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대나무 사이에 몰래 숨겨둔 얼음썰매를 가끔씩 티 나지 않게 살피면서 어서 겨울방학이 오고 얼음이 꽝꽝 얼었으면 했다.
중학교도 시험을 봐서 들어가야 했던 시절, 초등학교 6학년은 입시준비에 열중해야 할 학년이었다. 그래도 썰매를 탈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6학년 겨울방학 때 드디어 기회가 왔다. 부모님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집에서 몰래 빠져나와 썰매를 메고 얼음판으로 번개처럼 뛰어갔다. 또래 친구들도 벌써 와 있었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얼음이 녹을 때까지 썰매타기에 열중했다. 아침을 안 먹었는데도 배가 안 고팠고 부모님의 걱정도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저 얼음이 오래오래 녹지 않기만을 바랐다.
얼음은 물 가장자리부터 얼기 시작한다. 중심에는 물이 얼지 않는 ‘숨구멍’이 있다는 것을 당시에 필자가 알 턱이 없었다. 우리는 썰매를 타고 논 가장자리에서 점점 가운데로 나아갔다. 빨리 달리기에 이어 중앙부를 통과해 반대편으로 가기 시합을 했다. 그런데 어느덧 해가 중천에 뜨자 얼음이 바스락 소리를 내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는 것을 모르고 중간쯤 달리던 필자는 그만 진흙 웅덩이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생쥐 모양으로 흙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님은 꾸지람 한마디 안 하시고 씻겨서 방으로 들여보내 주셨다. 물론 두레박 실종 사건의 용의자가 필자라는 것도 이미 알고 계신 듯했다. 이 사건은 그 뒤 무모한 행동을 삼가는 큰 계기가 되었다. 어머님 그립습니다.
글 백외섭 동년기자 bravopress@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