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 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일천 간장 다 녹이는 정선아라리’

아주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어도, 어쩐 일인지 길나서면 금방일 강원도 정선을 가 본 적이 없다. 영월, 묵호, 삼척, 동해까지 가서 정선을 지척에 두고도 운 때가 안 맞아 끝내 못 가봤다. 정선이란 지명이 까닭 없이 좋았던 것은 사실 정선아라리 가락에서 비롯되었다. 청승과 처연함이 저 정도면 최고봉이다 싶을 만큼, 듣는 것만으로도 애잔한 정선아리랑은 음률이 척척 늘어져 나대신 슬퍼해주는 것 같았는데 심지어 사설이 거의 시와 진배없어서 좋았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이토록 서정적인 가사로 툭 시작하는 아리랑이라니... 정선을 향한 애정의 시작은 아라리가락이었지만 ‘정선’이란 장소에 더 깊은 그리움 같은 게 생긴 것은 2001년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 덕분이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청년 상우(유지태)의 서글픈 실연 대사로 유명한 영화지만 내겐 정선의 강과 나무, 강릉 바다의 이미지와 소리로 남아 있다. 유지태와 이영애가 ‘봄이 오는 강물 소리’를 따던 곳은 정선 아우라지 강이었는데 흰 눈을 밟고 집에서 나온 유지태가 빨간 목도리를 한 이영애와 처음 만나 채집한 자연의 소리가 겨울 지나 언 강이 풀려 내는 물소리다. 그야말로 봄날의 시작.

정선 아리랑, 저 위 노래에 나오는 아우라지 뱃사공이 건네주지 못한 여량리에 사는 처녀와 유천리에 사는 총각의 애달픈 사랑의 사연에서 시작한 그들의 사랑의 소리 녹음은 사각사각 대숲에 이는 바람 소리를 담는 것으로 이어진다. 정선 북면 하신들의 대 숲 소리.

“대밭에서 52년을 살아온 강화순 할머니는 대밭에서 부는 소리에 심란한 마음이 평온해지고 방금 전까지의 걱정도 잊는다고 합니다. ‘자연과 사람’ 오늘은 강원도 정선군 북면 하신들 ‘바람에 흔들리는 대숲소리’입니다.” 이영애가 진행하는 방송에서 유지태와 같이 녹음한 ‘자연과 사람’의 소리들에서 마지막은 정선 아라리 가락. 봄에 시작된 두 사람의 사랑이 봄을 지나 여름처럼 초록에 지쳐 삐끗거릴 때 나온다.

 

할머니: 원수 백발이 오지 말라고 가시성을 쳤더니, 고 몹쓸 놈의 원수야 백발이 앞을 질러 왔소.

할아버지: 서산에 지는 해가 지고 싶어서 지나,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야 가고 싶어 가나.

할머니, 할아버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줘요.

 

정선의 어느 마을 커다란 나무 아래 ‘난닝구’ 입은 할아버지가 대병짜리 소주를 마시고 있다. 김치 한 보시기를 들고 머리칼 성글어진 할머니가 나와 앉는다. 그들 앞에 이제 사랑이 식어가는 기미를 느낀 두 남녀가 앉아 있다. 이영애가 묻고 할아버지가 답한다.

정선 아라리를 언제부터 하셨어요? 이십 살부터 했지. 60년이 된 거네요.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정선 아라리 자주 부르세요? 아이, 안 하지. 같이 부르긴 뭘 불러. 자꾸 물을 필요가 없고만. 요새 장에 나와 하는 이들이나 자주 하지 우리는 안 부르지. 가정부인하고 같이 노래하는 게 옛날에 있었는가? 신식 사람들이나 부르지, 그냥 우리 구식 사람들은 안 불러.

 

할머니는 할아버지 쪽으로는 눈 한 번 주지 않고 노래를 시작하고 할아버지도 먼 산을 보듯 돌아 앉아 할머니 노래를 받아 아라리를 부른다. 매미 소리, 커다란 나무 바람에 스치는 소리, 가을 같은 햇살, 처연하고 서글픈 소리와 가사가 녹음장비 속에 들어가면서 쓸쓸한 장면은 페이드아웃. 연인의 사랑은 변해가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사랑이고 뭣이고 다 잊은 지 너무도 오래. ‘봄날은 그렇게 갔’지만 대신 정선과 정선 아리랑이 마음에 남아 종종 찾아듣게 되었는데 아무튼 정선아리랑은 아리랑이라고 하기 보다는 꼭 ‘정선아라리’라고 해야 서글프게 치렁치렁한 정한의 느낌이 살아난다.

 

엄순분 할머니의 정선아라리, 여자의 일생

강원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정선아리랑을 오래 잊고 살다가 우연히 듣게 된 것은 페이스북에서였다. 몇 년 전부터 서울 살림을 접고 정선에 내려가 살고 있는 권혜경씨와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는데 그녀는 수정헌이라는 조그만 게스트하우스를 하면서 나물을 뜯고 나이든 개를 키우고 마을 할머니들과 마치 딸처럼 지내고 있었다. 산을 좋아하는데다 산 관련 잡지사에서 일했다는 이력, 동물을 아끼는 고운 손길, 푸성귀를 기르고 음식을 만들며 살고 있는 권혜경씨의 삶은 일종의 ‘워너비’였는데, 살고 있는 곳이 정선이어서 더욱 그랬다. 그녀가 담근 김치와 곡식을 주문해 먹고 그녀의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어느 날, 웬 ‘처자들’이 정선아리랑을 부르는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강원도 금강산 일만 이천 봉 팔만 구암자. 유점사 법당 뒤에 칠성단 도두 모으고, 팔자에 없는 아들딸 나 달라고 석 달 열흘...” 무슨 정선아라리를 저리도 흥이 넘치게 부르나 싶게 젓가락 장단에 맞추어 긴사설을 청산유수로 쏟아내는 여자 둘의 동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봤다. 한숨 같은 서글픔을 노래하는 정선아라리 영상도 두어 번 올라왔다. 숲의 나무 아래, 물이 흐르는 계곡, 나물 반찬 놓인 상 앞에서 노래하는 여자들의 이름은 최진실, 신현영. 정선아리랑 전수자들이라고 했다. 눈매와 음성이 딱 정선아라리 부르는 사람처럼 생긴 최진실과 동글동글 총기 넘치고 귀염성 있게 잘 웃는 신현영과도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다. 정선 가리왕산 세 자매 권혜경, 최진실, 신현영의 이야기는 급기야 방송 <한국기행>에도 소개되었다.

 

예전처럼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다면 바로 가서 인터뷰하고 싶을 만큼 정선아라리 부르는 두 여자는 매력이 넘쳐흘렀고 그 노래를 청하고 기록하는 권혜경씨의 낮은 산처럼 넓어 보이는 마음도 만나고 싶어졌다. 저 노래를 들으러 정선으로 가야겠다! 마음먹었는데, 나만 그렇겠는가. 노래를 보고 들은 모든 이들이 정선아라리 세 여자들의 팬이 되어갔다. 만나러 갈 날짜를 톺아보면서 또 생각했다. 나라면 저들의 이야기를, 정선 아라리를 공연으로 만들어보겠다!!!고 생각했는데, 아, 진짜로 공연 소식이 들려왔다.

<여자의 일생> 정선아리랑 노래극 시즌1의 시작이었다. 2018년 9월 13일. 서울 삼성역 근처 싹(SAC)아트홀, 단 하루, 단 한 번의 공연이었고 포스터에는 최진실, 신현영 말고 단단하나 곱게 나이 드신 할머니 한 분이 기둥처럼 꼿꼿이 서 계셨다. 정선에서 정선아라리를 부르며 평생을 사셨다는 엄순분 할머니였다.

<여자의 일생>이라니. 당연하게도 기 드 모파상 소설 ‘여자의 일생’이 퍼뜩 떠올랐는데 2018년 현재 정선아리랑 극 제목으로 너무 고색창연한 거 아닌가. 심지어 하얀 한복에 검정치마 짚신 같은 고무신을 신고 있는 사진이 박혀 있어서 이거 아주 울고 짜고 신파로 흐르려나싶어 아주 조금 걱정도 됐다. 하긴 화장 짙게 하고 화려 찬란한 신식 무대의상 같은 한복을 입었더라도 이상했겠다싶었지만. 엄순분 할머니가 살아온 일생을 수십 개의 정선아라리 가사로 극화해 최진실과 신현영이 공연한다고 했다. 전문 공연은 아니더라도 정선아라리는 실컷 들을 수 있겠지 싶어 정선으로 여행가는 대신 공연장으로 달려갔는데.

 

 

아프고 아프구나, 줄줄줄 눈물이

명사십리가 아니라면은 해당화는 왜 피나.

모춘 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우나.

참, 신기한 일이었다. 무대에 불이 켜지고 엄순분 할머니가 나와서 이름 이야기하고 정선아라리 잘 봐주세요, 할 때부터 얼굴만 보고도 공연히 울컥 하더니 노래 가락 한 줄마다 눈물이 나오는 거 아닌가. 가난해서 나물 뜯어먹고 가난해서 학교 못 가고 먹고 살려고 일만 하고 망나니 남편 술 먹고 돌아다니고. 그토록 빤하게 닳고 닳은 옛날 여자의 일생 이야기에 온 마음이 감응하다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배우이자 가수인 최진실, 신현영의 손이라도 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깝게 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사람부터 저 끝에 겨우 앉은 사람들까지 다 그랬다.

 

어린 순분이가 장에 가신 아버지를 기다릴 때, 장에 갔던 아버지가 빈손으로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올 때, 어린 동생이라도 학교 보내달라고 청할 때, 엄마가 굳은 얼굴로 수건을 동여매고 일만 할 때, 일과 일 사이에 정선아라리 가락을 흘려보낼 때 참으로 한 마음으로 노래를 들으며 젖은 가슴이 되어갔다. 처녀 순분이가 시집 와서 밭고랑 가에서 하염없이 호미질 할 때, 가난할 살림살이 붙들고 곤드레 나물을 캐러 갈 때, 가난한 아들아이 눈물을 훔치며 도시로 떠날 때. “아프고 아프구나” 정선아라리 한 구절마다 처량한 가락처럼 줄줄 울었다. 엄순분, 정선 그 여자, 일생의 구비마다 관객들은 죄다 제 설움에 기대어.

그러나, 눈물만 있진 않았다. 툭툭 던지는 뭉툭한 강원도 사투리에 섞여 동요가 나올 땐 박수치면서 따라 불렀고 술타령에 젖어 아버지가 트로트 자락을 불러 젖힐 때 젓가락 장단도 함께 맞췄다. 500곡이 넘는다는 정선아리랑은 애달픈 것도 있지만 경쾌하고 발랄한 사설도 많아서 흥이 솟구치기도 했으니까. 취한 한량 아버지 술타령은 여자의 일생 중 백미. 울어도 시원찮을 정경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최진실은 엄순분이라는 한 여자의 어린 시절부터 새댁, 엄마, 할머니가 되기까지의 여자의 일생을, 신현영은 엄순분의 일생을 둘러싼 아버지, 여동생, 남편,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아들까지 온 역할을 다 맡아 분장을 바꾸어가면서 정선아라리 속에 들은 모든 이야기를 불러냈다. 첫 장면에 등장했던 엄순분 할머니는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나와 평생 혼자 불렀을 진짜 자신의 정선아라리를 불렀고 진짜 아들이 나와 엄마를 껴안았다.

바가지, 밥상, 찻상, 바구니, 하다못해 땅바닥이라도 손바닥으로 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면서 마음대로 가사를 바꿔 부를 수 있는 정선아라리는 새로 등장한 <난타>처럼 새롭게 변주되고 오래 공연해도 될 소재로 충분해보였다. 같이 울고 같이 웃는 이 공연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겠구나, 서울에서 정선에서 작은 무대에서 큰 무대로, 장터에서 마을에서 계속 이어질 게 틀림없겠다싶은 확신이 들었다.

긴 박수가 오래 계속되는 공연장을 나와 삼성동 먹자골목으로 들어와 소주를 시켜놓고 도무지 아라리의 여운이 가라앉지 않아 유튜브를 틀어 정선아리랑 클립을 보고 들으며 공연장에서처럼 막걸리도 마셨다. 어디 가르치는 데 있다면 배우고픈 마음까지 꿀렁꿀렁.

 

 

Ps. 내 마음 누가 알리오, 아라리.

그렇게 정선아리랑 여자의 일생, 공연을 보고 돌아온 지 오늘로 이주일. 아라리요의 뜻이 누가 내 마음을 알까요, 라고 한다. 한가위로 향해 가는 가을의 좋은 날들을, 달 밝은 한가위 날에도 정선아라리에 빠져 지냈다. 포털 사이트에도 유튜브에도 정선아라리를 찾으면 연이어 듣느라 몇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정선아리랑 창 기능 보유자들, 정선아리랑 유네스코 등재 신청 영상, 정선아리랑 문화재단에서 만든 정성스런 가락이 흘러넘쳤다. 정선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줌마 초등학생 유치원생 고등학생들이 거의 모두 한 자락씩 정선아라리를 불렀다. 남자의 일생, 할아버지의 일생으로 공연을 해도 몇 십 편이 나올 이야기와 노래의 보고라고나 할까.

가사를 받아 적고 정선을 끼고 도는 산과 강 속에서 헤엄치다보니, 어느 장면에서 나온 아라리인지 다 알게 되었는데, 그 중 몇 장면의 시 같은 사설을 적어볼까 한다. 곧 일본에서도 정선에서도 그리고 시즌을 바꾸어가며 아라리 공연이 계속 될 테니 잘 알고 가게 되면 아라리 명창들의 노래가 쏙쏙 들어올 것이다. 따라 부를 수도 있게 되기를.

 

“노랑 저고리 진분홍 치마를 받고 싶어 받았나. 우리 부모 말 한마디에 울며불며 받았지.

간다지, 못 간다지, 그 얼마나 울었나. 송정암 나루터가 한강수가 되었네.

날 가라드라, 날 가라드라, 날 가라고 하더라. 삼베 질쌈 못한다고서 날 가라고 하더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엄순분 처녀, 가난에 못 이겨 어린 나이에 입 하나 덜려고 시집이랍시고 꽃 꽂고 떠나갈 때.

 

“우리 집의 서방님은 잘났든지 못났든지, 얽어매고 찍어매고 장치달이 곰배팔이.

노가지 나무 지게 위에 엽전 석 냥 걸머지고, 강릉 삼척에 소금 사러 가셨는데 백봉령 굽이굽이 부디 잘 다녀오세요.” -엄순분 새댁, 결혼하고 나서 아버지처럼 술타령 하는 남편을 두고.

 

“앞으로 보니 옥니백이, 뒤로 보니 반 꼬두머리, 번들번들 숫돌 이마 박죽 잘들 툭툭 차던

우리 시어머니여, 공동묘지 오시라고 호출장이 왔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시집살이를 하다가보면 속상한 일도 있겠지, 한번 참고 두 번 참으면 안 되는 일이 있나.

시어머니 산소를 까투리 봉에다 썼더니, 우리 집 삼동세가 팔난봉이 났네.

황초 당초가 맵다고 한들 시집살이만 하겠나, 고독한 시집살이에 눈물로 산다네.

허공중천에 둥근 달은 임 계신 곳을 알건만 나는 어이해서 님 계신 곳을 모르나.

-맨날 일만 시키고 구박하고 먹을 것도 잘 안 주면서 술타령에 절어 사는 시어머니 구박 부분.

 

“한 잔 마시고 두 잔 마시고, 백잔 술을 마시니 우리 갈증이 날 때는 꼭 한잔 마시자.

우리가 살면은 한 오백년을 사나, 살아생전에 술 담배 먹고 놀다가 죽자.

술 잘 먹고 돈 잘 쓸 때는 금수강산일러니, 술 먹고 돈 떨어지면은 적막강산일세.”

-아마도 장꾼들 술타령할 때. 장에 가신 아버지 꽃신도 안 사오고 부어라 마셔라 할 때.

 

“네가 죽던지 내가 죽던지 무슨 야단이 나야지, 요렇게 매정스러워 어떻게 사나. 밥 먹기 싫은 것은 개밥이나 주지, 임자 당신 싫은 것은 백년 원수로다. 당신이 내 속 썩는 걸 그다지도 모르거든 앞 남산에 봄눈 썩는 걸 건너다 봐요. 산천에 올라서니 친정동네 보이고 기약 없는 시집살이에 눈물만 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주게. -고향에 두고 온 친정엄마를 그리워하며 고된 시집살이에 지친 새댁 순분의 노래.

 

그리고 언제인지는 모르나, 모든 정선아라리에 깃들인 정서를 담은 한 줄의 노래가사.

 

“가리왕산 실안개 돌거든 비가 올 줄 알고 중간 목긴 개가 짖거든 내가 온줄 알 알어라.”

 

 

공연 정선아리랑 <여자의 일생>, SAC 아트홀

포스터와 포스터 사진 : 이한구

공연 사진: 권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