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에 낚이지 마세요
가짜뉴스가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SNS를 통해 널리 확산된 대표적인 가짜뉴스를 소개합니다.
오래된 바나나에서 나타나는 검은 반점이 암 예방에 좋다는 뉴스입니다. 여러분도 어디에선가 한두번 목격했을 법한 소식입니다. TNF(종양괴사인자)라는 물질이 검 은 반점에 다량 함유돼 있는데 이것이 항암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이 뉴스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추적해 보니 위티피드(wittyfeed)란 온라인 매체 를 만나게 됩니다. 2016년 3월 올라온 ‘검 정 반점이 있는 바나나가 건강에 좋은 10 가지 이유(10 proven Health Benefits of Eating Black Spotted Bananas)’란 제목 의 기사입니다.
기사를 읽어보니 잘 익은 바나나일수록 항 암효과는 물론 위식도 역류와 고혈압, 빈 혈, 위궤양, 우울증, 변비, 생리전 증후군 에 좋고 에너지를 공급하며 체열을 식힌다 고 말합니다.
검은 반점의 바나나가 좋다?
중요한 것은 어디를 봐도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글 검색을 해봤습니 다. 2009년 일본에서 발표된 작은 논문이 발견됐습니다. 2009년 <푸드 사이언스 테 크놀로지 리서치>란 학술잡지에 게재된 일본 테이쿄대 약리학교실의 연구결과입니다. 성숙한 바나나 추출물을 쥐의 복강 에 주사했더니 염증 반응이 올라가면서 백 혈구 숫자가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2013년 홍콩에 소재한 아시아 암연구기금 이란 기관에서 발표한 글을 보면 검정색 바나나가 덜 익은 초록색 바나나보다 TNF 가 8배 많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물론 출 처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첫째, 이것은 동물실험입니다. 사람을 대 상으로 한 임상시험 결과가 없습니다. 게 다가 먹는 게 아니라 복강 내 주입했습니 다. 이 경우 바나나 검정색 추출물이 아닌 다른 어떤 물질이라도 복막염을 유발해 염 증 반응이 올라가고 백혈구 숫자가 증가합
니다. 이것은 마치 시험관 실험에서 소금 물을 주입해서 암세포가 죽으니까 소금물 이 암 치료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동 일합니다.
둘째, 백혈구 숫자가 갑자기 TNF로 돌변 한 과정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검정색 바 나나에 TNF가 8배나 많다는 증거를 아무 리 찾아도 없습니다. 애초에 검정색 얼룩 에 TNF가 많다는 사실 자체가 의심스러운 것입니다.
백 번 양보해 설령 TNF가 많다고 해도 항 암효과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TNF는 단 백질이므로 입으로 먹게 되면 위장에서 아 미노산으로 분해되기 때문에 흡수되면 아 무 작용도 하지 못합니다. 설령 작용을 한 다 해도 양이 작습니다.
바나나 한두 개론 택도 없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심슨이란 미국 시라큐스대 출신 의 약리학자는 Quora.com이란 지식나눔 사이트에 올린 답변에서 “TNF가 사람 체 중에서 의미있는 항암작용을 발휘하려면 100kg 이상의 바나나를 먹어야 가능하다” 고 비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사실은 충분한 양의 TNF를 투여해도 암은 TNF란 물질 하나 를 투여한다고 없앨 수 있는 질병이 아니란 것입니다.
가짜 뉴스 왜 만드나?
그렇다면 왜 이런 황당한 뉴스가 만들어 졌을까요?
일단 뉴스의 근거가 된 학술잡지의 등급이 낮았습니다. <푸드 사이언스 테크놀로지 리서치>는 학술잡지의 영향력과 신뢰도를 뜻하는 임팩트 팩터가 1.0도 안되는 등급이 낮은 잡지였습니다. 아시아암연구재단도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홍콩의 한 변호사가 회장으로 있는 정체 불명의 기관입니다.
등급이 낮은 학술잡지나 듣도 보도 못한 기관의 연구결과를 인용해 기사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래야 기자가 원하는 대로 기사를 재미있게 쓸 수 있기 때문 입니다. 권위 있는 기관의 전문가를 만날 수록 검증이 까다롭기 때문에 자신의 입맛 대로 기사를 쓰기 어렵습니다.
이 기사를 쓴 기자가 궁금해졌습니다. 카 리슈마 드라블라(Karishma Drabla)라는 인도 여성이었습니다. 사진과 함께 스토 리텔러라고만 소개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약력도 없습니다. 매체도 마찬가지입니 다. 위티피드는 떠돌아다니는 뉴스를 재 미있게 가공해 SNS에 퍼뜨리고 여기에 광 고를 붙여 수익을 올립니다. 그러다보니 근거를 갖춘 사실보다 트래픽을 높일 수 있는 흥미 위주 소재만 다루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국내 한 저명한 언론사가 위티피드를 미국의 온라인 미디어라고 소 개하며 이처럼 허접한 기사를 인용해 보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티피드는 영 어로 된 웹사이트일 뿐 미국이 아닌 인도 의 회사입니다. 인도 대학생 3명이 창업했 다고 나와 있습니다. 의학뿐 아니라 정치 와 연예 등 다양한 화제성 기사들을 올려 놓고 있더군요. 모두 잡설에 불과한 내용 들입니다.
“대부분의 가짜뉴스는 이처럼 그럴듯한 간판을 걸고 흥미 위주 기사를 올립니다. 여러분이 제목만 보고 낚이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공유해서도 안 됩니다”
의학계에도 흥미 위주 가짜뉴스 많아
그렇다면 우리는 가짜뉴스를 어떻게 가려 낼 수 있을까요?
첫째, 믿을 만한 언론기관인지 눈여겨봐 야 합니다. 요즘은 페이스북 등 SNS에서 돈만 내면 기사를 광고할 수 있습니다.
이름이야 얼마든지 그럴듯하게 지어낼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가정해보겠습 니다. 예컨대 한국의학협회는 어떤가요? 대한의사협회나 대한의학회와 유사한 이 름이지만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 기관입니 다. 공익성을 가장해 작명한 것이지요.
아니면 헬쓰컨슈머는 어떤가요? 무엇인 가 건강을 염려하는 소비자단체처럼 보이 지요. 마찬가지로 실제론 없는 단체입니 다. 대부분의 가짜뉴스는 이처럼 그럴듯 한 간판을 걸고 흥미 위주 기사를 올립니 다. 여러분이 제목만 보고 낚이면 안 된다 는 뜻입니다. 물론 공유해서도 안 됩니다.
둘째, 출처와 근거를 따져봐야 합니다. 대 부분 가짜뉴스는 기사 내용 어디에도 출처 와 근거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흥 미 위주 이야기일 뿐입니다. 위의 사례처 럼 TNF니 퀘르세틴이니 하는 학술용어 한 두 개만 나올 뿐 연구기관이나 논문 혹은 전문가 인터뷰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습 니다.
구글도 믿으면 안 됩니다. 간혹 구글을 통 해 기사의 소스가 링크되거나 소개되긴 합 니다만 구글에도 엉터리 정보가 많기 때문 입니다. 영어로 된 사이트라고 해서 믿으 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정돈해드립니다. 의학에도 흥미 위주 가 짜뉴스가 많습니다. 검정색 반점으로 얼 룩진 바나나를 먹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낚이신 것입니다.
홍혜걸(洪慧杰) 의학전문기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박사,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비온뒤 칼럼은, 홍혜걸 의학전문기자가 설립한 의학전문매체이자 미디어 의학채널 비온뒤(aftertherain.kr)와 협약 하에 다양한 분야의 엄선된 의료인들의 건강 칼럼을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