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에선 ‘치매가 일상’ … 환자 위한 서비스 늘어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치매는 우리에게도 현실이 됐다. 문재인 정부가 ‘치매국가책임제’를 실현하기 위해 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한다. 다행스게도 우리에게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예측할 수 있는 좋은 사례를 곁에 두고 있다. 바로 일본이다.
치매 환자인 어머니를 모셨던 A씨는 지난 2012년 황당한 일을 겪었다. 서울 종로의 상가 건물 소유주였던 어머니에게 A씨의 삼촌 B씨가 접근해, 사후에 재산을 모두 자신이 맡는다는 위임장과 유언장을 받아낸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법원의 상속재산처분금지가처분신청을 받아냈지만, B씨는 법원의 결정 직전에 건물을 급히 팔아버렸다.
결국 소송을 벌인 끝에 2015년 법원은 치매로 법률적 의미와 효과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들을 배제하고 동생에게 모든 재산의 관리 처분 권한을 준 위임장은 무효라며, 건물을 산 매수인에게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말소하라고 판결했다.
유언자 의사 정상 여부 판정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 민법에선 금치산 또는 한정치산 선고, 성년후견 심판 등의 제도로 법률 행위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면 모든 성인은 기본적으로 의사능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속과 같은 법률 행위와 관련해 치매 같은 질환으로 인해 의사능력의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한다.
이와 같은 문제는 유언장을 작성하는 사람에게도 현실적인 고민이 될 수 있다. 치매가 없거나 사소한 건망증이 나타나는 초기 치매의 경우 일상생활에는 장애가 없지만 병력이 법적 다툼의 소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언을 남겨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답답한 일이다.
일본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일본의 메디컬리서치라는 회사는 최근 ‘의사능력감정(意思能力鑑定)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유언 작성 전 작성자의 뇌 대사 기능을 아밀로이드 PET-CT 등의 장비를 이용한 진단과 정신과 전문의의 면담을 통해 의사능력의 유무를 감정하는 서비스다.
회사 측은 “일본은 치매환자 1300만 명 시대가 도래했고, 치매로 인한 상속 분쟁이 2014년 1만2577건에 달했다”며 “치매환자라도 유언장을 작성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의사능력감정을 통해 의사능력이 인정되면 분쟁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국내에서는 분쟁이 발생한 이후에야 의사능력에 대한 의학적 견해를 묻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종합병원 신경과 전문의는 “법원에서 법적 분쟁으로 인해 소견서 작성을 요청받는 일이 왕왕 있다”며 “의학적으로 의사능력을 감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법적으로 첨예한 경우 소견서 작성이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정앤파트너스의 의사 출신 성용배 변호사는 “국내에서도 유언장 작성자가 자발적으로 인지능력과 관련한 진료나 감정을 받고, 진료기록, 소견서 등 그 근거를 남기는 것은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이는 의사능력의 존부에 대해 있을 수 있는 문제제기의 소지를 불식시킬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치매환자 편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치매환자를 위한 일본 최초의 원격진료 서비스도 얼마 전 시작됐다. 준텐도(順天堂)대학교병원은 지난 7월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위한 원격진료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는 IBM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운영되며, 환자나 보호자는 아이패드를 통해 병원과 치료 정보를 주고받게 된다.
병원 측은 “환자의 내원에 필요한 신체적,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가족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환자를 돕는 간병인을 통한 정보도 의사가 참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멀리 떨어져 있는 환자에게 효율적인 진료 서비스 제공과 함께 지역 병원과의 연계도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또 병원 측은 원격진료가 활성화돼 자료가 축적되면 치매환자의 빅데이터 분석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1996년 서울대학교병원이 원격치매센터를 설립해 일찌감치 원격진료 서비스에 대한 시도가 있었다. 이어 정부의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통해 수년간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자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돼왔다. 그러나 원격진료를 ‘정보통신기술 활용의료’로 명칭을 바꾸고 대상도 축소해, 보건복지부가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