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은 소금이 만들어낸 늪
고혈압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질환 중 하나다. 2015년 건강보험 통계연보에 따르면, 65세 이상 남성은 10명 중 6명이, 여성은 7명이 고혈압 환자다. 그래서 의료계에서는 고혈압을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로 설명한다. 하지만 흔하다고 해서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분명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는 질환이다. 흔한 만큼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고혈압,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 대한고혈압학회 임천규 회장(경희의료원 신장내과교수)의 도움으로 알아봤다.
가장 궁금한 점은 역시 그것이었다. 나이가 들면 왜 혈압이 오를까? 임천규 회장을 만나면 가장 먼저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다. 그러나 임 회장은 노화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기대와는 다른 답변을 내놓는다.
“나이를 먹으면 피부의 탄력도 잃게 되잖아요. 혈관 벽도 마찬가지예요. 혈관이 뻣뻣해지면서 신축성을 잃게 되니까 혈관 벽에 가해지는 압력이 높아지게 됩니다. 특
히 여성의 경우는 갱년기와 관계가 있어요. 50세 이전에는 남자의 고혈압 유병률이 높지만 50세 이후에는 남성보다 여성의 고혈압 환자 비율이 높아요. 폐경을 지나면서 남성호르몬에 비해 여성호르몬의 분비가 줄고 여러 가지 호르몬들의 변화가 오기 때문이죠.”
고혈압의 대표적인 별명은 ‘침묵의 살인자’다. 대표적인 자가진단이 어려운 질환이기 때문이다. 고혈압은 증상을 보통 잘 느끼지 못한다. 일부에서 나타나는 증상으로는 두통이나 어지러움, 시력저하, 가슴의 두근거림 같은 것들이 있다. ‘악성 고혈압’은 이런 증상과 함께 여러 가지 지표들이 위험신호를 나타낸다. 고혈압을 장기간 방치하고 놔두거나 악성 고혈압을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뇌출혈, 뇌경색, 협심증, 심부전, 동맥경화, 만성콩팥병 등 위험한 질환을 일으킨다.
‘고혈압은 신장병’, 아셨나요?
임 회장은 고혈압을 신장병이라고 말한다.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신장이라는 의미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심장과 혈관의 문제로 나타나는 질환인데 소변을 만들어내는 신장과 관계가 있다니 의아하다. 이에 대해 임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고혈압의 원인 중 하나는 몸속에 피의 양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혈관이나 심장에
서 수용할 수 있는 피의 양은 정해져 있는데, 피가 많아지면 자연히 압력이 커지는 것이죠. 이 혈액의 양을 조절하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나트륨, 즉 소금(염화나트륨)이에요. 소금을 많이 먹게 되면 신장은 몸에 더 많은 수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수분을 배출하는 대신 가두고 혈액으로 만듭니다. 또 신장에서는 혈관을 수축시키는 호르몬인 레닌-안지오텐신과 교감신경 호르몬의 분비를 통해 혈압에 관여하죠. 옛날에 썼던 방법으로, 악성 고혈압 환자의 응급 상황 때 직접적인 채혈을 통해 혈압을 조절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신장에 이상이 생기면 당연히 혈압에도 붉은 신호등이 켜진다는 설명이다.
혈압약 먹을 땐 초기 관찰이 중요
고혈압은 약을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하는 질환이다. 고혈압의 완치는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임 회장은 “결국 생활습관이 문제”라고 말한다. 이미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얘기다.
“수축기 혈압(혈압을 재면 먼저 표기하는 큰 숫자) 기준으로 140~160㎜Hg 정도(1기)의 고혈압은 생활습관만 바꾸면 약 없이도 충분히 나을 수 있습니다. 혈압의 주원인은 스트레스, 소금 섭취, 비만인데 이 중 한 가지만 고쳐도 5~10㎜Hg 정도는 줄일 수 있어요. 어렵긴 하지만 평소의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혈압약’으로 통칭해서 부르지만 혈압을 내려주는 약의 종류는 다양하다. 대부분의 경우 부작용이 없거나 적은 약들이지만, 만약 부작용이 발생한다면 치료 초기에 발견하는 것이 좋다.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발생하는 몸의 대한고혈압학회 임천규 회장은 고혈압 환자에 대한 소금의 유해성을 강조해 설명했다.
변화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주치의에게 반드시 알려줘야한다. 부작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는 평생 시달릴 수 있다.
“혈압을 조절하는 약물들은 몇 가지 방식으로 작동해요. 소변으로 나트륨 배출을 늘리거나, 혈관을 확장시키거나, 앞서 언급한 호르몬들을 억제하는 방식들이 있어요. 하지만 약에 따라 기립성 저혈압, 두근 거림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니 투약초기에 몸 상태를 잘 관찰해야 해요.”
겨울 새벽 운동은 ‘독’
임 회장은 특히 나이 들어가면 급격한 혈압의 변화를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평소 혈압이 높고, 특히 혈압약을 복용하는 환자는 더운 여름에 땀을 심하게 흘리면 저혈압으로 쓰러질 수 있어요. 땀으로 소금을 너무 많이 배출했기 때문이죠. 반대로 겨울은 급격한 고혈압이 문제가 돼요. 이럴 땐 물과 함께 소금도 드세요. 추운 겨울날 이른 아침에 운동 좀 해보겠다고 무리하게 나섰다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어요. 심하면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같은 증상이 나타납니다. 하루 중 혈압이 가장 높은 이른 아침에 혈압을 올리는 추위와 운동에 몸을 노출시켜서 그래요.”
음식도 마찬가지다. 혈압에 좋다는 건강식품을 찾아다니며 먹다가 오히려 혈압이 더 올라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들이 많다는 것. 기본적으로 생활습관을 바꾸고 약으로 혈압을 조절하면서 건강식품을 찾아 섭취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임 회장은 강조한다.
“혈압에 좋은 음식을 찾는 것보다 소금을 줄여보세요. 조금만 줄여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어요. 칼국수나 설렁탕 같은 국물 음식이 가장 위험하죠. 과일이나 채소 같은 칼륨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소금의 영향을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붉은 고기보다는 닭의 살코기나 생선을 먹고 전체적인 칼로리를 줄여나가면 고혈압 치료는 물론 동반되는 성인병까지 예방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