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도 18명 신청
세계에서 찾는 스위스 안락사

 

 

2016년 개봉한 영화 <미 비포 유(Me Before You)>에서 촉망받던 젊은 사업가 윌은 불의의 사고로 모든 것을 잃는다. 사지마비 환자가 된 윌은 6개월 뒤 스위스로 가서 안락사 하기로 결심한다. 연인인 루이자는 그가 마음을 바꿀 수 있도록 애쓰지만 사랑도 그의 결심을 바꾸진 못한다. 반송장인 현재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 <미 비포 유>처럼 해외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

 


 

비온뒤는 스위스 ‘디그니타스(Dignitas)’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디그니타스는 안락사를 주선하는 스위스 비영리기관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자국인이 아닌 외국인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한다. 디그니타스는 엄밀한 의미에서 안락사가 아닌 조력자살 방식으로 말기암 등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돕는다. 즉 의사 등 타인이 독극물을 주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환자가 자발적 의지를 갖고 자신의 손으로 강력한 수면제 등을 복용하거나 주사한다.

 

스위스에선 이러한 디그니타스의 활동이 합법적이며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돕기 위한 인도적 차원의 봉사로 이해하므로 외국인에게도 허용된다. 그러나 어떠한 의학적 방법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말기 환자라야 하며 환자의 자발적 동의가 필요하다. 자살 유도 약물은 스위스 의사의 처방을 거쳐야 하며 시술은 병원이 아닌 민간 자택이나 아파트에서 이뤄진다. 의사나 간호사도 없고 수술대나 기구 등 의료 장비도 없다. 비용은 장례 포함 1000만~1400만원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비용이 획일적인 것은 아니며 신청자의 경제적 환경이 어려운 경우 이를 감안해 낮춰주기도 한다.

 

디그니타스는 한국인 신청자가 2012년 이래 지금까지 모두 18명이라고 공개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이들 중 실제 몇 명이 안락사를 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론 96개 국에서 7764명이 신청했다. 독일이 3223명으로 가장 많았고 영국 1139명, 프랑스 730명, 스위스 684명, 이탈리아 392명이 그 뒤를 이었다.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에서 안락사가 합법화된 미국도 453명이 신청했으며 아시아에선 우리나라 다음으로 일본 17명, 태국 10명, 중국 7명 순이다.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는 네덜란드로 2002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조력자살 방식이 아니라 독극물을 의사가 직접 주입해 신청자의 사망을 유도하는 적극적 안락사로서, 네덜란드 국민의 4%가 안락사로 생명을 마감한다. 올해는 말기암 등의 질환이 아닌 나이가 많아 의식과 활동이 쇠약해지고 고독 등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에도 안락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이 통과될 전망이라고 한다. 현재 네덜란드를 비롯해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콜롬비아, 캐나다도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다. 현재까지 오리건과 워싱턴, 몬태나, 버몬트,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6개 주에서 합법화됐다. 여기에 뉴욕 주가 올해 안락사를 합법화하고 2015년에 안락사 법을 부결시킨 영국도 재추진한다는 보도가 잇따르는 등 안락사로 상징되는 죽을 권리를 향한 움직임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우리나라는 연명치료의 중단이라는 소극적 의미의 안락사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2018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우리나라 실정법에 따르면 안락사는 조력자살이라도 불법이다. 따라서 스위스 디그니타스를 통한 안락사 신청자는 처벌될 수 있다.

 

안락사는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맞서 있어 법적, 윤리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그러나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국내에서도 갈수록 높아져가고 있으므로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노력이 시급해 보인다.

 

 

 

 

 

홍혜걸(洪慧杰) 의학전문기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박사,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비온뒤 칼럼은, 홍혜걸 의학전문기자가 설립한 의학전문매체이자 미디어 의학채널 비온뒤(aftertherain.kr)와 협약하에

다양한 분야의 엄선된 의료인들의 건강 칼럼을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