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관련 강의 중에 아파트에 살지 않는 사람이 있는지 질문해 보았다. 30여 명 중에 단 한 명 만이 손을 들었다. 연립주택에 산다고 했다. 아파트보다 층 수는 낮지만 연립주택도 공동주택의 범주에 들어가니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을 찾기 힘들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서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 울산에서 강의 하다가 수강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지방 도시라서 상당 수가 전원생활을 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거기서도 30여명 중에 두명 만이 단독주택에 산다고했다. 나머지는 전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원에서의 삶을 동경한다. 특히 도시에서 평생 직장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퇴직과 더불어 전원으로 가고 싶어한다.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았던 사람들도 도시에서의 삶을 떠나 언젠가는 전원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우선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다. 의료시설부터 문화시설, 교육시설, 쇼핑이나 편의시설이 온통 도시에 집중되어있다. 교통수단이 열악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방 인구가 줄고 고령화되면서 마을마다 들어가는 버스노선도 차츰 없어지는 추세다. 지방으로 간다는 것은 이러한 혜택을 포기하거나 불편을 감수해야하는 것을 의미한다. 좀 불편하기는 해도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다면 도시의 편의를 공유할 수 있으니 괜찮다. 그러나 도시와의 교통거리가 먼 경우는 그동안 누렸던 도시의 혜택을 대부분 포기해야한다. 이렇게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를 포기하고 전원생활을 택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댓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과 맞바꾸었다고는 하나 그 자연이라는 것이 상상하는 것과 상당히 다르다. 봄과 가을은 어느정도 상상했던 자연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여름처럼 가뭄이 지속되거나 견디기 힘든 무더위에선 전원생활이 힘들다. 외출도 자유롭지 못하다. 초목과 농작물은 타들어가고 개울과 저수지는 말라서 쩍쩍 갈라진다.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농민들을 바라보는 것도 괴롭다. 그러다가 장마가 오거나 태풍이 오면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전원생활에 익숙치 못한 도시인들에게 겨울은 더 견디기 힘들다. 폭설이라도 내리면 통행조차 어려워진다. 인근에 편의시설이 없으니 생필품을 비상으로 준비해 두어야한다. 무엇보다 전원생활을 어렵게하는 것은 원주민들과의 관계다. 통계를 보면 귀농, 귀촌인구의 31.4%는 조용한 전원생활을 원해서 전원을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농촌경제연구원의 자료에 의하면 귀농, 귀촌 인구의 45.4%가 기존 마을 주민들과의 갈등을 경험한 것으로 되어있다. 도시의 여러 가지 혜택을 다 버리고 오직 자연을 찾아갔던 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여러 이유로 전원생활을 정리하고 도시로 유턴하고 있다.

 

 

그러면 도시에서의 삶은 삭막하기만 한가?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도시에서의 전원생활은 어렵지 않다. 서울의 예를 들면 도심에 고궁이 여러 개 있다. 잘 관리되고 있는 멋진 정원을 즐길 수 있다. 도심 여기저기에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공원과 정원도 많다. 올림픽공원, 양재 시민의 숲, 어린이 대공원, 서울 숲, 북서울 꿈의 숲 등 도시 전반에 산재한 공원도 좋지만 대학교 캠퍼스도 훌륭한 공원이다. 특히 지하철 노선을 따라 대학이 분포해있어 시니어에겐 더 편리하다. 한강변을 비롯해서 그 지류와 하천들은 잘 정비되어 사계절 생태의 변화를 보며 산책하기에 안성마춤이다. 남산을 비롯하여 일곱 개의 명산이 서울을 둘러싸고 있다. 결론적으로 지방과 비교하면 서울은 교통, 의료, 교육, 문화, 쇼핑시설 뿐만 아니라 자연환경 까지도 완벽하게 갖추어진, 그야말로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게 되어있다. 그러니 집값이 계속 상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머잖아 지방소멸에 직면해 있다. 오랜세월 국토 균형발전을 목표로 정책을 펴 왔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지역에 따라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지방 중소 도시의 구 시가지는 신규 개발지에 밀려서 상권이 죽고 활기가 사라지고 있다. 지방 시, 군은 인구 유입을 위해 다양한 정책과 혜택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원주민들에겐 역차별 심리를 불러일으켜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전라북도 고창군의 어느 마을에 사는 지인의 걱정을 들은 적이 있다. 자기가 지금 사는 마을에 8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20년 후에는 15명 정도 남을 거라고했다. 대부분 연로하신 관계로 여유있게 수명을 감안하더라도 그 정도 주민이 남게 되리라고 보는데 그러면 마을 대부분의 집은 비게될 것이라고했다. 빈 집이 많아지고 20년 후에 생존해 계신 분들도 대부분 연로하실테니 그 마을이 소멸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지방마을 전체가 당면한 현실이다. 더 늦기 전에 지방마을의 문제들을 깊이 들여다 보고 활기를 찾을 수 있는 대안들을 모색해야 한다.