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을 이기는 8가지 방법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폭염주의보가 전국 곳곳에 내려진 상태입니다. 어떻게 하면 무더위를 이길 수 있을까요. 의학적으로 도움이 되는 8가지를 알아봤습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은 더위를 이기는 가장 잘못된 태도입니다. 일부러 사우나 등 더운 곳에 가거나 뜨겁고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은 미련한 짓입니다. 체열이 올라가 더욱 탈진하게 되며 심한 경우 열사병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의학적으론 이수치열(以水治熱)이 좋습니다. 그러니까 더위는 물로 다스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비열이 높은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온도를 1℃ 올리기 위해 가장 많은 열을 빼앗아가는 물질이 바로 물입니다. 무더운 계절에는 수시로 물을 마시거나 가벼운 샤워, 등목 등으로 체온을 식히는 게 좋습니다.
땀을 많이 흘린다면 조금 짜게 드세요.
더울 때 장시간의 운동이나 노동을 해서 땀을 많이 흘렸다면 물만으로 부족하고 소금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맹물만 많이 마시면 저나트륨혈증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트륨 부족으로 뇌세포 부종, 두통과 구토, 의식 혼란 등이 발생할 수 있고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괜찮습니다. 더운 날씨에 운동을 해야 하는 선수들이나 행군하는 군인들, 조선소 노동자들에게 필요합니다. 이분들은 목이 마를 때만 물을 마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물은 1시간에 최대 800cc 이상 마시면 안 됩니다. 미국스포츠의학회는 물 1ℓ에 소금 0.5~0.7g 정도 섞어 마실 것을 권합니다. 이 농도는 보통 스포츠 음료보다 두 배 정도 진한 농도입니다. 일부러 소금을 먹는게 불편하다면 얼큰한 국물 등 평소보다 조금 짠 음식을 먹는 게 좋겠습니다.
선풍기를 활용합시다.
솔직히 더울 땐 에어컨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그럴 여유가 없다면 선풍기도 훌륭한 차선책입니다. 선풍기 돌연사는 완전히 낭설입니다. 저체온증이나 호흡 방해로 인한 산소 부족이라는 설이 많지만 전부 헛소문입니다. 현대의학은 기왕력으로 해석합니다. 해마다 심장마비 등 돌연사로 2만여명이 숨집니다. 이들이 숨질 때 우연히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었다는 시간적 선후관계가 겹친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래 심장병 등 지병으로 죽을 사람이 선풍기를 틀어놓고 숨져서 겉으로 보기에 선풍기 바람이 사망 원인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밥을 먹다 돌연사했다고 밥을 돌연사의 원인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선풍기 바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연사의 원인이 아니므로 걱정 말고 사용하셔도 됩니다.
계란과 옥수수를 추천합니다.
더위를 이기는 데 필수적인 영양소인 단백질과 비타민B가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계란은 우리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값싼 단백질입니다. 계란 하나가 보통 60g인데 200원 정도 합니다. 소고기 등심 한 근은 600g인데 4만원입니다. 그러니까 계란이 소고기보다 20분의 1이나 싼 단백질 공급 식품입니다. 옥수수는 알갱이를 통째로 먹는 거의 유일한 곡류입니다. 알다시피 곡류는 껍질과 알맹이, 씨눈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곡류는 껍질과 씨눈이 도정 과정을 통해 제거된 알맹이 부분입니다. 그런데 항암 효과 등 건강에 도움을 주는 페놀 성분은 대부분 껍질과 씨눈에 포함돼 있습니다. 실제 껍질과 씨눈이 곡류에서 차지하는 무게는 15~17% 정도이지만 곡류 전체 페놀 성분의 83%가 이들 부위에 몰려 있습니다. 페놀 성분은 무더위로 신진대사가 과열되면서 몸에 쌓인 유해산소 등 노폐물들을 신속하게 제거하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껍질과 씨눈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옥수수야말로 안성맞춤인 셈이지요. 게다가 옥수수는 비타민B의 보고입니다. 다른 과일이나 채소에서 볼 수 없는 영양식품입니다. 길이 20㎝짜리 옥수수 한 개만 먹어도 티아민 1일 권장량의 24%, 엽산 1일 권장량의 19%를 섭취할 수 있습니다. 티아민이나 엽산은 모두 비타민B의 일종으로, 인체를 자동차에 비유할 때 출력 향상제 역할을 합니다. 같은 휘발유로 높은 마력을 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뜻이지요. 당연히 힘이 나고 지치지 않게 됩니다. 게다가 티아민의 두뇌활동 개선과 엽산의 기형아 예방 효과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단백질은 소량씩 자주 먹고 저녁에는 많이 드시지 마세요.
단백질은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모조리 몸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몸에 축적되는 지방이나 탄수화물과 다릅니다. 소장에서 단백질은 아미노산의 형태로 시간당 7g 정도가 최대로 흡수됩니다. 보통 4~5시간 정도 지나면서 흡수되고 한꺼번에 흡수할 수 있는 단백질 양은 30g 정도입니다. 이는 순수 단백질이므로 수분이 들어간 고기로 환산하면 대략 150g 내외입니다. 한근이 600g이므로 4분의 1근입니다. 즉 여러분이 회식자리에서 보양식으로 고기를 4분의 1근 이상 먹으면 나머지는 모조리 대변으로 빠져나간다는 의미입니다. 보통 아까운 일이 아닙니다. 고기는 매일 조금씩 자주 먹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단백질을 섭취할 때는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특수역원작용이라는 생리현상 때문입니다. 음식을 먹고 영양소를 대사시키기 위해 인체가 소모하는 에너지를 말합니다. 탄수화물은 7% 정도인데 단백질은 30%에 달합니다. 단백질은 자체 열량의 30%를 대사시키는 데, 즉 체온을 올리는 데 쓴다는 뜻입니다. 단백질을 먹으면 30분 정도 후 체온이 올라갑니다. 따라서 요즘처럼 더울 때 특히 저녁에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밤에 잘 때 체온 상승으로 숙면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여름철 고기는 가급적 아침이나 낮에 소량씩 자주 드실 것을 권합니다.
습도를 관리하세요.
습도가 높을 때 불쾌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수증기 입자가 피부에 닿으면서 열을 전달해 체감온도가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건식 사우나의 온도계 눈금이 100℃ 가까이 되는데도 화상을 입지 않는 것은 이 같은 원리입니다. 우주공간의 인공위성이 수백 도나 되는 태양 복사열에 견디는 이유도 열에너지를 전달하는 공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습도가 높으면 피부에서 땀 증발을 방해해 끈적거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실제 습도가 올라갈수록 불쾌지수도 상승합니다. 75 이상이면 절반이, 80 이상이면 대부분 불쾌해하며 68 미만이면 쾌적해합니다. 그런데 장마철엔 기온보다 습도가 더 중요하게 관여합니다. 예컨대 불쾌지수가 기온 28℃, 습도 90%이면 81이지만 기온 30℃, 습도 60%이면 79입니다. 보통 15℃에서는 70%, 18~20℃에서는 60%, 21~23℃에서는 50%, 24℃ 이상에서는 40%의 습도를 유지하는 게 좋습니다. 하와이나 미국 캘리포니아가 전 세계적인 휴양지로 명성을 드날리는 이유는 높은 기온에 비해 습도가 낮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곳에 갈 순 없습니다. 습도를 제거하는 데는 제습기와 에어컨이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그리고 드라이어를 적극 활용하십시오. 샤워 후 드라이어로 몸의 털 부분은 바짝 말리는 게 좋습니다. 피지가 분비되는 모낭 주위에 습도가 높으면 세균감염 등 피부질환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발도 외출 전에 드라이어로 바짝 말려주면 무좀 방지에도 좋고 촉감도 좋습니다.
운동으로 피로물질을 쌓아두세요.
열대야를 이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낮에 운동으로 근육에 피로물질을 쌓아두면 밤에 잠이 잘 옵니다. 매일 한두 시간 이상 열심히 운동하세요. 더울 때 적당한 운동은 장시간 저강도 운동입니다. 단시간 고강도 운동은 심장에 부담을 주고 몸을 탈진시킵니다. 그리고 교감신경을 자극하고 체열 발산을 유도해 야간 숙면을 방해합니다. 천천히 오래 걷기나 배영처럼 격렬하지 않은 수영, 맨손체조나 요가 같은 정적인 운동을 추천합니다.
샤워나 등목을 하세요.
잠들기 30분 전쯤 약간 차가운 물로 샤워나 등목을 하세요. 잠에 들려면 체온이 살짝 떨어지는 게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너무 차가운 물은 좋지 않습니다. 반사적으로 체열을 과도하게 올려 숙면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샤워나 등목 후엔 타월로 피부의 물을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로만 닦고 물기는 저절로 증발되도록 남겨둡시다. 물이 증발되면서 기화열로 체열을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홍혜걸(洪慧杰) 의학전문기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박사,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겸 논설위원. 비온뒤 칼럼은, 홍혜걸 의학전문기자가 설립한 의학전문매체이자 미디어 의학채널 비온뒤(aftertherain.kr)와 협약 하에 다양한 분야의 엄선된 의료인들의 건강 칼럼을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