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장소는 사라져도 그리움은 남는다
필자는 지금도 명동을 좋아한다. 젊었을 때 필자의 메카는 명동이었다. 명동은 대학 시절 학교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는 종로와 광화문이 좋아서 많이 쏘다녔다. 6명의 친구가 모여 만든 클럽 ‘디지 걸’이라는 모임도 있었다. ‘dizzy’는 어지럽다, 아찔하다는 뜻인데 깜찍한 친구들이 ‘우리는 아찔하게 멋진애들’이라는 의미로 의견을 모아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하긴 해도 즐거웠던 시절이다.
광화문에는 학생들에게 유명한 제과점이 있었다. 2층 벽이 낙서와 사인으로 온통 도배가 되어 있었던 제과점이었다. 우리도 그 벽 한쪽에 6명의 이름과 ‘디지 걸’이라는 사인을 해놓았다. 그 6명의 ‘디지 걸’은 다 어디서 뭘 하며 살고 있을까? 궁금하고 보고 싶다.
나는 음악 듣는 걸 무척 좋아했다. 그때는 규모가 큰 다방들이 많았는데 신청곡을 적어 DJ 박스에 넣으면 그 음악을 틀어주곤 했다. 그럴 때 나지막하고 약간 느끼한 목소리의 DJ가 “어디에서 오신 누구의 신청곡입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우리들 이름을 불러주면 그것이 그렇게 즐거웠다.
지금 교보문고 자리에 있던 금란다방도 즐겨 찾았던 곳이다. 종로통의 쎄시봉, 디세네, 르네상스, 종로에서 무교동 쪽에 있던 DJ 이종환의 쉘부르도 자주 갔다. 명동으로 가는 길 골목에 있는 로방도 운치 있었다. 지금도 명동에 들어서면 분위기 있던‘목신의 오후’에서의 차 한 잔이 그립다.
명동 예술극장으로는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보러 다녔다. 그 예술극장이 금융 건물로 바뀌는 바람에 허전하고 아쉬웠는데 다행히 얼마 전 예술극장으로 다시 돌아와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명동 제일의 번화가인 명동 사거리 코너에는 잊지 못할 추억의 청자다방이 있었다. 예술극장 건너편에 있던 이 다방은 규모가 엄청 커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1층 넓은 공간에 마련된 좌석들이 보였고 2층으로 통하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역시 넓은 공간이 있었다. 필자는 친구들과 주로 이곳에서 만났는데 늘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청자다방이 생기기 전 이곳은 ‘시라노’라는 미니백화점이었다. 3, 4층의 건물에서 중저가의 물건을 팔던 이 백화점은 당시에도 유명했던 음악가 정명화, 정경화, 정명훈씨의 어머니가 경영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청자다방은 명동 안쪽의 심지다방과 더불어 큰 다방의 대명사였다. 한껏 겉멋이 들어 있던 우리 친구들은 사보이호텔 골목안쪽에 있는 ‘화이어 버드’라는 곳에서 커피 값보다 두 배는 비싼 ‘슬로우 진’, ‘스쿠르 드라이버’, ‘카카오’ 등 달콤한 음료들을 사 마시고 다녔다. 어지간히 폼생폼사 잘난 척을 하고 다닌 것 같다.
명동 또 다른 골목의 2층에 있던 ‘이사벨라’라는 다방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가팔랐던 ‘엔젤’도 지금은 모두 없어져 그리운 곳이다. 미도파백화점 옆 건물에 있던 ‘포시즌’도 생각난다. 그곳에 가수 정미조씨가 나와 ‘개여울’과 팝송을 라이브로 감미롭게 부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정미조씨를 보고 예쁘다고 해서 한판싸움을 벌였던 남자 친구도 생각난다.
음악은 모든 장르를 좋아했다. ‘딥 퍼플’, ‘산타나’, ‘소니 앤 쉐어’ 등의 노래를 즐겼고 ‘스모크 온 더 워터’ 같은 곡은 지금 들어도 신선하다. 이런 팝송이나 샹송, 칸초네 외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클래식을 들으러 음악 감상실에서 엄청 많은 시간을 보냈다. 클래식 감상실은 종로의 르네상스가 유명했다. 내가 자주 갔던 곳은 명동 사보이호텔 건너편에 있던 ‘필하모니’라는 클래식 전용 음악 감상실이었다. 다른 다방과 달리 대화를 할 수 없고 조용히 음악 감상만 해야 했다. 음료수를 들고 감상실 안으로 들어가면 극장처럼 의자가 배열되어 있었고 무대 쪽엔 음악명이 쓰인 보면대가 놓여 있었다. 많은 음악 애호가들은 이곳에 몰려와 클래식 음악에 빠져 있곤 했다. 필자도 조용히 앉아 우유나 콜라를 마시며 잘 알지도 못하지만 열심히 클래식 음악을 감상했다.
요즘도 한 달에 몇 번씩은 그냥 명동에 나간다. 여전히 젊은 날의 아름다운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거리의 풍경도 바뀌고 추억의 장소도 없어졌지만 명동에 대한 필자의 그리움은 여전하다.
글 박혜경 동년기자 bravopress@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